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주사에 가면
법주사에 가면
  • 편집부
  • 승인 2012.10.25 09:19
  • 호수 16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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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선빈(수필가, 보은문학회)

보은 하면? 곧바로 대추, 하는 즉답이 나오는 대추 고을이 보은이지만, 보은이란 이 고장 이름을 오랫동안 널리 알리고 빛나게 했던 것은 속리산 법주사일 것이다.   지금 보은에 살고 있는 나도 30년 전, 신혼여행으로 속리산 법주사를 다녀왔을 정도로 전 국민의 사랑과 관심을 받았던 속리산 법주사. 보은은 몰라도 속리산 하면 룏아! 법주사’하고 절 이름이 툭 튀어나온다.

절, 절이란 단어는 순수 우리말이라고 한다. 불상에 절을 할 때 절을 많이 해서 생긴 이름이라고도 하고, 불교가 처음 신라에 전해질 때 승려 아도(阿道)가 머문 집이 모례(毛禮)의 집이었는데 이 모례가 털레→털→덜→절이 되었다는 재미있는 이야기도 전하고 있다.

원 삼국시대 신라가 삼국통일이라는 큰 서원을 품고 창건한 법주사에는 국보 3점, 보물 12점을 비롯해서 다수의 유형 문화재가 산재되어 있는 곳이다.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탓에 하루해가 모자랄 정도로 품고 있는 이야기도 많다. 이 거대한 야외박물관 곳곳에서 설법이, 법문이 오늘 하루도 길게, 길게 이어지는데 나의 귀가 열리지 않아 제대로 전해 듣지 못할 때가 많다.

하지만 지금까지 내가 몰랐던 것, 알고는 있지만 잘못 알고 있던 이해가 어려운 것을 새롭게 아는 일은 참으로 즐거운 일이다. 늦게 시작한 공부라 하나를 알고서는 머릿속 기억창고에 저장해 두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리기는 하지만, 이렇게 공부할 수 있는 여유를 법주사에 온 후부터 갖게 된 것은 참으로 감사할일이다.

육신은 다치고 마음에는 치유가 어려운 상처를 얹고서는 절뚝이는 걸음으로 '호서제일가람’ 이라는 법주사 일주문을 들어설 때만 해도 내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들리지도 않았다. 마주치는 사물들은 끊임없이 내게 말을 걸었지만, 그저 하루가 지나면 이 통증이 조금은 덜어질까. 어느 때가 되면 마음에 이는 분노가 가라앉고 걷는 것이 불편하지 않을까, 로 머릿속만 복잡했다.

한번 두 번 일주문을 지나는 숫자가 더해지고 또 더해가면서 세상에 대한 편견과 독선으로 빗장 단단히 걸었던 마음의 문이 열리면서 만나는 모두가 내게 은혜로움으로 다가왔다.

고마움과 감사할 것이 덩달아 많아지면서 압박 붕대로 단단히 동여매고도 계단 오르기가 힘겨웠던 무릎통증도 서서히 나아졌다. 간간히 붕대를 풀어놓아도 될 정도로  많이 좋아졌다. 지난 몇 달 감히 신어 볼 엄두도 내지 못한 구두도 신어 보았다.

말보다 글이, 글보다 그림이 더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는 경우가 있다. 조심스런 걸음으로 속리산의 이름과 법주사 창건설화를 '암각화’로 새긴 바위를 다시 찾는다. 명부전 외벽의 벽화 읽어내기도 즐겁지만, 창건주인 의신조사와 진표율사의 이야기는 그림으로 보고 몇 번을 다시 들어도 경이롭기만 하다.

'혼자 깨우치는 것은 일찍 아는 것이고, 도움을 받아서 아는 것은 늦게 아는 것이다’라고 하지만 내게 몇 번을 설명해 주시고 또 설명해 주시는 세 분의 해설사 선생님이 계셔서 하루가 즐겁기만 하다.

'3인이 행하면 그 중에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고 하는데, 법주사 경내에서 만나는 모두는 나의 스승으로 사람다운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법을 은유적으로 일러준다.

아침이 오는 것이 마냥 즐거운 것은 이곳에서 만난 아름다운 인연 때문이다. 하루해가 짧기만 하다. 내일은 또 어떤 법문이 나를 행복하게 할까.

서산으로 막 넘어가는 해님이, 금동미륵부처님을 이 가을 단풍빛깔로 곱게 물들이는 저녁. 전각에 매달린 풍경에서 나는 소리만이 법문소리 점점 잦아드는 절 마당에 살포시 내려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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