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에, 이, 오, 우
아, 에, 이, 오, 우
  • 편집부
  • 승인 2012.06.21 09:49
  • 호수 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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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선빈(수필가, 보은문학회)

 아, 에, 이, 오, 우, -아, 에, 이, 오, 우.  아, 에….

출근길 운전을 하면서 열심히 목소리를 가다듬는다. 수리티고개를 넘어 공태원을(건천리)지나 회인면 중앙리로 들어설 때까지 아,에,이,오,우는 계속되고 그 이십 여분, 내게는 매일이 기분 좋은 만남이고 즐겁기만 하다. 목소리가 생각처럼 잘 나오니 오늘도 분명 기분 좋은 하루 기분 좋은 ‘방송’ (해설)이 될 것 같다.

고무줄 넣어 만든 통치마가 흘러내리는 것도 모르고 산으로 들판으로 선 머슴애처럼 나돌던 초등학교 때였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은 시골마을은 나라 안 소식도 호롱불 바깥쪽만큼이나 항상 그림자지고 어둑했다. 그 어둑함을 유일하게 거두어 내고는 하던 것이 있다. 메주덩이 매달듯 벽에 달았던, 스피커에서 나오던 라디오 방송이다.

이 시기 내 또래의 아이들은 꿈도 막연하게 '대통령' 하고 크게 말하고는 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대통령이 되겠다는 밑그림은 확실하게 그려내지는 못했다.

아침에 일어나 방문을 열고 나오면 앞산이 턱 버티고 있다가 ‘안녕’ 밤사이 안부를 묻는다. 이렇게 매일 만나는 산은, 쇠코뚜레한 송아지 몰고 풀 뜯기러 왔다가 어둑어둑 날이 저물면 ‘밀 떼기’ 하던 들녘은, 동네아이들에게 생태도감이 되었다가 ‘종합학원’이다가 무공해 ‘무료급식소’도 된다. 우리 동네 들녘 종합학원에게 배운 것들은 지금 생각하면 삶의 질을 높여 주는 돈 많이 주고 비싸게 배워야 하는 공부였지만 그 날에는 거기까지는 알지 못했다.

근대화란 이름으로 산 너머의 세상은 나날이 발전하고 복잡해져만 갔지만 새로운 소식을 들어, 나름 추론하고 이해하는 데는 참 오래 걸렸다. 그만큼 받아드려야 하고 꼭 알아 두어야 할 것들을 아지 못하게 되니 삶이란 경쟁의 긴 경주에서 한 자국씩 늦을 수밖에… 때때로 스피커에서 나오는 서울말(표준말)이 6월 긴 가뭄에 내린 단비가 되어 주기도 하였다.

말을 조리 있게 잘했기보다는 말이 무척 빨랐던 나를 보고 '저 애는 나중에 아나운서가 되려나' 그 한마디가 곧바로 내 꿈이 되어 버렸던 어린 날, 나는 방송이 나오는 오후 4시가 되면 까치발을 하고는 스피커에 귀를 붙이고 방송을 들었다. 하지만 이루고자 하는 꿈에 날개를 달아주기에는 그 일을 하기 위한 과제 풀기가 결코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 수 없던 나였다. 해서 아나운서에 대한 제대로 된 정보나 앎도 없이 내가 했던 것은 고작 스피커에서 나오는 서울말을 무작정 흉내 내였다.

내 고향 대추고을 말투는 얼른 버려야 했다. 세련된 서울말을 배워 학교에 가서 친구들 앞에서 자랑도 한번 하고 싶었다. 하지만 충청도 억양에 서울말투가 버무려져 나오는 묘한 목소리는 내 귀에도 참 이상했다. 목소리에 도깨비바늘이라도 몇 개 달라붙은 듯 중간 중간 소리는 ‘턱’하고 갈라졌다. 의욕은 앞섰는데, 의욕만큼 목소리가 받쳐주지 못했던 것이다.

