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부 대양 이범세어르신의 고달픔, 그림과 글로 풀어낸 그림책 애절
탄부 대양 이범세어르신의 고달픔, 그림과 글로 풀어낸 그림책 애절
  • 송진선 기자
  • 승인 2024.02.08 10:36
  • 호수 7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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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 틈틈이 달력 뒷장을 도화지 삼아 자연풍경 담아내

설이다. 고향엔 늙은 부모가 계신다. 곁을 다 떠나 사는 자식들과 올 설에 올 자손을 눈이 빠지도록 기다린다. 60대도 청년회원인 시골의 현실. 세월 속에 덩그러니 남아있는 부모에게 잠깐 보는 자식은 그리고 손주는 다시 살아갈 에너지원이다.
탄부면 대양리(이장 김영래)의 노인회 백승재(87)회장이 동네에 달력 뒷장에 그림을 그리고 시를 썼는데 얼마나 감동을 주는지 놀랐다며 이 보배로운 사람을 소개해주면 좋겠다며 제보해왔다. 
어려운 살림에 배고픔을 참아가며 자식 키워내고 지금은 농촌을 지키고 있는 우리 엄마 아버지의 보배로운 삶을 소개한다.

달력 뒷장을 도화지 삼아 자연풍경을 담아내고 있는 탄부면 대양리 이범세·한길순 부부의 모습.
달력 뒷장을 도화지 삼아 자연풍경을 담아내고 있는 탄부면 대양리 이범세·한길순 부부의 모습.

탄부면 대양리 이범세(89)어르신과 10살 아래 청산에서 시집온 부인 한길순(79)어르신가 기자를 반갑게 맞아주셨다. 
방안에는 큰 비닐봉투에 한가득 옥수수 튀밥이 담겨 있다. 겨울밤 긴 시간 옥수수 튀밥 군것질로 시간을 보낼 수 있으니 그것도 약이 될듯 싶다. 달력 한 통을 가득 채운 그림과 시는 지도해준 선생님 없이 스스로 익힌 것이라는데 놀랐다. 대단한 실력임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고령의 어르신이 갖는 취미로는 무척 로맨틱하게 느껴졌다. 그 그림을 보면 이범세어르신은 삶도 여유로웠을 것으로 생각됐는데 잔잔하게 천천히 자신을 소개한 어르신의 89년 삶은 그야말로 험난했다. 그 시절 어느 어르신이 그렇지 않았을까 싶지만 말이다.
위로 누나 둘에 막내였던 이범세어르신은 옥천에서 태어나 4살 때 부모님과 함께 중국 길림성으로 이주를 했다. 그곳에서 10살까지 지낸 후 11살 때 다시 한국으로 나왔는데 그때 큰 누나가 시집와 살았던 탄부 대양으로 들어왔다.
아침에 밥을 먹고 저녁에 죽을 먹는다는 뜻의 조반석죽(朝飯夕粥)은 꿈도 못 꾸고 초근목피까지 했던 시절이어서 학교 다니는 것이 어려워 이범세 어르신은 학령기였지만 책가방 대신 물지게를 지고 물을 길어날랐다. 그 시절 대양리는 길바닥에 돌멩이가 많고 울퉁불퉁해 물통을 지게로 지고 집까지 올라오다 보면 휘청거려 물통의 물은 거의 쏟아지고 여기저기 부딪히며 물통까지 찌그러지기 일쑤였다.

#독학으로 한글 익혀
이범세 어르신이 그렇게 어렵게 생활했던 시절 잘사는 집 자식들이 학교를 다니는 것을 보고 나도 좀 배워야겠다는 생각에 동네에서 학당을 하던 어른을 찾아가 “선생님 저 한글 좀 가르쳐주세요”라고 했다. 참 당돌하지만 똘망똘망한 이범세 어르신을 기특하게 여긴 학당 선생은 종이에 붓글씨로 한글 자음과 모음을 써줬다. 학당 선생에게 받아온 한글교본과 글을 바탕으로 쓰고 또 쓰고 읽고 또 읽으며 공부했다. 독학 한 것이다.
이범세 어르신은 한글을 완전히 떼는데 걸린 시간이 아마 5년은 걸린 것 같다고 했다. 몇시간 계속 공부한 게 아니라 일을 하다가 틈틈이, 잠자는 시간도 쪼개 공부를 했다. 그 결과 글씨도 바르게 쓰고 받침도 맞춘 실력을 갖출 수 있었다.
그림 실력은 어떻게 갖췄을까. 그림은 스스로 구도를 잡으며 구성하는 등 처음부터 실력을 보였다. 타고난 재능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있는 집 자식으로 태어났더라면 미술학도가 돼서 미술계에서 활동했거나 아니면 문학도가 됐을 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림도 독학 재능 갖추고 실력 출중
첫 그림실력의 보인 작품은 누구 가져갔는지도 모르게 없어져 버렸다. 머리를 길게 땋아내린 여인의 뒷모습을 그린 그림이었고 결혼 초기 부인도 그 작품을 봤다고 했다. 하지만 언제 어떻게 없어졌는데 그림을 넣어뒀던 겉포장만 남고 그림은 감쪽같이 사라졌다. 이범세 어르신은 지금도 아깝다고 말했다.
남아있는 시화 작품은 2017년 달력 12장 뒷면에 그린 것이다. 첫 장은 화사한 매화꽃이 장식했다. 시는 ‘곱게 핀 꽃송이야 네 자랑 하지마라. 남보다 먼저 핀 꽃 먼저 지느니라.’ 자만하지 말고 교만하지 말라는 교훈적 의미를 담겨 있다.
그림은 큰 나무와 쪽배가 놓여있는 강 풍경, 제비가 날아들고 화사하게 꽃이 핀 봄풍경, 초가지붕에 굴뚝을 타고 나오는 하얀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저녁마을 풍경, 소쩍새,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아기를 업은 여인이 걸어가는 구불구불 좁은 산길은 ‘인생길’로 표현하기도 했다. 타향살이로 지치고 지쳐 고향이 그리워 흐르는 눈물은 그믐달로 표현했다.
‘초생달 눈물’이라는 작품도 있는데 부인의 처지를 표현한 듯했다. 시집온 어린새댁 시집살이가 너무 힘들고 무서워 친정어머니가 보고싶어 흘리는 눈물이라고 했다. 문학적 감수성이 상당한 수준임을 알 수 있다.

