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로송현 출향인의 고향사랑
마로송현 출향인의 고향사랑
  • 송진선 기자
  • 승인 2024.02.01 09:39
  • 호수 7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울 출신 구윤회 대표, 4도 3촌하며 마을 돌봄 자처

마로면 송현리는 집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게 아니라 솔고개, 수영골, 송골, 송현, 샘뜸, 웃솔고개마을 등 여러개의 자연마을로 구성돼 있다.
고령의 어르신들은 이런 자연마을명을 다 알아듣지만 지금은 송현리로 불리기 때문에 대부분은 송현리로 아는데 송현리에도 귀농귀촌인들이 들어오면서 마을규모가 커지고 있다.
이번에 소개하는 구윤회씨는 아직 고향으로 회귀한 것은 아니지만 조만간 본거지를 서울에서 고향 송현리로 옮기기 위해 4도 3촌 또는 5도 2촌 생활하며 고향으로 내려오기 위해 워밍업을 하는 중이다.
서울 구로동 공구상가에서 수십년간 터잡고 자영업을 하며 잔뼈가 굵어 남부럽지 않은 부도 모으고 공구협동조합 조합원들이 조합장 출마를 권할 정도로 리더십도 있는 구윤회씨는 남은 생을 생활하기 편한 서울 등 수도권이나 보은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부동산 가치가 높은 수도권이 아닌 고향 송현리를 인생2막의 시작점으로 잡은 것은 고향에 대한 애정, 그리고 조상을 위하는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송현리 출신 구윤회(사진 가운데)대표가 매년 마을에 물품이나 현금등을 기부하고, 전봇대에 마을기와 태극기를 걸어 단합의 힘을 보태고 있다.
송현리 출신 구윤회(사진 가운데)대표가 매년 마을에 물품이나 현금등을 기부하고, 전봇대에 마을기와 태극기를 걸어 단합의 힘을 보태고 있다.

조상 묘소의 벌초와 성묘를 하느라 고향을 오가기는 했으나 기껏해야 1년에 서너차례 정도에 그쳤다.
구윤회씨가 관기초등학교 6학년때 부모님과 함께 대전 유성으로 이사를 갔고 송현리에는 부모님이 사시던 집터는 있었으나 집이 없었다. 조상을 위하는 마음이 컸던 구윤회씨는 고향을 찾으면 마땅하게 지낼만한 곳이 없었기 때문에 다시 서울로 올라가기 바빴다. 10여년 전 당시 송현리를 찾았을 때 마침 마을총회가 있었고, 이것을 안 구윤회씨가 마을에 돼지 1마리를 냈다. 이것을 시작으로 구윤회씨는 마을에 대한 기부를 지속했다.
동기는 내고향 송현에 무엇을 할 것인가였다. 돼지 1마리 기증을 시작으로 구윤회씨는 매년 마을에 100만원 상당의 물품이나 현금 등을 기부, 현재까지 1여년 이상 마음 편치 않고 이어오고 있다.
송현리가 마을만들기 사업을 하면서 전봇대에 깃대를 설치해 송현리 전 마을의 전봇대에 태극기와 송현리 마을기(旗)를 꽂아서 마을의 풍경을 만들고 주민들에게는 하나의 마을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며 단합을 꾀하고 있는데 깃발이 바람에 펄럭이면서 훼손이 심해 자주 교체를 하는 상황이다.
훼손된 깃발을 교체하는 일은 주말을 맞아 고향으로 내려온 구윤회씨가 도맡고 있다. 어린시절을 보낸 집터에 집을 짓고 처음 5도2촌에서 4도3촌으로 고향 송현리에서 보내는 시간이 점차 늘리고 있는 구윤회씨는 집에만 오면 오토바이를 타고 솔고개, 수영골, 송골, 송현, 샘뜸, 웃솔고개마을까지 곳곳을 다니며 훼손된 기를 갈아끼운다. 그래서 깃발만 보더라도 아 구윤회씨가 집에 왔나보다 느껴질 정도다.
또 서울에서 하는 사업이 공구를 다르는 사업을 하기 때문에 공공시설물의 보수가 필요하면 누가 주문하지 않아도 알아서 고치고 교체한다.
구윤회씨와 초등학교 친구이기도 한 마을 차재옥 이장은 “경로당 간판이 약간 훼손돼서 저거 좀 고쳐야 하는데 하고 지나가는 말투로 얘기를 했더니 알아서 수리를 해왔는데 멋지지 않아요?” 하며 친구를 칭찬했다.
차재옥 이장은 “마을에서 처음 축제를 할 때 선후배가 어울리는 축제를 했는데 구윤회 이 친구가 마을의 기부문화 확산에 기폭제가 됐다”며 에어컨도 다른 사람이 달아주고 텔레비전도 기증해오는 등 마을에 필요한 물품의 기부행렬이 이어졌다고 덧붙였다. “마을을 위해 봉사하고 뭐라도 좀 하려고 노력하는 부분에서 주민 모두가 진정성을 느끼고 늘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구윤회 대표는 “차후에 이사를 와서 살겠지만 그때 우리 마을이 지금보다 그 때 더 잘사는 마을이 되면 좋겠다”며 “내가 하는 부분이 부족하지만 조금이나마 협조를 하는 것에서 내 스스로 위안을 삼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송현리로 주소를 옮기지도 않았는데 동네에서 저를 청년회에 가입시켜 활동할 수 있게 했는데 얼마나 고마운지”라고 말하면서 “고향에 오면 어울릴 친구, 형님이 있으니까 고향에 와도 좋고 올 때마다 설레고 내려오면 편안하고 참 좋고 힐링하고 간다”며 고향에 정착할 날을 기다린다고 덧붙였다.
마을 경로당에서 구윤회씨와 대화를 하는 동안 경로당에 하나둘 노인회원들이 모여들었다. 다정하게 맞는 모습이 따뜻하고 다정하게 느껴졌다. 서로 아끼고 도와주려고 하고 칭찬하는 주민성이 나날이 발전하는 송현리의 근간이 이루는 것 같다. 구윤회씨를 만나고 나온 마을광장에는 구윤회씨가 새것으로 갈아 끼운 송현리 마을깃발이 바람에 펄럭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