꺼리가 생겼던 내 친구들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나중에는 내가 말을 하지 않아도 내 목소리를 흉내 내며 내 맘도 모르고 친구들은 서울 갔다 온 척한다고 놀려댔다. 내 높았던 이상은 한순간에 바닥으로 곤두박질 쳤고 가능한 말을 하지 않으려 하다 보니 구석자리로만 돌게 되었다. 입은 마르고 혀는 말려들고 말은 소리가 되지 못하고, 입 안에서 우물거리다 만적도 여러 번이다.

몇 번의 봄이 가고, 또 몇 번인가 봄을 맞이했다. 여전히 몇 사람만 모여도 말을 더듬댔고 앉을 자리도 못 찾고는 허둥거리던 나였다. 이런 내가 아마추어 무선사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어린 시절 나를 아프게 하였던 콤플렉스에서 벗어나 내 목소리에 자신을 한번쯤은 가지고 싶었다.

조디․포스터가 주연했던 '콘텍트'를 보지 않아도 1995년 당시에는 아마추어무선사는 충분히 도전해 볼만한 가치와 매력이 있었다. 취미생활 중 유일하게 정보통신부령이 정하는 국가기술자격시험에 합격해야 한다는 것이 부담은 되었다. 학창시절 지긋지긋하다고 눈 흘겨대던 시험에서 해방 된 지 오래 지났기에 자신감은 많이 떨어졌다.

그러나 아나운서에 꿈은 발돋움에서 끝냈기에 선배 아마추어무선사들의 빛나는 활동을 보면서 자격수첩도 받기 전, 몇 날을 들떠서 다녔다.

“CQ, CQ, W9 GFO."

응답을 기다리며 불특정 다수와 교신을 위해 14.2MHz에서 끊임없이 신호를 보내는 어린 소녀의 모습을 화면에 가득 잡는 걸로 영화는 시작된다. 후에 소녀는 과학자가 되어 우주의 환상을 직접 체험하게 된다.

내가 관심을 가지는 것은 아버지의 자식사랑, 하늘로 간 엄마와 통신하고픈 소녀의 바람, 근시안적인 인간의 아집들을 타파해 보려는 소녀 엘리․에로웨이의 노력 등 영화 속 줄거리에만 있지 않다.

무선은 공간 상태에 따라 아마추어 무선사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전파가 닿을 수 있기에 지구의 반대편에 사는 사람과도 무선을 통해 목소리로 만날 수 있다. 내가 모르는 사람, 내 목소리가 귀에 익지 않은 낯선 사람과도 취미생활이 같다는 것 하나로, 죽어서도 만날 확률이 0%인 사람과 만나 친구가 되기도 한다. 아마추어 무선사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아닌가 한다.

무선사 자격수첩을 교부받은 후 무선장비를 설치하면 설치 장소는 아마추어 무선국인 동시에 개인의 방송국이 된다. 방송국의 사주인 나는 정년도 없는 국장이요, 무선마이크를 잡으면 아나운서도 된다. 처음 무선사로 입문한 초보자들은 무전기 앞에서 생소한 환경에 말을 더듬거나 Call Sign을 잊어 허둥대기도 한다. 그러나 몇 달이 가면 방송국 운영이 너무 매끄러워(말을 잘해) '역시 아마추어 무선사야' 하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처음 시작은 내 소리에 자신을 가지고 싶어서였다. 또 목소리와의 만남으로 여러 분야에서 일하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인간관계도 넓혀보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무선사동호회원들만 쓸 수 있는 주파수대에서 방송채널(주파수)를 옮겨가며 보고 싶은 프로를 찾듯 교신하고 있는 주파수를 찾아 동호인들의 교신내용을 들으며 혼자 웃기도 하고 고개도 끄덕인다.

대추고을 아마추어무선사동호회원으로 입문한 나는 자신감을 가지고 또 다른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대추고을 문화관광해설가로, 오장환문학관 문학해설가일이다. 전국방송은 아니지만 대추고을을 찾아오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대추고을 소식을, 오장환문학관을 알리기 위해 ‘기가폰’을 목에 걸고 방송(대추고을 회인을, 오장환문학관 해설)을 한다.

전국에서 오는 관람객 앞에서 매끄러운 방송을 위해, 방송을 듣는 사람에게 오장환문학관을 기분 좋은 목소리로 알리기 위해서는 출근길 아, 에, 이, 오, 우는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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