#한권의 그림책 탄생
이같은 시(詩)화(畵) 작업의 시작은 2017년부터 이지만 매일매일 그린 것이 아니다. 적적할 때 힘들 때, 또 생각이 깊어질 때 좋은 풍경을 본 후 달력의 뒷장은 어김없이 이범세 어르신에게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게 했다. 12장을 다 그리는데 무려 4년이 걸렸다.
다 늦은 나이(82세)인 2017년에 시작한 것은 젊었을 때는 2남1녀 자식을 키우느라 겨를이 없었다. 미뤄뒀던 것을 시작한 것이 그때다. 맘 같아서는 금방금방, 쓱싹 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몸이 말을 잘 듣지 않아서 여의치 않았다. 노쇠해져 시력도 떨어지고 손가락 관절이 툭툭 불거지며 뒤틀어져 색연필을 똑바로 잡을 수 없을 정도였다. 거기다 기력마저 쇠해 손이 
떨려서 선을 반듯하게 긋는 것도 힘들었다. 그래도 달력 한 통은 다 채운다는 마음가짐으로 조금씩 조금씩 빈 공간을 채워나갔다.
3년 전 마지막 페이지를 장식한 후 더이상 그릴 수도 없어졌다는 마지막을 장식한 작품명은 ‘인생사’다.
그림은 물 위에 나뭇잎이 떠있는 구성이다. ‘심고 가꾸고 허리가 굽도록 곡식을 거둬들인 주인은 어디 가고 불청객이 만찬을 즐기는데 기다려도 기다려도 주인은 돌아올 수 없는 먼길을 가고 있네.’ 허무함, 아쉬움, 쓸쓸함이 크게 남는다.
이범세 어르신의 이같은 작품력은 어렸을 적 한글 공부할 때 장화홍련전, 심청전, 춘향전 등 문학작품집을 많이 읽은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동네 부잣집에서 책을 읽을 수 있도록 빌려주기도 했는데 이범세 어르신은 그 집을 자주 노크해 작품집을 빌려서 읽었다고 했다.
이범세 어르신은 이제는 거동조차 어려워 외부 활동은 거의 접고 방안, 겨우 집 마당에서 움직이는 게 고작이다. 남들 경로당에서 담소를 나누거나 게이트볼과 그라운드 골프를 치며 건강을 챙기는 여느 노인들과 달리 텔레비전을 보는 것으로 시간을 보내고 세상의 흐름을 읽는다. 특히 스포츠 프로그램을 잘 보는데 특히 축구선수 손홍민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또 매달 배달되는 제약회사 잡지는 상식과 정보를 얻는 것은 물론 읽는 재미를 갖게 한다. 그런데 이제는 시력이 더 떨어져 잡지보는 것도 힘들 정도다.
남편의 몸이 망가지는 동안 부인 한길순씨도 젊었을 적 예쁜 용모의 모습대신 허리가 구부정해졌다. 오랫동안 몸져누운 시아버지 병수발을 들고 어느 때는 몸이 허약했던 남편 몫까지 농사를 지을 때도 있었으니 몸이 성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집 가꾸는 것을 좋아하는 한길순 어르신은 화초를 가꾼다. 어둠침침하고 무채색의 방안 표정은 노란 꽃이 피는 화분으로 화사하게 바꿨다. 최근에는 경로당에서 다함께 만든 꽃꽂이 화분을 보는 얼굴 표정이 화사해졌다. 여러번 색칠을 한 반들반들한 툇마루는 집의 역사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새것이다.
설날 찾아올 자식들을 기다리며 오순도순 지내는 부창부수 이범세·한길순 부부는 곧 다가올 봄맞이를 이렇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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