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③ 제주 애월 더럭분교
2. ③ 제주 애월 더럭분교
  • 송진선 기자
  • 승인 2012.09.27 09:40
  • 호수 16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리는 서울보다 여기가 더 좋아요"

제주시 애월읍 더럭분교는 우리지역의 삼가분교와 비교되는 바가 많다.
학교 규모나 학교가 자리한 위치나, 학교 건물, 그리고 선생님들의 모습도 흡사하다.
하지만 우리가 분발해야한다고 생각되는 건 지역주민들의 학교에 대한 관심이다. 우리가 말로만 학교를 걱정하고 있는 것과 달리 더럭분교가 위치한 마을 주민들은 학교를 위해 몸을 던지고 있다. 그리고 성과도 보고 있다. 우리에게 배울 점을 많이 던져준 사례다.
마을에 희망을 주는 작은학교 성공기 사례 학교를 찾을 때마다 매번 감동을 받고 매번 부러웠는데, 더럭분교를 취재하면서 여러 번 감탄사가 나왔고 부러움의 눈빛을 거둘 수가 없었다. 폐교를 목전에 뒀던 2009년 전교생이 16명에 불과했고 2011년 3월1일자로 폐교가 예정돼있었으나, 2010년 23명으로 늘고, 2011년에는 46명, 그리고 올해는 52명으로 늘어 폐교대상학교에서 완전히 해방됐다.  지금도 서울 등 대도시에서 전학을 위해 문의전화가 오고 자녀를 이곳에 입학시키기 위해 빈집을 사서 이사를 온다.  왜냐하면? 그 이유를 풀어본다

◆아파트 거실 같은 강당
이 학교로 아이들이 몰리는 데는 다른 학교에는 없는 그 무엇이 있을텐데. 그게 뭘까? 학교의 환경도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단층 건물의 더럭분교는 학교가 참 아담하고 아름다웠다. 학교 건물은 삼성전자가 진짜보다 더 진짜같은 색 재현력을 소개하기 위해 낡고 어두운 건물에 세계적인 컬러리스트 장필립 랑클로와 함께 색을 입혔는데 카메라만 들이대는 곳마다 그림이다. 푸른 잔디가 입혀진 운동장은 드넓은 초원같다. 현관 입구 양 옆에 지지대처럼 서있는 우람한 벚나무 가지에 매달린 종은 동요에 나오는 '학교종이 땡땡땡~’을 연상시킬 정도로 정겹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선 더럭분교 안 풍경은 보통 학교의 모습과 달랐다. 학교 하면 떠오르는 정형화된 모습이 아니다. 아주 많이 파괴되어 있다. 현관은 일반가정의 아파트 베란다에 화분을 놓은 것처럼 아담하다. 현관을 거쳐 발을 들여놓은 곳이 강당이라는데 꼭 평수 조금 넓은 아파트의 거실같은 느낌이 들었다. 포근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들어선 교무실에서는 위엄(?), 무게(?) 같은 형식이 느껴지지 않았다. 똑같은 색상, 똑같은 모양의 책상, 의자가 교감 책상을 중심으로 ㅁ자형으로 흐트러지지 않고 도열돼 있는 모습이 아니라 가정집에서 쓰는 둥근 식탁에 재활용한 것처럼 제각각인 의자가 놓여있고 탁자위에는 다기들이 놓여있어 어느 누구든 차를 마실 수 있도록 했다. 아이들은 “쌤~" 하며 스스럼  없이 교무실로 들어와 선생님이 사용하는 컴퓨터로 인터넷도 하고 게임도 한다. 우리지역 어느 학교에서도 이런 곳, 이런 광경을 본 적이 없다.

아마도 이런 교무실의 모습을 하고 있다면 학부모들의 비난이 빗발칠 것이다. 그리고 학생이 함부로 선생님의 컴퓨터를 만질 수도 없을 것이다. 적발(?)되는 즉시 엄하게 다스릴 것이다.

하지만 격식과 형식이 파괴된 자유스러움과 '학교가 학교스럽지 않고 꼭 우리집 같은 학교룏가 아이들에게 편안함을 주고 학교를 좋아하게 되고 그래서 행복하게 공부를 한다는 것임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다른 학교들과는 차별화된 이런 학교의 환경 때문에도 아이들이 몰릴 수밖에 없다.

 

◆작은학교에 열정쏟는 선생님
더럭분교가 유명해진 데는 학교환경 등 여러 요인이 있지만, 그 중 으뜸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이 터줏대감인 이완국 선생님이다. 초빙교사인 이 선생님은 한 학교에 최대 5년(일반 교사는 3년)까지만 재직해야 하는 제주도 규칙에 의해 다른 학교로 갔다가 다시 더럭분교로 와서 2년째 아이들과 생활하는데 선생님이지만 아이들 눈높이로 아이들 세상에서 사는 나이많은 어린 왕자다.

