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인간(弘益人間)
홍익인간(弘益人間)
  • 편집부
  • 승인 2012.10.11 09:34
  • 호수 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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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인(보은향토문화연구회/보은장신)

가을이 깊어갑니다. 세 차례의 험한 태풍이 가을 문턱에 찾아왔지만 다행스럽게도 우리 지역은 상대적으로 그 피해가 크지 않았습니다. 지난 추석 연휴 내내 보름달은 휘영청 밝았고 개천절에 하늘은 마냥 푸르고 높았습니다. 산과 들은 풍요와 아름다움을 가득 담은 채  하루가 다르게 그 표정이 더욱 넉넉해지고 있습니다. 세상은 시끄럽지만 가을 풍경은 늘 여전합니다. 

지난 3일 장안면 서원리의 상현서원에서 추향제(秋享祭)가 있었습니다. 상현서원은 사액서원으로서는 전국에서 두 번째로 오래되었고 충청북도에서는 가장 역사가 깊은 서원입니다. 우리 지역에 덕의(德義)의 맑은 기풍을 심어 온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중의 하나입니다.  행사를 알리는 안내장에 “황도만숙(黃稻滿熟)하고 백과염홍(百果染紅)하니"라는 문구가 있었습니다. “누런 벼는 들판 가득 익어가고 온갖 과일은 붉게 물드니"라는 뜻의 한문 표현입니다. 처음에는 어려운 한문 표현이라서 거리감도 있었지만 한편으론 수백 년을 이어 온 변함없는 가을 정경을 이렇게도 표현하는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 한 구석이 그윽해졌습니다.  오랜 세월을 이겨 낸 것들은 그것이 자연물이건 인공물이건 또 위와 같은 글 한줄 조차도 모두  우리들에게 깊은 사유의 뜰을 제공해주는 것 같습니다. 

올해가 단기 4345년입니다. '홍익인간’이라는 기치아래 우리 민족이 역사를 꾸려온 것이 이렇게나 오래 되었습니다. '널리 인간에게 보탬이 되다’라는 우리의 건국이념은 타민족이 침범할 때에는 국가를 지키는 호국의지로, 부정엸부패엸불의에 대해서는 파사현정(破邪顯正)의 개혁의지로, 사회가 평화롭고 안정되어 있을 때는 약자와 소외계층을 배려하는 개인적 도덕규범으로 늘 발현되어 왔습니다. 5천 년의 긴 세월을 통해 그것은 이제 한국인의 유전인자가 되었고 경제적 이익을 모든 것에 우선시하는 작금의 세태에서도 가끔씩 기적처럼 꽃을 피웁니다. 룏피에타’를 만든 김기덕 감독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영화 '피에타’는 우리나라 영화사상 최초로 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상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세계인의 가슴에 깊은 감동을 준 작품입니다. 국내에서 이미 50만 관객을 돌파하였고 앞으로도 더 많은 관객이 예상되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지난 개천절을 마지막으로 김 감독은 룏피에타’의 극장 상영을 종료시켰습니다. 이유는 극장 상영 기회가 독과점되는 문제점을 제기한 당사자로서 다른 작은 영화들에게도 극장상영의 기회가 주어지기를 원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보은군이 삼승면에 유치하려는 LNG화력발전소로 인해 정작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삼승면민들이 마음고생이 많은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삼승면 지역에 발전소 유치를 반대하는 현수막이 많이 걸려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보은군내 다른 지역에는 여러 단체 이름으로 발전소 유치를 촉구하는 현수막이 걸려있습니다. 발전소와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는 삼승면민들의 입장을 깊이 생각하지 않고 보은군의 일방적인 설명만 듣고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이 과연 진정으로 지역을 아끼는 행동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산이 높으면 골도 깊은 법이고 햇빛이 밝으면 그림자 또한 짙은 것이 세상의 이치입니다. 어떤 분은 나락 한 알에도 우주의 신비가 다 깃들어 있다고 하는데 거대한 화력발전소가 가동되면서 어찌 아무런 문제점이 없다는 것인지 참말로 납득하기가 어렵습니다. 보다 광범위하고 면밀한 조사를 통하여 얻은 정보를 정직하게 공개하고 공정한 여론을 환기 시킨 후 발전소 유치에 관한 주민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삼승면민들의 주장은 너무도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약 보름 전에 이용훈 전대법원장이 고려대학교 법학관에서 유신헌법과 관련하여 학생들에게 특강을 하였습니다. 그 특강 중에 그 분은 “건전한 비판을 배척하고 국민을 하나로 통합한다는 것은 위험한 생각이다"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발전소 유치를 반대하거나 우려하는 군민들을 공개석상에서 거친 말로 매도하는 보은군수께서 꼭 경청해야 할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구 3만 명이 조금 넘는 작은 보은군입니다. 어떤 주민도 소중하지 않은 주민이 없습니다. 본인과 뜻이 다르다고 배척한다면 보은군이라는 배를 누가 노를 저어 미래로 나갑니까?
“태산은 한 줌의 흙도 사양하지 않음으로 그 높이를 이루고,
바다는 작은 물줄기도 가리지 않고 받아들여 그 깊이를 얻는다."
진(晋)나라 승상 이사의 말입니다. 깊어가는 가을 군민 모두와 함께 음미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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