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화운 선생의 속리구곡시 현장탐방
특집 … 화운 선생의 속리구곡시 현장탐방
  • 편집부
  • 승인 2009.10.22 10:46
  • 호수 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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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서 예와 도덕을 배우다

약 100여년 전, 마로면 관기1리에 와서 터를 잡고 활동한 화운 민우식 선생이 남긴 속리구곡시가 발견됐다.
화운유고에 담긴 속리구곡시는 1곡 화개동, 2곡 북두문, 3곡 서원촌, 4곡 황애동, 5곡 도치, 6곡 안도리, 7곡 흠앙곡, 8곡 용진, 9곡 삼가동으로 구성됐다.  1곡에서 9곡까지 속리구곡시를 소개하며, 그 경관을 답사한 느낌 또한 함께 싣도록 한다.    - 편집자 주 -

 

속리구곡시 2곡

二曲北斗門(이곡북두문):
이곡은 북두문이라

二曲來由北斗門(이곡내유북두문):
둘째구비는 어디인가, 북두문이 분명하다.

奇巖如立又如준(기암여립우여준):
기이한 바위 일어선 듯, 또 걸터앉은 듯 변화무쌍하네.

天星賦與人間在(천성부여인간재):
하늘이 이 아름다운 경치를 인간에게 주었는데,

這理微芒造花渾(저리미망조화혼):
그 아련한 이치, 누가 알겠는가? 자연의 조화인 것을.

 

◆제 1곡시에 대한 상상
속리구곡 원림의 제 2곡은 북두문이다.
이 구비는 제1곡 화개동(개안리)에서 장안리 북쪽으로 약 1km 지점에 자리해 있고, 이를 바라보면 삼가홍류를 끼고 두 산이 양쪽에 솟아 있으니, 마치 높이 솟은 대문 같은 형상을 하고 있어 이곳을 북두문이라 한 듯싶다.

북두란 북국 하늘의 별자리로, 천문도와 천문대성보천가에서 보면 '천상에는 천황이 우주를 관장하는 자미원궁과 태미원궁, 천시원궁이 있는데 북두성은 이 자미제원 내에서 천황을 보필한다'고 쓰여 있다. 그래서 지리학 고전에 보면 '북신사(북두)가 우뚝 높이 솟아 수구 양변을 막고, 그 수구 물 가운데 새 모양의 금사가 날아들면 그 문안 어느 곳엔가 자미제원이 있고, 그 자미원 안에 큰 성인이나 제왕이 날 명당대지가 있다'라고 한다.

이 시에서 철학자이며 한학자, 성리학자인 화운 선생께서는 속리구곡 제1곡 화개동을 지나 제2곡 북두문에 들어서면서 이 문안에 우리나라 3대강의 발원 천왕봉이 높이 자리하고 있고 그 나들목에 북두문이 생긴 자연의 위대함을 감상하면서 도덕과 수양의 입문으로 생각하였다고 상상된다.

◆북두문의 경치와 전설
필자는 2곡 북두문을 탐사하러 가던 지난 11일, 속리한시회 월례회 석상에서 회우인 정기형 상현서원 원장과 영봉 이종원(전 공무원)님을 운 좋게 만났다. 필자는 속리구곡시를 설명했더니 두 분이 자진해서 “안내를 해야 하겠다"고 하면서 승용차를 내어 3인이 동행해 현장을 찾았다.

보은군지에 보면 '종연 북두문'이라고 기록된 것을 볼 수 있는데, 과연 물 가운데 삼각형의 바위가 서 있어 연못 중심에 알이 놓여 있는 것 같았다. 좌측으로는 돗대봉이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솟아 있고, 우측으로는 구병산 끝 비구성재산이 깎아지는 듯 급경사를 이루며 우뚝 서 있어 새삼 천지 조물주의 위대한 조화에 경탄을 금할 수 없었다.

또한 속리초등학교 교가에도 '속리산 흐르는 물바다가 되고, 산허리에 어린 안개 정기 드높다. 구병산 북두문인 역사 깊은 곳'이라는 가사가 나와 있어 북두문은 경관 좋고 역사 깊은 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잠깐, 동행한 이종원님의 말을 들어보자.
"이 북두문의 소(연못)는 지금은 하천정비 등 공사로 바위를 걷어내어 토사가 흘러들어 얕지만 자연 그대로였던 옛날에는 몇 길이 되는 아주 깊은 소였다. 이 소 밑에 굴이 뚫려 있어 명주실꾸리를 풀어 넣으면 그 한 꾸리가 다 들어가는데, 그 명주실이 약 4.5km 아래 탄부면 임한리 옆에 있는 '이기수'라는 소로 나온다. 그리고 이 북두문의 소위에는 험한 돌 너덜이 형성되어 있어 이곳에서 여름이면 냉풍이 나와 얼음이 얼었고, 상대적으로 구병산 쌀개봉 앞에는 겨울에도 온풍이 나오는 풍혈이 있어 서리꽃이 하얗게 피는데도 더운 바람이 나와 추위를 녹여준다."

이 말은 풍수지리학적 음양오행이기설을 뒷받침하는 말이다.(원래 구비란 태극을 상징한 말로 모든 사물에는 상대성, 즉 음양이 있다)

구병산의 영기로 뭉친 정기가 사통팔달하는 음양충화의 작용으로 높고 추운 곳에는 더운 기운을, 낮고 더운 곳에는 찬 기운을 고루 주어 삼라만상이 자라고 생활하는데 도움을 주고자 하는 천지의 자비심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필자는 다시 한 번 대 자연의 위대한 법칙 앞에 고개 숙여 경의를 표했다.

이렇게 옛 선비들은 자연을 아끼고 사랑하면서 자연에게서 예의를 배우고, 자연에서 도덕을 체험하고, 자연을 수양의 도장으로 삼으면서 '산(山) 절로, 수(水) 절로 하니, 산수간에 나도 절로 하리라'라고 자연을 노래하였으리라.

이로 미루어 볼 때 화운 선생께서는 이곳을 입도(入道)의 첫 문으로 생각하고 도덕을 상징이라도 하듯 자연스럽게 지어진 지명인 서원촌, 도치, 안도리, 흠앙곡(옛 성현을 흠모함) 등을 더듬어 오르면서 이 구곡시를 읊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김광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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