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후반전
인생의 후반전
  • 김경순
  • 승인 2023.12.28 09:25
  • 호수 7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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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김 윤 이
산외면 대원리

많은 시인들과 철학자들이 인생에 대해서 비유하고 정의한다. 인생은 화살과 같다, 흐르는 강과 같다, 두 번 살지 못하는 것이 인생이다, 오는 날은 알 수 있어도 가는 날은 알 수 없다 등 인생에 대해서 수많은 비유와 정의를 한다. 어쩌면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인생은 무엇이고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고민하는 지도 모른다. 삶이 계속되는 한 인생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하게 되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더 나아가 이 세상은 어떻게 이루어지게 되었는지, 앞으로 우리가 살아가야 할 세상을 위해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생각하게 하는 것이 인생이다.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인생은 포괄적이고 깊고 광대하다. 
인생을 속도에 비유해서 20대엔 20km로 달리고, 30대엔 30km, 50대엔 50km, 70대엔 70km로 달리는 것이 인생이라고들 한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리라. 나 또한 그렇게 생각된다. 시간이 쏜살같이 흐른다. 한 해를 마무리해야 하는 12월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느껴지는 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한 해를 계획하고 다짐하며 하루하루를 살다가 봄을 만나 새싹을 튀우고 열매들이 익어가고. 무더운 여름을 지나가며 풍요로운 가을을 맞이한 때가 엊그제 같은데 금세 추운 겨울이 오더니 한 해의 끝에 서 있다. 지나온 시간들을 반추해 보면 더 빠르게 지나간 것처럼 느껴진다. 
올해는 가을에 많이 바빠서 단풍이 다 지고 나서야 산행을 할 수 있었다. 가까이에 속리산이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오리숲길에서 시작하여 세심정을 지나 좀더 올라간 것 빼고 정상까지는 문장대에 세 번, 천왕봉에 한 번 올랐다. 천왕봉은 상대적으로 문장대보다는 인적이 드물어서 혼자 오르기는 편하지 않은 산행이라 결혼기념일을 맞아 남편과 함께 올랐다. 정상에는 아직 눈이 있어서 아이젠을 끼고 올라서 시간이 더 많이 걸렸다. 길이 미끄러운 데가 군데군데 있어서 천천히 오르기도 하고, 아이젠을 끼고 걷다 보니 걸음이 무거워 더뎠다. 
산을 오를 때는 인생이 등산 같다고 생각한다. 정상이 있다는 건 알지만 그 끝이 언제쯤인지 알 수 없어 두렵고, 한 발 한 발 내딛는 걸음이 힘겨워 숨이 차고, 다리의 근육이 당겨 아파오고, 걸음이 무거워져 올라갈수록 더 자주 쉬게 된다. 정상에 가까울수록 산이 더 가파르기 때문이다. 문장대나 천왕봉은 그래도 괜찮지만 속리산의 한 봉우리인 묘봉은 올라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산봉우리를 돌기도 하고, 산봉우리 하나를 올랐다가, 내려갔다가 다시 오르기를 반복해야 한다. 우리의 인생도 무조건 오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올라갔다가 내려가고, 다시 오르기도 한다. 오르는 길은 그래도 정상에 가까워진다는 희망이 있어 견딜 수 있지만 오르기 위해 다시 내려갈 때는 그런 희망마저 꺾이는 것 같아 더 힘들다. 
인생의 후반전을 살고 있는 나는 어쩌면 산을 내려가는 길인지도 모르겠다. 내려간다고 해서 길이 쉬운 것만은 아니다. 여전히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도 하고, 올라갈 때 힘을 많이 써서 다리가 휘청거리기도 한다. 올라갈 때보다는 발걸음이 훨씬 무겁다. 무릎에도 무리가 가서 조심조심 내려와야 한다. 그래도 다행히 오르는 길보다는 수월하다. 내려가는 길이 확실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산을 다 내려가면 쉴 곳이 있다는 것이 그렇게 감사할 수가 없다. 산의 정상을 올랐다는 뿌듯함이 충만하다. 올라갈 때의 아픔과 내려올 때의 힘듦을 잊을 만큼 뿌듯하다. 
인생의 전반전이 눈 깜짝 할 사이에 지나갔다. 아쉬움이 더 큰 시간이다. 나뿐 아니라 누구라도 지나온 시간들은 만족보다는 아쉬움이 크다. 그렇다고 해서 아쉬워하고 후회하고 있기만 하기엔 너무 아까운 시간이다. 인생의 후반전을 더 풍성하고 즐겁게 살기 위해서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할까? 내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고, 나를 더욱 성숙하게 하는 일들, 나아가 이 세상을 좀더 밝고 따뜻하게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그것이 개인적인 취미의 문제이든,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문제이든, 또 지구를 살리는 환경 문제이든. 더 고민하고 생각하면서 한 해를 마무리하고 구체적으로 새해를 계획해야 할 때이다. 
이러한 때에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인생에는 끝이 있다는 것이다. 끝이 있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그렇게 움켜쥐고 살 필요도 없고, 그래도 내가 낫다고 우쭐할 필요도 없고, 아등바등 살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저 내게 주어진 시간에 감사하고, 내 주변에서 함께 살아가는 가족과 이웃들이 있음에 감사하는 인생의 후반전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열정적으로 삶의 성숙을 위해 채워나가는 인생의 후반전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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