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성지, 성역화 작업 시급
역사적 성지, 성역화 작업 시급
  • 편집부
  • 승인 2009.10.15 11:20
  • 호수 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구름속을 헤치던 용이 장안 뒤에 와서 우뚝 솟은 돛대봉과 옥녀봉을 이뤘다.

속리구곡시

一曲 花開洞(일곡 화개동):
첫째 구비는 화개동이라(지금의 개안리)

一曲花開古洞春(일곡화개고동춘):
첫째구비는 어드매고, 꽃피는 옛 동네의 봄이로다.

三山何處訪仙人(삼산하처방선인):
삼산 어느 곳에 신선이 노는 선경을 찾을까

中有紅流來自遠(중유홍류래자원):
멀리서 복사꽃 물들은 홍류 흘러오니

桃源從此可尋眞(도원종차가심진):
이곳이 바로 도원의 선경이로다.

 

◆지리학적 고찰
지금 이 화개동(개안리)과 장안리 일원의 경치를 더듬어보면 우리나라 중조산이라 할 수 있는 속리산 주봉 천왕봉에서 백두대간 연맥이 동남으로 힘차게 달리다가 상주의 새재 밑 장고개에서 백두대간 맥을 옆으로 따돌리고 머리를 남으로 돌려 달리다 갑자기 머리를 다시 서쪽으로 틀면서 장엄한 구병산을 형성하고 있다.

그 끝 일지 맥이 들로 떨어져내려 나비 눈썹처럼 고운 산이 다소곳이 내려앉았으니 이 산이 바로 잠두산이다.

이 산을 뒤로 그 앞에 화개동이 자리 잡고 있으니 지금의 개안리다.
이 뒷산이 머리를 길게 뽑아 화개동의 청룡을 이루었고, 백호는 수백호로 삼가천 홍류가 두 갈래로 나뉘면서 한 갈래는 바로 화개동 앞을 흐르고 또 한 갈래는 길게 우측으로 둥그런 원을 그리면서 남쪽 끝에서 서로 만나 화개동 수구를 이루고 있다.

또 다시 동남쪽으로 흘러 보청천에 합류하여 대청호에 잠시 머물렀다가 금강으로 유입된다.
또 앞의 주작산은 천왕봉 중출 맥이 서남쪽을 향해 용솟음치며 기암절벽의 협곡을 이루고 그 아래 삼가 홍류가 흐르면서 속리구곡의 일대 장관을 이룬다.

이렇게 구름 속을 헤치던 용은 장안 뒤에 와서 우뚝 솟은 돛대 봉과 옥녀봉을 이루고 우측으로 휘돌아드니 예가 바로 세조 대왕이 신병 치료차 어가행열이 길을 닦으며 넘었다는 말티재 열두 구비다.

우거진 숲속을 굽이굽이 누비며 급경사를 오르는 감회는 아마 올라보지 않은 사람은 그 신비스럽고 황홀한 경관을 모르리라. 아마도 천하기절이 예인가 하노라.

황곡리 뒷산은 화개동의 안산이다. 이 끝자락에 빙경산의 거울이 화개동과 장안리를 훤하게 밝혀주고 있다.
그래서 화운 선생께서 읊은 제 1곡 화개동은 그 일원인 화개동과 장안리, 황곡리를 싸잡아 그 전경을 시로 읊지 않았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을 머릿속에 그려본다.

 

◆백범일지의 장안리
여기서 잠깐, 백범 김구선생의 백범일지의 한 구절 실화를 살펴보자.
우리나라 독립지사이며 선구자이고, 애국애족자로 추앙받는 김구 선생은 안동김씨로 그 아명은 창암이요 중간 이름은 창수, 호는 백범이다.

선생은 일찍이 19세에 동학이념에 찬동, 입교하여 1년 만에 고향인 황해도와 평안도에서 수천 명의 교도가 몰려들어 애기 접주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그 이듬해 20세 때에 황해도와 평안도에서 덕망 높고 지략 있는 15명을 선발하라는 대도소의 통문을 받았다.

아버지의 승낙을 받아 그 해 가을 어느 날 선발된 15명은 수천리 길 산을 넘고 물을 건너 보은군 장안리로 최해월 대도주를 찾았다.

동네 깊숙이 들어서니 천도교 주문 외는 소리가 집집마다 요란하고, 해월선생을 찾아오고, 전국에서 모여든 사람들로 집집마다 꽉 찼고, 길거리는 장사진을 이루었다고 한다.

일행 15명은 왔음을 통보한 지 1시간 만에야 선생을 뵈었는데, 선생은 60 정도의 나이로 구레나룻에 큰 검은 갓을 쓰고 동저고리를 입고 약간 마른 청수한 모습이었다.

여기서 일행 15명은 해월 대도주로부터 정식으로 접주라는 해월인이 찍힌 임명장을 받았다.
이 자리에서 3.1운동의 주역 의암 손병희 선생을 처음 뵈었다고 하며, 전봉준 선생이 전라도 고부에서 이미 기병하였다는 소식도 여기서 들었다.

그 당시 장안 일대에는 전국에서 해월선생을 찾아오는 사람들로 매일 수백 명이 우글거렸는데, 이때에 세상 사람들은 '서울 장안이 장안이 아니라, 보은 장안이 장안이다'라고 했다고 전해져 온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조명
현재 개안리(화개동)에는 옛날 전통문화유산인 솔숲을 비롯한 한식 고택이 여러 곳에 있다. 옛날의 곡선미의 주택문화를 관조할 수 있다. 또 장안리에는 동학 농민군의 대도소가 있어 농민군을 총 지휘했을 뿐 아니라 우리나라 자주독립정신을 고취시킨 최해월 선생, 3.1운동의 주역 의암 손병희 선생, 상해 임시정부 주석 백범 김구선생이 이곳을 기점으로 자주적 독립사상을 고취시켜 마침내 조국의 광복을 이루었으니 이곳이야 말로 우리의 위대한 역사적 성지 중의 성지이며, 명소중의 명소라 아니 할 수 없겠다.

또한 장안리 서쪽 기슭에는 육군 2201부대의 사격훈련장이 설치되어 있어 과거나 현재나 조국수호의 터전이 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미래를 전망하면서 이곳을 성지로 승화시켜 성역화 작업을 통해 애국애족과 정신적 교육의 도장으로 삼았으면 하는 생각도 해본다.

 

☞ 빙경산 전설: 장안면 황곡리 황의호씨에 따르면 구병산에서 봉황새가 날아와 황곡리 뒷산(화개동 앞산)인 이 빙경산에서 놀다가 돌아갈 때면 봉비리 앞 오리미 숲에 앉아 쉬어 갔다는 전설이 있다고 한다. 또한 장안에서 동학군이 회의를 할 때에는 전국에서 모인 동학군이 3, 4만을 넘었다는 전설도 전해져 내려온다고 한다.
김광수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