'빙그레 웃으며 훈훈하게 살자’. 이완국 선생님이 만든 더럭분교의 교훈이다. 어느 학교의 교훈이 이렇게 훈훈할 수 있을까? 교육적이라는 미명아래 상당히 권위적이고 훈시적인 내용 일색에서 '빙그레 웃으며 훈훈하게 살자’가 교훈이라니, 저절로 미소를 짓게 했다.

우리 것, 옛것을 사랑하고 전통을 사랑하는 웃음치료사, 레크리에이션 1급 강사이기도 한 선생님의 이력을 보면 그럴 만하다고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일반교사가 전근 갈 때 챙겨가는 짐이 사물함 2, 3개 분량이 고작인 것과 달리 이완국 선생님의 짐은 2톤 트럭 5대 분량에 달했고 수많은 짐은 지금 교실 속 정원을 만들고 교무실, 복도, 강당을 민속박물관으로 만들 정도로 민속품들이 학교의 얼굴로 학생들의 정서를 길러주는 훌륭한 학습도구가 되고 있다.

그 학습도구가 가장 요긴하게 사용되고 있는 것이 바로 다기(茶器)다. 아담한 차방을 별도로 꾸며 학생이 적었던 2009년 이곳에서 전교생이 매주 월요일 1교시를 공동수업으로 다도를 통한 도덕시간을 운영했다. 학생 수가 많은 지금은 차방이 아닌 강당에서 모둠별로 하고 있는데 차를 달여내고 나눠 마시는 모든 과정을 아이들이 직접 하는데 차를 마시면서 예절을 익히고 인성을 기르는 효과를 보고 있는 것이다.

또 방과후 활동으로 하고 있는 승무북은 기량이 늘어 초청 공연을 다닐 정도인데 아이들은 북을 두드리는 것만으로도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를 해소하게 된다고 한다.

이렇게 인성을 길러지니 아이들 세계에서 힘세다고 괴롭히는 여건 자체가 안된다. 학교 폭력이 있을 수 없다. 선배는 모두 누나, 오빠, 언니이고 후배는 모두 동생이다. 학생들 사이가 가까워지니 학부모들 사이도 가까워 아이들은 다른 학부모에게 이모, 삼촌 호칭을 쓸 정도로 한 식구처럼 지내는 사이가 됐다.

도심이 아니어서 아이들은 수업이 끝나도 바로 집에 안가고 학교에 남아 선생님과 컵라면도 끓여먹고 햄스터와 같은 애완동물을 보살피고 같이 논다.

학교 인근에 집을 사서 이사를 와 학교에서 밤 10시, 11시에 퇴근하는 이 선생님은 일년 365일 중 주말과 공휴일을 포함해 학교에 나오지 않는 날을 손에 꼽을 정도인데 일이 많아서도 아니고 집이 가까워서도 아니고 “쉬는 날에도 자녀들과 학교에 나와 책도 읽고 노는 게 더 좋다"고 할 정도로 더럭 분교의 상징이 됐다.

도시학교에서는 이런 교실과 이런 환경을 갖기 힘들다는 이완국 선생님은 “도시학교는 1반부터 10반까지 있으면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옆 반과 보조를 맞춰야 하니까 눈치가 보이지만, 작은 학교에서는 내가 펼쳐보고 싶은 모든 것들을 다 풀어놓고 할 수 있는 환경이기 때문에 작은 학교가 좋다"라고 말한다.

6학년 담임 강동헌 선생님도 “큰 학교는 아이들이 많아서 다 챙겨줄 수가 없다"며 "학급 당 35~40명인 도시학교에서는 40분 수업시간에 한 학생에게 시선을 주는 시간이 1분 내외이고 그래서 손길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생길 수밖에 없다"며 그래서 작은학교를 지향한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살다가 작은학교를 찾아 9월 초 더럭분교 인근으로 이사를 왔다는 작가 이겸씨는 “초등학교 1, 2학년 때까지도 선생님을 엄마라고 불렀다"며 “인성 형성에 중요한 시기인 초등학교때 교사는 아이를 자녀처럼 길러주고 아이는 부모처럼 선생님을 따르는 것이 좋은 것 같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작은학교여야만 가능하기 때문에 작은 학교를 찾아 이사를 왔다고 말했다.

이겸씨는 또 “도시에서는 학교가 중요하지 않고 학교는 단지 졸업장을 따기 위한 통과의례일 뿐이어서 학교 수업 끝나면 학원가서 선행학습 하고 그것도 모자라 개인과외를 받는데 이게 대학교갈 때까지 하나의 과정"이라며 "인성교육이 안되는 시스템이고 아이들은 친구도 없고 우정도 없는 오로지 경쟁구도로만 짜여진 틀 속에 아이들을 내 몰고 있는데 그렇게 자란 아이들이 행복하냐면 그렇지 않다. 아이들이 행복하게 자라면서 자기 꿈을 실현하도록 해주고 싶어서 여러 작은 학교가 있지만 그 중 더럭분교를 택했다"고 말했다.

