여든 세살 관기초등학교 5학년 강명자 할머니가 쏘아 올린 새해 소망
여든 세살 관기초등학교 5학년 강명자 할머니가 쏘아 올린 새해 소망
  • 송진선 기자
  • 승인 2023.01.05 11:15
  • 호수 67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나이를 먹어서 배운 것도 자꾸 까먹어 한글 다 떼면 좋겠어”
“중학교도 갈려고 했는데 심장이 안좋아서 못가겠어 아쉽지만 접었어”
관기초등학교 5학년에 재학중인 강명자 할머니 학생의 모습.<br>
관기초등학교 5학년에 재학중인 강명자 할머니 학생의 모습.

배움에 나이가 필요없다. 죽을 때까지 배우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한글을 배우지 못해 글을 읽지 못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해 스스로 감췄었던 7, 80대 어르신들이 문해교육을 받아 한글을 깨우친 후 시인도 되고 수필가도 되고 그림도 그리며 삶의 재미를 새록새록 느낀다. 제2의 삶을 구가하며 당당한 성인으로 활동하는 모습을 모두가 박수를 보내며 응원하고 있다. 
새해 첫 신문에 소개하는 마로면 소여2리 강명자(83) 할머니는 평생학습 기관이 아닌 아예 정식으로 초등학교에 입학해 한글 공부를 하는 할머니 학생이다.
증손자 같은 어린 학생들과 같은 반에서 공부하는 강명자 할머니는 올해 6학년으로 올라간다. 초등학생 강명자 할머니는 새해 무슨 소원을 빌었을까? 할머니의 소원은 한글을 완벽하게 깨우치는 것이다.
“올해 6학년에 올라가요. 5년동안 학교 다닌 것을 뒤돌아보면 꿈만 같아요. 마음을 먹으면 꼭 해내야 할 정도로 의지가 있어서 처음 입학할 때 마음은 중학교도 가겠다고 마음을 먹었어요. 포부가 컸죠. 그런데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으며 기억력도 떨어지고 또 심장 박동기 수술을 한 이후 추운 겨울철엔 몸이 무척 안좋아서 활동이 어려운데, 올 겨울엔 몸이 더 안좋다는 것이 느껴져서 중학교 진학을 포기했어요. 학교 버스가 통학을 시켜주는 초등학교와 달리 중학교는 버스를 타고 알아서 다녀야 하기 때문에 추위에 버스를 기다리는 것이 제겐 큰 일이거든요. 그래서 남은 학교생활은 6학년 1년밖에 남지 않아서 새해에 6학년 올라가면 열심히 공부해서 한글만큼은 완벽하게 습득하는 것이 제일 큰 소망이예요.”
중학교에가고 싶지만 건강 때문에 포기해야 하는 할머니의 심정이 안타깝게 다가왔다.

#아이들과 실뜨기 하면서 놀았다
1번밖에 없어 학년 올라가도 내내 바뀌지 않는 아이들과 5년간 지낸 강명자 할머니. 증손자와 같은 어린이들과 한 교실에서 공부하는 것에 대해서 좋다고 했다.
“아이들이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러운지 몰라요. 까불어도 좋아요. 증손자 같잖아요. 아이들이 없는 시골에서 어린 아이를 보는 것이 정말 귀한데 그래도 나는 매일 아이들을 보잖아요. 어린 아이들하고 한 교실에서 공부한다는 것 자체가 즐거움이예요. 나이 많은 할머니 무시하지 않고 어울려줘서 내가 고맙죠.”
그러면서 강명자 할머니는 반 친구(?)들을 소개해볼까요? 한다.
