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하면 좋습니까?
어찌하면 좋습니까?
  • 편집부
  • 승인 2012.09.20 10:05
  • 호수 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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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선빈(수필가, 보은문학회)

예약 관람객에 대해선 책임을 다하고 오장환문학관 해설사 일을 그만 두겠다 생각을 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더 있다가는 건강하던 내 정신을 야금야금 파먹는 일이 될 것 같았다. 정신과 몸은 나날이 피폐해져 이제는 내가 감당할 수가 없어서이다.

문학관에 대한 예산삭감으로 인해 봄부터 지금까지 오장환문학관 관리를 맡고 있는 김여사와 해설사인 내가 부지런히 꽃씨를 뿌리고 풀은 뽑지만 일한 표시도 없었다. 나름 어떻게라도 해 보려고 오랜 시간 쪼그리고 앉아 풀을 뽑다보니 무릎에 무리가 왔고 연골판 파열로 온 베이커 낭종까지 선물로 받았다.

이쯤에서 일을 멈춰야 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전생에 오장환시인과는 무슨 악연관계였는지 자꾸 사무실 밖으로 나를 불러내서 일을 시킨다. 너무나 완벽하게 망가진 무릎으로 걷기가 힘들 때마다 화도 났다. 하지만 이것도 선물이라 생각하니 웃을 수 있었다.

내 스스로 너는 행복한 사람이야, 너가 찾아가도 만나 뵐 수 없는 분들이 너를 찾아오니 이것보다 더 행복한 일이 또 있을까, 하고 최면까지 걸었다. 

나를 찾는 사람이 아닌, 오장환문학관 체험프로그램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고마운 일이었다. "참 고맙지요" 하는 나의 말에 김여사는 "일만 많아지는데 고맙다는 소리가 나와요" 하면서 웃는다.

물론 내가 체험이란 이름으로 일을 만들 때마다 김여사의 일이 두 배쯤 많아지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저간에 속사정이 있다.

옥천의 지용문학관은 시노래 향수로 많이 알려져 저만큼 앞서가는 듯 보이고, 전시물과 접근성에서도 지용문학관에 뒤쳐지다 보니 오장환문학관 관람은 지용문학관에 비교한다면 물건을 산후 후하게 받는 덤 같은 존재였다. 


이를 극복할 것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었다. 오장환문학관 만이 할 수 있는, 감동을 주는 체험 프로그램 운영이 그것이다. 체험 프로그램 때문에 오장환문학관을 다시 방문하게 되었다는 관람객의 한마디가 무릎 통증으로 고통스러운 내게는 다시 힘을 얻게 하는 보약이었다.

어떤 이는 "무슨 연유로 좋은 체험 프로그램을 홈페이지에 올려놓지 않느냐"며 항의성 전화를 하기도 한다. 당연히 오장환문학관에 이러이러한 프로그램이 있다고 알려야 한다. 그래서 더 많은 사람이 찾아오게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비용 때문이다. 내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체험 비용이 커질까봐 두려운 면도 없지 않아 있어서 이다.   

돈이 귀하고 아깝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으려나.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계산기 두드려가며 돈 걱정 하지 않아도 되었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아직은 할 수 있는 복을 타고 났다는 것이다.

언제나 내편이 되어 나를 응원해주고 때로는 조력자가 되어 주는, 그 어떤 바람 앞에서도 끄덕 않는 큰 나무를 닮은 남편이 옆에 있어서 가능한 일이다.

하루 받는 일급으로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한다고 나를 정신이 나간 사람이라고 하는 이도 있지만, 이렇게라도 해야 오장환문학관을 한번 방문한 사람이 다시 올수 있다. 해서 내가 안간힘을 다해 붙잡고 있는 문학관 체험은 나름 극약처방인 셈이다.

걷는 것이 힘들어 압박붕대로 잔뜩 동여매고서도 무엇에 또 홀렸는지, 문학관에만 오면 힘이 난다. 병원의사는 각별히 조심하라고 일렀지 그새 잊는다. 손에 잡은 호미가  한번 지나가고, 두 번 지날 때마다 문학관의 그림이 달라지기에 내가 하는 일을 한없이 즐거워하고 재미있어 하였다.

나의 이런 작기만 한, 그렇지만 최선을 다하고 있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무엇? 무엇으로 인해 오장환문학관 관련예산이 삭감되었다고 들었을 때의 그 막막함은, 보은의 문화자산을 어떻게 그 가치를 올리고 지켜내야 하는지 관점의 다름이 아닌 틀림으로 내가 느끼게 되는 이 절망감은 어찌 하오리까?

풀 뽑는 일은 해도 해도 끝이 보이지 않았고 문학제를 바로 앞에 두고 마음이 급해 졌다. 마음에서 여유로움이 사라지자 사방이 싸우자고 덤비는 적으로만 보였다.

지난 1년간의 누적된 피로가 한꺼번에 밀려와 도저히 문학해설사 일을 지속할 수가 없었다. 덕분에 나의 극단적인 감정까지 덩달아 노출되었다. 그래도 잘 추스르게 되었던 것은 시설사업소장님의 한마디 때문이었다.

생각해보니 잘못 된 것이 많았다며 어제까지는 잊어버리고 오늘부터 잘해보자는, 앞으로 오장환문학관에 대해 신경을 많이 써 주겠다는 그 한마디에 얼었던 마음을 순하게 풀 수 있었다. 그 말을 철썩 같이 믿고 힘을 얻었는데 그가, 그분이, 그 소장님이 다른 부서로 이동을 하셨다는 소식이다.

정말 이제는 여기쯤에서 멈춰야 될 것 같은데…….
그대 오장환 시인님 어찌하면 좋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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