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기러기
눈, 기러기
  • 보은사람들
  • 승인 2024.01.24 18:52
  • 호수 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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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성 수
속리산면 거주
시인, 수필가
충북작가회의 회원

최근 한국 문단에서 동시가 차지하는 영역이나 역할이 매우 커지고 있다. 필자에게 전해진 몇 권의 동시집이 그 실증을 보여준다. 많은 시인들이 동시를 쓰고 동시집을 내는 경향이다. 시인의 시대는 동시가 지금보다 훨씬 귀한 시가 아니었을까 추측을 해본다.  1928년, 11세인 시인이 안성보통학교 5학년 때 「밤」을 처음으로 쓰게 되었는데, 이를 후에 평자들은 어린이 시라고 동시와 구분하였다.

애기가 웁니다
“언니 언니”
“왜 그러니?”
“아탕, 차 차”

눈을 한 움쿰,
애기 손은 파랗게 얼었습니다.  (1933년 작, 「눈」 전문)


16세가 된 시인이 휘문고보 문예반 활동을 시작하며 여러 작품들을 발표하였는데, 다른 작품들을 시로 구분하는 것에 반해, 이 「눈」은 동시로 구분되는 첫 작품이 되었다. 짧지만 선명한 이미지를 보여주는데, 눈을 뭉치며 노는 언니와 애기의 정겨운 모습이 그려진다. 대화를 그대로 시행에 옮겨놓는 수사가 당시에는 새로운 시도로 여겨졌겠다.


기러기는
어디로 가나.

달두,
별두,
꽁, 꽁, 죄 숨었는데
촛불두 없이 어떻게 가나. (1934년 작, 「기러기」 전문)


한 해 지나 발표된 이 시도 시인이 그 당시에 보여준 정서를 잘 나타내주고 있다. 달빛도 별빛도 없는 깜깜한 밤, 외롭게 날아가는 기러기에게 촛불이라도 하나 건네주고 싶은 동심을 표현해두었다.
동시가 단지 어린이에게 보여주기 위한 시가 아니고, 어린이가 쓰는 시가 아니라, 어른이 동심을 가지고 사물이나 사건을 바라보며, 동심의 시어로 쓴 시라고 정의하는 것처럼, 시인의 따뜻한 동심이 가감 없이 드러나 있다. 
시대를 건너 시인의 동시가 우리 가슴에 감동을 주는 것에 더불어 오늘날의 시인들이 쓰는 동시는 또 얼마나 따스한 감동을 줄 수 있을까. 동시집 한 권을 구해 읽어보는 시간을 가진다면, 나지막한 목소리로 소리 내어 읽어본다면, 긴긴 겨울밤을 보내는 따스한 선물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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