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는 힘
멈추는 힘
  • 김경순
  • 승인 2024.01.17 20:36
  • 호수 7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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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김 철 순
시인
마로면 관기약국

2024년의 새해가 밝았습니다. 새해 첫날도 여느 날처럼 일찍 일어나 녹차를 마시며 책을 보고 난 다음, 길고양이 밥 주고 반려견 두 마리 밥 주고 일출 시간에 맞춰 집 옆 둑방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자욱한 안개는 아무리 기다려도 해를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요. 해를 보지 못했다고 해서 새해가 오지 않은 건 아니지요. 기다리다 기다리다 그냥 돌아오면서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새해가 왔다고 해서 거창한 계획 같은 건 세우지 않았습니다. 그냥 하루 하루 열심히 살면 되는 거라구요. 아니 열심히 살기도 하지만 가끔 게으름도 부려 보려구요. 열심히 산다고 옆도 안 보고 앞만 보고 살면 안 되겠지요. 스프링벅처럼요. 가끔 멈춰 서서 내가 누군지 곰곰 생각도 해보고, 느릿느릿 산책도 해보고, 가끔 먼 산도 보면서 그렇게 마음만은 느리게 살려구요.
아프리카에는 산양의 일종인 스프링벅이 있다고 합니다. 이 짐승들은 아프리카 초원에서 한가롭게 풀을 뜯다가 갑자기 질주를 한다고 해요. 한 마리가 뛰기 시작하면 다른 양들은 영문도 모름 채 내달린다고 합니다. 그렇게 아무런 목적도 없이 내달리다가 나중에는 눈앞에 낭떠러지를 보고서도 멈추지 못하고 그대로 떨어져 죽는다는 것입니다. 브레이크가 고장 난 것 처럼요.
열심히 일만 한다고, 공부만 한다고, 출세를 한다고, 앞만 보고 뛴다면 스프링벅처럼 낭떠러지를 보고도 멈추지 못하는 순간이 올지도 모르니까요. 건강에 이상이 생길 수도 있고 정신적으로 힘들 수도 있으니까요.
전업주부로 살다가 늦은 나이에 감리사무실에서 8년, 군민원과에서 계약직으로 2년, 약국에서 10년째 일하고 있습니다. 꼭 20년 세월이 흘렀습니다. 전업주부로 살았으면 도저히 경험하지 못할 좋은 경험을 많이 하고 좋은 사람들도 만났습니다. 물론 저렇게 살지는 말아야지 하는 비양심적인 사람도 만났었구요. 
처음 감리사무실에서 정말 좋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감리단장님이 그렇고 전기감리가 그랬습니다. 감리단장님은 복잡한 감리서류를 찬찬히 가르쳐 주면서 글을 쓰는 내가 혹시 건설현장에서 마음 다치지 않을까 걱정해 주셨습니다. 
전기감리사인 오차장님은 젊은 사람인데도 배울게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아랫사람들을 깍듯이 대해주고 늘 공부를 하고 화장실 청소를 하는 등 감리사인 것을 결코 티내지 않았습니다. 현장에서 감리는 대접을 받는 자리인데도 말이지요. 
카톡을 정리하다가 친구에 오차장이 있어서 반가운김에 카톡을 보냈더랬습니다. 20년전 일이고 함께 근무한 시간이 길지 않아 기억을 할까? 반신반의하며 보냈더니 답장이 왔습니다. 그때 기술사 공부를 열심히 했었는데, 지금은 기술사를 열 개나 따서 최연소 최다 기록으로 기네스북에 올랐다구요. 그리고 직원을 130명 거느린 사장님에 기술사 학원을 서울에서 하고 있더라구요. 열심히 살고 성실히 산 그는 당연히 그런 보상을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가정에서도 성실한 가장이었거든요. 
그는 나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어요. 사무실 옆에 있던 은행나무에서 은행을 본인은 털고 나는 줍고 환상의 콤비였다고, 그리고 많은 추억이 생각난다고요. 언제 만나서 식사한번 하자고. 그가 권해준 책을 읽고 나도 열심히 살아야지 다짐했던 생각이 납니다.
약국에서의 십년도 많은 것을 깨닫게 하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고양이를 무서워했던 내가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사람이 되었고, 약국에 오시는 어르신들의 마디가 굵어진 손가락이랑 절뚝이는 다리를 보면서, 굽어진 허리를 보면서 안쓰러움에 마음 아파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집에만 있었다면 어르신들의 아픈 손가락을 절뚝이는 다리를 굽어진 허리를 보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배고픈 길고양이들을 모른 척 지나쳤을 거구요.
슬로싱킹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천천히 생각하는 습관을 가지면 이 습관을 통해서 탁월해지는 삶을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2024년, 천천히 생각하고 조급해하지 않으렵니다. 멈춰 서서 나를 들여다보는, 사물을 깊이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지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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