“김지우는 인천에서 왔어요. 지우가 많이 아파했던 적이 있었어요. 얼마나 안타까운지 죽을 쑤어서 보온통에 담아 학교에 가지고 가서 선생님께 말씀드리고 급식시간에 먹이기도 했어요. 애기 배는 똥배 할머니 손은 약손같은 마음으로 대했죠. 김동령은 반장이예요 6학년에 올라가면 부회장이예요. 그리고 전채원, 전채은이 있는데 얘들이 참 발랄해요. 나이를 먹으면서 차분해졌어요. 그다음 김도영, 이윤제, 하윤찬, 그리고 저 강명자까지 8명이 한 반이고 다 친구예요.” 
1학년부터 계속 같은 반으로 올라온 증손자 같은 어린아이들은 또래 친구이름을 부르는 것처럼 나이 많은 학생 강명자 할머니에게 “명자할머니”, “명자할머니” 하면서 살갑게 굴고 또 잘 따른다고 했다.
할머니가 학생인 것이 신기한지 아이들은 노는 시간이면 할머니 주변으로 몰려들어 얘기도 하고 같이 실뜨기 놀이도 하면서 놀았다. 할머니도 증손자처럼 예쁜 아이들과 어울리는 것도 좋고 한글을 터득해서 읽고 쓰는 것이 재미있어서 학교 공부를 끝내고 집에오면 다음날이 빨리 오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매일매일 학교 가는 날을 기다렸다.
할머니 눈에 나이 어린 반 친구들이 얼마나 사랑스러울까? 잘해준다는 것을 아는지 아이들은 할머니 왜 이렇게 잘해주세요 라는 말을 하기가 일수다. 할머니는 그럼 “니들이 꼭 우리 증손자같아 좋아서 그런다” 하면 아이들은 다시 까르르 웃는다고 했다. 특별히 웃긴 말을 한 것도 아닌데 곧잘 웃는 아이들 덕분에 강명자 할머니도 잘 웃게 된다고 했다.
아이들을 이름을 부르며 기억을 떠올리는 할머니의 얼굴에선 또다시 말간 웃음꽃이 피어난다.
할머니는 혼자 살기 때문에 학교에서 아이들을 만나지 않으면 하루종일 있어도 만나는 사람 없이 혼자다. 바보상자라고 하는 텔레비전에서 떠드는 소리 듣고 가수가 노래하면 그거 구경하고 재미있는 말 하면 그때 겨우 따라 웃을 정도로 별로 웃을 일이 없는데 어린이들과 함께 공부하면서 웃는 날이 많아졌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83세 연세인데도 할머니는 젊어보인다. “학교를 다니고 애기들 하고 지내기 때문인가?” 라며 또 미소를 지어 보였다.

강영자 할머니와 같은 반인 사진 왼쪽부터 김동영, 김동령, 전채은, 하윤찬, 이윤제, 김지우, 전채원 친구들과 박소영(왼쪽에서 4번째) 담임선생님 모습.<br>
강영자 할머니와 같은 반인 사진 왼쪽부터 김동영, 김동령, 전채은, 하윤찬, 이윤제, 김지우, 전채원 친구들과 박소영(왼쪽에서 4번째) 담임선생님 모습.

#우리 반에서 공부를 제일 열심히 하는 사람은 누구지?
강명자 할머니의 담임인 박소영 선생님은 4, 5학년까지 2년간 담임을 맡았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할머니를 잘 이해한다. 청년 나이인 박소영 선생님은 82세의 강 할머니에겐 손녀 또래. 처음엔 자신의 시어머니(70세)보다도 나이가 많아 부담스럽기도 하고 어떻게 지도해야 하나 걱정도 됐던 게 사실이지만 담임을 맡고 할머니와 나눈 대화로 할머니를 이해하게 됐다고 했다. 길게 얘기를 한 것이 아닌데도 ‘이분은 마음이 여린데도 마음가짐이 굉장히 강하고 뭐든 열심히 하려고 하는 좋은 분이고 앞으로 나는 할머니의 말씀을 잘 들어드리면 되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괜찮아 할머니라고 부르라고 했던 할머니의 청대로 할머니 하고 부른다는 담임 박소영 선생님은 저에게 꾸중을 들은 학생에게 다가가 다독거리기도 하고 부모와 떨어져 지내는 아이를 집에 데리고 가서 재워 같이 학교에 등교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담임 선생님은 할머니와 잘 놀던 아이들이 고학년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또래끼리 노는 시간이 많아져 전보다 할머니와 어울리는 시간이 많이 줄었지만 그래도 아이들에게 할머니는 또렷하게 남아있다고 말했다.