학교에 다니는 모든 아이들에게 시선을 주고 신경을 쓰는 아빠, 엄마같은 선생님들이 더럭분교에 쏟는 열정이 학부모들도 변화시켜 더럭분교로 향하게 한 것이다.

 

◆학교 살리려는 마을의 노력
더럭분교가 살아난 여러 요인 중 또 하나 꼽을 수 있는 것이 바로 마을의 노력이다.
겁도 없이 마을에서는 연립주택을 지어 도시민들을 유치했는데 대 성공이었다. 겁없는 사람은 바로 더럭분교가 위치한 하기리 장봉길 이장이다.

처음 1946년 하가초로 설립, 인가를 받아 1954년 더럭 초등학교로 교명을 변경해 1996년 분교로 격하된 후 2012년 2월까지 1887명의 졸업생을 배출했고 이장을 포함해 마을의 주민, 자식, 손자들까지 대부분 더럭분교 출신일 정도로 마을의 역사요 정신적 지주였던 학교가 폐교된다는 사실에 구경만 할 수가 없었던 장봉길 이장이 학교를 살리는 방법으로 모색한 것이 연립주택을 지어 도시민을 유치하는 것이었다.

보은사람 중 여기까지 생각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내 알바 아니니 나서서 반대의 목소리 낼 필요가 없고 찍힐까봐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그래서 정부정책 순응하는 패기없는 보은사람들의 특성으로 보면 장봉길 이장 같은 사람을 찾기 힘들다.

장봉길 이장은 “농촌에서 학교는 단순하지가 않다. 옆 마을과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고 정서상 없어서는 안된다"며 “폐교를 막기 위해서는 인구 유입이 절실했는데, 제주도는 육지와 달리 섬이기 때문에 도내 다른 지역의 학생을 유치하면 그 학교도 똑같이 폐교위기를 겪을 수 있어 육지 대도시에서 인구를 유치하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져 서울 경기, 부산 등 도시권 인구를 유치하는 방법으로 연립주택 임대 등 마을의 계획을 인터넷으로 홍보했다고 밝혔다.

또 초등학교 입학만을 위해 부모 중 한 명이 자녀를 데리고 내려와 주민등록만 이전하는 방법은 안되고 아예 가족 전체가 이사를 와서 이곳에서 경제활동을 하며 살 수 있게 좁은 평수의 원룸이 아닌 4인가족이 생활할 수 있는 30평형대의 연립주택을 짓기로 했다.

연립주택은 마을 자부담 6억원과 제주시로 부터 4억원을 보조받아 총 10억원으로 지난해 12월 100㎡(30평) 8가구, 85㎡(26평) 2가구 등 모두 10가구를 지었다.

입주자격은 제주도민을 제외한 외지인일 것과 초등학교에 다니거나 다닐 연령의 3자녀 이상 가구로 한정하고 연간 임대료를 200만원으로 정해 경제적 부담 없이 이곳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했다. 결과는 대성공. 하기리의 이같은 성공사례는 제주도내 다른 지역에도 영향을 줬다.

더럭분교 전교생 52명 중 원래 학구단위 아이는 15명에 불과하고 제주시내에서 다니는 2명을 제외하면 나머지 35명이 전학을 왔는데 서울 서교초등학교 전학 온 4학년 정태양군과 서울 길음 초등학교에서 전학 온 3학년 권영빈군은 마을의 연립주택 임대사업으로 더럭분교로 전학을 온 아이들이다.

정태영 군과 권양빈 군은 “서울에서는 학교 수업 마치면 다시 학원을 가기 때문에 놀 시간도 없었어요. 그런데 여기서는 수업 끝나고 방과후 하고 집에 와서 동네 친구들하고 롤러도 타고 딱지치기도 하며 놀아요. 서울보다 여기가 훨씬 더 좋다"고 말했다.

장봉길 이장은 “학교가 끝난 시간이면 조용했던 마을이 연립주택 광장에서 떠들며 노는 아이들 때문에 활기차고 생기가 돈다"며 “죽을 날만 받아놓은 나이 많은 어른들만 사는 농촌에서 작더라도 학교가 있다는 것은 그 마을이 계속 유지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학생수가 적어 폐교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학교를 살리기 위해 궁극적으로는 마을을 살리고 마을의 전통과 역사를 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제주도 더럭분교가 소재한 하기리 마을과 같은 사례를 우리지역에 찾아볼 수 없다는게 안타깝다는 생각을 하며 청주행 비행기에 올랐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취재하였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