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을 지붕 없는 박물관으로 만들어 가려면
보은을 지붕 없는 박물관으로 만들어 가려면
  • 김경순
  • 승인 2023.12.21 10:34
  • 호수 7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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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승 근
우석대학교 초빙교수

『마을엔 보물로 가득 차 있다』에서 오하라 가즈오키는 마을 전체가 지붕 없는 박물관으로서 문화유산, 산업유산, 자연유산 등 시간과 공간 그리고 인간이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온 삶터 디자인으로서 가치를 지닌다고 하였다. 이렇듯 마을에는 다양한 역사, 문화가 살아 있는 박물관이다. 어르신 한 분이 돌아가시면 마을의 역사가 사라진다는 말이 회자되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얼마 전 대통령 직속 지방시대 위원회의 자문위원(취약지역 개조사업) 일원으로 보은군 탄부면 평각1리 마을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이 마을은 2023년 ‘취약지역 생활여건 개조사업’에 선정된 전국 80개 마을 중 하나로 취약지역 주민의 기본적인 생활 수준 보장을 위해 안전•위생 등 긴요한 생활 인프라 확충 및 주거환경 개선, 주민역량 강화 등을 지원한다. 사업 기간 총 3년으로 진행되며 마을에 있는 슬레이트 지붕과 재래식 화장실, 좁은 마을 안길과 담장 정비 등으로 진행되며 사업비는 대략 20억 원 안팎에서 추진된다. 여러 자문위원들과 함께 이 마을을 둘러보며 모처럼 깨끗하고 인심 후덕한 농촌다운 마을 모습을 보았다고 입을 모아 이야기했다. 사업이 끝난 후 어떠한 모습을 지내게 될까 기대하는 마음을 안고 돌아왔다.
필자의 경험으로 마을 사업이 잘 진행되기 위해 필요한 몇 가지 주요 사항을 정리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마을 주민의 적극적인 참여와 관심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마을 사업이 리더(이장, 노인회장, 부녀회장 등) 또는 목소리 큰 사람이 추진하는 것으로 비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주민들 사이에 오해와 갈등이 따르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처음부터 주민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여러 분야의 관심과 재능을 지닌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실 수 있도록 다양한 분과의 운영위원회를 조직해야 한다.
둘째, 지속적으로 주민 회의와 교육을 진행해야 한다. ‘취약지역 생활여건 개조사업’의 본질이 주거환경 개선에 초점이 있다 보니 사업예산과 지원이 개인마다 각기 다르게 적용되는 구조를 지닌다. 여기에서 서로 다른 시각으로 견해를 갖게 되는 발단이 된다. ‘다른 집은 지붕도 고치고 창호도 바꾸는데 우리집은 왜 안 되지? 자부담 금액은 왜 다른 거지?’ 등 의심과 불만을 갖게 되는 지점이 생긴다. 이럴 때마다 끊임없는 공동회의와 교육을 통해 주민 모두가 사업의 구조와 내용을 이해하고, 각자가 지닌 입장과 불만으로 인해 생기는 거리를 좁히는 과정이 중요하다.
셋째, 기본계획 수립 전 마을 기초조사를 통해 과거, 현재를 담는 기록화(記錄化) 작업을 선행해야 한다. 본 사업이 끝나면 마을에는 집수리, 담장 정비, 빈집 철거 등 환경적, 물리적 변화가 생기게 된다. 따라서 기존의 삶터를 기록하는 일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여기에는 전문가 그룹(건축, 지역계획, 사회학 등)이 참여하여 기초적 데이터를 충실하게 정리하고 이를 통한 미래 지향적인 마을계획(기본계획 수립 포함)을 만드는 작업이 반드시 진행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본 사업은 분명 주민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휴먼케어와 역량강화를 통한 학습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주민을 향해 항상 열려있는 보은군농촌활력센터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대부분 형식과 매뉴얼에 매몰되어 사업을 진행하느라 주민의 이해가 미흡한데도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은데 그래서는 안 된다. 언제든 주민의 이해도를 체크하여 반복적인 교육을 진행해야 한다. 때로는 마을 특성에 맞는 교육방법, 퍼실리테이터 등 맞춤형 학습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이는 마을사업의 지속성을 담보하는 자산이 되는 것이다.
평각리 마을에서 본 마을 풍경, 특히 마을정미소 등이 철거인지 보존인지의 문제를 넘어서서 새로운 마을 문화 공간으로 우렁차게 활력을 찾을 모습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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