‘우리반에서 제일 착한 사람’, ‘솔선수범하는 사람’, ‘공부를 제일 열심히 하는 사람은 누구지? 하는 질문에 아이들은 하나같이 “강명자 할머니”라고 답하며 할머니를 좋아하고 따른다는 것. 담임인 박소영 선생님은 물론 아이들에게 강명자 할머니는 친할머니 같은 든든한 학생이었던 것이다.
어려서부터 숙기가 없어 집밖에 나가지도 못했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서툴러 친구들과대화도 잘 나누지 못했던 강영자 할머니가 시집간 곳이 두메산골, 그것도 시조부모와 시모가 있는 층층시하의 장손. 시 어른들의 대소변 받아내는 일을 10년 넘게 하고 고된 시집살이에도 말대답 한 번 안하고 순종하며 수십년간 살면서 슬하의 2남3녀 자녀를 잘 키웠다. 모진풍파를 겪은 우리들의 어머니 모습이 강명자 할머니에게서도 충분히 느껴졌다.
새벽 별보고 나가 고추를 따고 허리를 펼 새 없이 모를 떼우고 자식돌보고 시부모 봉양하고 아픈 남편 병간호하는 고된 하루일과 속에서도 살아 꿈틀대던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한글공부였다. 피곤으로 한글공부고 뭐고 다때려치울만도 했는데 할머니는 갈증이 더해졌다. 복지관에도 다녀보고 흙사랑 한글학교에도 몇 번 나갔다. 하지만 하루 3, 4회 들어오는 버스로는 수업시간을 맞출 수가 없어서 이내 포기하고 말았다.
그러다 버스를 운행하며 학교까지 데려다주는 초등학교를 생각하게 됐고 남편이 작고한 후 2018년 77세의 나이에 관기초등학교 입학의 문턱을 넘었다.
학교 가는 길이 구름위를 걷는 것 같은 희열을 느낀 강명자 할머니는 배움에 대한 열정 때문인지 1, 2학년때만 해도 곧잘 적응했다. 받아쓰기를 하면 100점도 받고 90점도 받고, 더하기 빼기, 곱하기를 하는 산수도 재미있고 과학도 재미있고 배울수록 신기해서 자꾸만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 만난 장애물은 학년을 올라가면서 어려워지는 학습난이도와 복잡한 과정. 국어, 수학, 사회, 과학, 영어, 음악, 미술, 체육 등 여러과목을 배우는데 나이 많은 할머니 학생은 도저히 따라갈 수 없었다. 그래서 할머니와 담임 박소영 선생님이 내린 결론 수업은 참여하면서 한글만이라도 완전히 깨우치고 졸업하자는 것.
농한기여서 다행인 요즘 할머니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읽고 썼던 것을 꺼내서 다시 써보고 외워보곤한다. 한글공부를 터득하는 것이 소망인 강명자 할머니에게 또다른 소망이 있다. 내년이면 정년퇴임하고 귀향한다는 큰아들(60)과 작은아들(58), 큰딸(57), 작은딸(55), 막내딸(50)과 며느리, 사위, 손자들이 모두 우애있게 지내고 건강해서 하는 일 모두 잘 풀리면 좋겠다고 빌었다.
처음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한 것처럼 가나다라부터 쓴다는 강명자 할머니는 그러면서 환한 미소를 보냈다. 그 미소가 계묘년의 밝은 해처럼 빛이 났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