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를 보내며
한해를 보내며
  • 보은사람들
  • 승인 2023.12.21 09:46
  • 호수 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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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김 철 순
시인
마로면 관기약국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는 강추위가 기승을 부린다. 냉동고가 따로 없다. 밖에 두면 금방 얼어버린다. 눈까지 내려 길까지 미끄럽다.
12월 중순쯤, 몇 년 전부터 딸아이 둘과 함께 동해안에 가서 대게도 먹고 바닷가에 있는 커피가 맛있는 카페에 들러 커피도 마시고 온다. 연말에는 해맞이 인파랑 사람들이 더 몰려들 거 같아, 미리 한 해를 마무리할 겸 해마다 그런 가족행사를 갖는다. 
여름휴가 때 한번, 연말 즈음에 한번, 일 년에 두 번은 다녀온다. 바다가 없는 내륙에 사는 우리는 바다를 보며 심호흡 한번 해보고, 콧바람도 쏘이고, 한해를 뒤돌아보는 시간을 가진다.
올해도 셋 째 주 토요일, 아침에 일어나보니 바람도 불고 눈발도 날리는데, 기왕 계획한 거라며 동해안으로 향했다. 날씨가 안 좋아서 그런지 차들이 많지는 않았다. 몇 년 전, 살이 꽉 찬 대게를 양심적으로 골라주는 아저씨를 만나 단골이 되었다. 그리고 대게를 사서 가져다주면 쪄가지고 상차림을 해주는 단골 식당도 생겼다. 그 다음은 카페를 찾아 해안도로를 달리다가 바다가 보이는 전망 좋은 카페를 발견하고 들어갔는데, 커피 맛이 좋아 그곳도 단골 카페가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단골집을 찾아 한해를 마무리할 즈음 발걸음을 옮긴다. 
올해도 인심 좋은 그들을 만나고 왔다. 푸짐하게 대게도 먹고 회도 먹고 맛있는 커피도 마시고 왔다. 오는 길에는 온천에 들러 사우나까지 하고 왔다. 한해를 그렇게 개운하게 보내고 왔다.
예전엔 망년회다 송년회다 하면서 저녁 먹고 노래방가고, 2차, 3차까지 하면서 떠들썩하게 한해를 보낸 적도 있었다. 그것도 이 모임 저 모임 몇 번씩 되풀이 하면서. 뒤돌아 생각하니 부끄럽기 짝이 없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그런 떠들썩한 모임보다 가족과 함께 오붓하게 보내는 시간이 귀하게 느껴진다.
한해를 정신없이 달려왔다. 매일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녹차를 마시며 책을 본다. 그리고 일곱 시가 되면 길고양이들에게 사료를 주고, 반려견 두 마리에게도 사료를 챙겨주고, 오줌 싼 거 치워주고, 간단하게 차와 요구르트로 아침을 대신하고 출근을 서두른다. 하루 종일 일을 하고 6시에 퇴근하면, 또 다시 길고양이들 반려견들 사료 챙겨주고 저녁밥을 서둘러 짓는다. 그런 일상이 매일 반복된다. 
농사철이 되면 주말엔 남편이 하는 농사일을 거들어야 하고, 밭에 있는 고양이와 강아지들 사료를 챙겨준다. 똑 같은 일상이지만 봄이 가고, 여름이 가고, 가을이 가고, 이제 한해의 막바지인 겨울이 왔다. 어제와 같은 오늘이지만 조금은 다른 오늘인 것이다. 
같은 일상의 반복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을 때가 있다. 좋은 시집을 읽고, 또는 좋은 책을 읽고 잔잔한 감동이 가슴에 스며들 때다. 그런 날은 하루 종일 가슴이 벅차다. 물론 좋은 동시를 썼을 때도 그런 감정이 몰려온다. 돈으로는 살 수 없는 그 무엇이 가슴을 벅차게 한다. 산다는 건 똑같은 하루의 반복일 수 있지만, 지루한 일상의 반복인일지도 모르지만, 책이 주는 감동은 또 다른 새로운 하루를 선물해준다. 새로 읽을 책이 생기면 책속의 세상이 궁금해 설레며 잠이 든다. 새벽에 일어나 책속 세상을 만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내가 좋은 동시나 글을 써도 좋지만, 내가 경험해보지 않은 책속의 다른 세상을 만나는 것도 좋은 일이다.
강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겨울이다. 겨울엔 농사일이 없어서 오롯이 나만의 주말을 보낼 수 있어 좋다. 마음껏 책도 보고 밀린 집안일도 하고 뒹굴뒹굴 게으름을 피울 수 있어서 좋다. 잠이 오면 낮잠을 자기도 하면서.
정신없이 달려온 한해가 저물어 간다. 이제 한해를 마무리하면서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이기보다는 오늘 같은 내일을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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