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하는 마음
배려하는 마음
  • 보은사람들
  • 승인 2024.02.22 09:38
  • 호수 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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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김 철 순
시인
마로면 관기약국

청주를 가기위해 시내버스를 타고 보은시외버스터미널에 갔다. 승차권을 출력하기 위해 무인발급기에 다가가니 관리인인 듯, 남자분이 다가와 친절하게 도와주었다. 나도 할 줄은 알지만 그 분의 친절에 작은 미소로 답을 해주었다. 버스 시간이 남아 있어서 안에서 기다렸더니, 그 분이 다가와 밖에서 줄을 서야한다고 일러 주었다. 밖에 나가보니 이미 긴 줄이 서 있었다. 전에는 버스가 텅텅 비어서 가기 일쑤라 줄을 선다는 건 미처 생각을 하지 못했다.
버스 도착 시간이 가까워 오자 친절하게 도와주었던 그 분이 다가와 다리가 불편한 학생을 맨 앞에 세워주었다. 그리고 나이가 드신 어르신 한분을 앞으로 모셨다. 그리고 조금 있으니 나를 그 어르신 뒤로 이끌었다. 순간 당황해서 내가 그렇게 나이가 들어 보이나? 벌써 어르신 대접을 받을 나인가? 속으로 고맙기도 하고 서글퍼지기도 했다. 하긴 내 나이를 잊고 살아서 그렇지 나이가 많긴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조금 있으니 아기 엄마가 오니까 그 아기 엄마를 내 뒤로 줄을 세웠다. 그런데도, 그런 반칙에도 누구 하나 항의를 하거나 얼굴을 찡그리는 젊은이는 없었다. 
조금 있으니 버스가 도착하고 차례대로 버스에 올랐다. 나는 내 뒤에 있는 아기 엄마가 먼저 오르라고 앞으로 보내주었다. 버스는 만원이었고 뒤에 줄을 섰던 젊은이들은 서서 청주를 가야했다. 가는 내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한참을 서서 가는데도 누구 하나 불만을 말하지 않았다. 요즘 아이들은 버릇이 없다고 말하는 어른들도 있지만 그건 극히 일부분의 얘기가 아닐까? 내가 아는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그렇지 않다. 예의 바르고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고 자기 인생을 주도적으로 살고 있다. 나 때는 말이야, 하면서 자기 고집을 주장하는 어른들도 있지만 나는 그런 어른이 되고 싶지는 않다. 
내가 일하는 약국에서도 아름다운 배려는 있다. 시골이라 몇 시간에 한 대씩 있는 시내버스를 놓칠세라 약을 빨리 지어달라는 어르신들이 있다. 대부분 먼저 왔어도 버스시간이 촉박하다고 양해를 구하면 먼저 지어주라고 양보를 하곤 한다. 정말 더러 아주 가끔 불만을 얘기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건 극히 드문 일이다. 
어릴 적 외할머니와 함께 살았다. 우리 동네에서 유일하게 담배를 팔았던 외할머니는 그래도 경제적인 여유가 있어서 오빠와 나에게 용돈을 건네주거나 학용품을 사주기도 했다. 길가 집이었던 외할머니집엔 마당에 우물이 있어서 지나가던 사람들이 목을 축이며 마루에 앉아서 쉬어가기도 하고 밤이면 마실꾼들이 넘쳐났다. 마음이 넉넉한 외할머니가 있기 때문이었다. 
가난한 그 시절엔 밥을 얻어먹으러 다니던 사람들이 꾀나 있어서 자주 우리 집을 찾아오곤 했다. 그러면 외할머니는 쌀 한줌을 쥐어주기 보다는 밥상을 정성껏 차려 대접해 주곤 했다. 그때엔 그게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크면서 그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누군가를 차별 없이 대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나의 아버지도 그랬다. 우리 동네에 광산에 다니며 농사를 짓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에게 우리 밭에서 고추며 나물을 맘껏 뜯어다 먹으라고 그랬다. 부담 갖지 말고 그냥 가져다 먹으라고. 그렇다고 우리가 잘 사는 것도 아닌데 아버지는 그렇게 베풀며 살았다. 
어느 책에서 읽은 기억이 난다. 아들에게 무언가를 사오라고 심부름을 시켰더니 거스름돈이 모자라서 물어보니 경비 아저씨에게 음료수를 사드리고 왔다고 그러더란다. 평소에 엄마가 경비 아저씨에게 음료수를 사주던 것을 아들이 보고 그대로 따라 한 것이라고.
세상이 너무 각박하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지만 꼭 그렇지만은 아닌 것 같다. 좋은 사람들이 더 많은 세상이다. 누군가를 배려하고 베풀며 사는 사람들이 더 많은 그래도 살만한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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