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나의 길(1)
(24) 나의 길(1)
  • 보은사람들
  • 승인 2024.03.14 09:50
  • 호수 7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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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성 수
속리산면 거주
시인, 수필가
충북작가회의 회원

얼마 전에 3.1절이 지났다. 필자는 이번 기념일에 청주에서 공연된 창작 판소리 유관순 열사가 완창 공연을 보면서 뜻깊은 시간을 가졌다. 100년이 더 지난 일이지만 이날이 되면 독립을 향한 그날의 함성과 외침이 들리는 듯 가슴이 뜨거워지는 격정이 일어난다. 시인에게 3.1 만세운동은 어떤 의미였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는데 마침 이 시가 있었다. ‘3.1 기념의 날을 맞으며’라는 부제가 달려있다.

기미년 만세 때
나도 소리 높이 만세를 부르고 싶었다.
아니 숭내라도 내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그 전해에 났기 때문에
어린애 본능으로 울기만 하였다.
여기서 시작한 것이 나의 울음이다.

광주 학생 사건 때
나도 두 가슴을 헤치고 여러 사람을
따르고 싶었다.
그러나 그때의 나는
중등학교 입학 시험에 미끄러져
그냥 시골구석에서 한문을 배울 때였다.
타고난 불운이 여기서 시작한 것이다.  (1946년 작, 「나의 길」전반부)

3.1 만세 운동 이후 임시정부는 이듬해인 1930년부터 국경일로 지정하여 기념해 왔으나 일제 치하의 식민지에서 얼마나 제대로 평가를 받을 수 있었을까?  정작 제대로 된 국경일로 자리매김하기는 1949년에야 법률로 국경일 지정된 이후의 일이다. 시인이 이 시를 발표한 것이 1946년 3월, 해방 이후 처음 맞는 3.1절이었다.
시에는 독립운동이라는 거대한 역사적 사건에 대한 감회와는 달리 지극히 개인적인 서사로 이어진다. 태극기를 들고 거리로 뛰쳐나온 온 겨레가 독립을 외칠 때, ‘어린애 본능으로 울기만 하였다’니 슬그머니 웃음이 나오는 표현이다.
 
그 뒤에 나는
동경에서 신문 배달을 하였다.
그리하여 붉은 동무와
나날이 싸우면서도
그 친구 말리는 붉은 시를 썼다.

그러나 이때도 늦은 때였다.
벌써 옳은 생각도 한철의 유행되는 옷감과 같이
철이 지났다.
그래서 내가 우니까
그때엔 모두 다 귀를 기울였다.
여기서 시작한 것이 나의 울음이다.   (같은 시, 중반부)

3.1절을 맞아 되돌아본 시인의 인생 여정이 제목과 같은 ‘나의 길’로 이어진다.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난 때가 1929년이고, 이후 시인이 동경으로 유학 간 때가 1937년이다. 10년마다 시인의 길에서 굵직한 사건이 일어나고 있다. 
다음 편에서 이어지는 시인의 길을 마저 함께 걸어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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