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에서 부자로 사는 법
보은에서 부자로 사는 법
  • 보은사람들
  • 승인 2023.12.14 09:32
  • 호수 7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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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심 웅 섭
회인 해바라기문화공작소
숲길등산지도사

보은으로 이사 온 지 11년, 다니던 직장에서 정년퇴직한 지 올해로 4년째다. 예전보다 수입과 활동 범위는 줄었지만, 삶의 질은 오히려 좋아졌다. 속리산과 대청호반의 둘레길을 걷고, 텃밭을 가꾸고, 이웃들과 어울려 살면서 돈 없이도 부자로 사는 요령들을 터득해가고 있다. 그런데 그 요령 중에서도 으뜸이 바로 문화강좌를 수강하는 일이다.
나는 3년째 보은문화원에서 마련한 문화학교 프로그램 중 통기타 반에 다니고 있다. 그러나 솔직히 실력은 별로여서 겨우 쉬운 코드를 더듬으며 7080 노래 몇 곡을 부르는 정도다. 그런 내가 제법 오랜 기간 포기하지 않고 강좌를 다니는 이유가 있다. 첫째는 어이없을 정도로 싼 수강료이다. 학원이나 그룹 지도로 기타를 배우려면 한 달에 15만 원 이상을 내야 할 텐데, 문화원 강좌의 수강료는 9개월에 9만 원, 한 달에 달랑 만 원짜리 한 장으로 해결된다. 은퇴 백수에게 이보다 좋은 조건은 없다. 거기에 보은에 사는 비슷한 나이, 비슷한 취향의 사람들을 만나고 친해질 수 있는 것도 큰 장점이다. 기타학원에 다니면 가르치는 선생님과의 일대일 관계로 끝나겠지만 여기서는 모두가 친해져서 밥도 같이 먹고 봄, 가을로는 야외수업도 하고 때로는 봉사활동도 함께 한다. 지역에 관한 정보를 얻기도 하고 맛있는 사과나 꿀을 현지인 가격으로 싸게 사 먹기도 한다. 한마디로 기타를 핑계로 지역민으로 뿌리를 내릴 수 있다는 거다. 작년부터는 아예 ‘소리사랑’이라는 동호회에 발을 들이게 되면서 그 뿌리는 좀 더 넓고 단단해졌다.
또 하나 즐거움이 바로 무대에 서는 일이다. 일 년에 한두 번은 봉사활동이나 야외공연을 하게 되는데 나 같은 초보 기타리스트에게는 큰 영광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지난 12월 5일에 열린 올해 작품 발표회는 보은문화예술회관의 대공연장에서 이루어졌다. 무대만으로 보자면 전문 음악인 수준인 셈이다. 설레는 마음에 오전부터 모여 리허설을 마치고, 순서가 되어 회원들과 함께 연습한 곡을 신나게 연주하고는 객석에 앉았다. 이제부터는 다른 팀들의 공연을 감상할 참이다. 우선 다양한 장르와 많은 사람들의 숫자가 놀랍다. 내가 배우는 기타를 비롯하여 색소폰, 하모니카, 장구, 드럼, 오카리나……. 온갖 악기들을 신나게 연주한다. 팀당 대략 십여 명에서 스무 명 정도이니 이날 무대에 오른 사람만도 수백 명이 넘을 정도다. 젊은이들보다는 머리 희끗희끗한 중, 노년층이 많은데 모두 어찌나 즐겁게 연주하는지 그저 바라만 봐도 흐뭇하다. 실력이나 수준과는 관계없이 문화를 주체적으로 누리며 사는 모습이 보기 좋은 것이다. 
문화원 지하전시실에서는 전시가 한창이다. 입구의 유화를 시작으로 사진, 민화, 한국화, 서예, 캘리그라피, 생활공예, 가죽공예, 어반스케치 등등의 미술 공예품들이 수백 점이나 전시되고 있다. 알고 보니 보은문화원에서 올해 실시한 문화강좌만 44개이며 750여 명이 수강했단다. 강좌도 다양하고 시간대도 평일과 주말, 낮과 저녁 시간대에 걸쳐있어 사정에 맞춰 고르기도 쉽다. 부담 없는 가격에 다양한 강좌가 시간대별로 있으니 이것저것 고르고 싶은 게 인지상정, 내가 아는 회원 중에는 두세 개 강좌를 겹쳐 듣는 경우도 많다. 그야말로 문화생활로 꽉 찬 바쁜 일상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문화강좌는 문화원에만 있는 게 아니다. 여성회관, 실버복지관, 청소년센터, 가족센터, 민예총, 각 면 단위의 주민복지센터 등에서는 또 다양한 문화강좌들을 열고 있다. 약간의 관심과 노력만으로도 가까운 곳에서 문화를 즐길 수 있다는 말이다. 게다가 올해 보은군은 평생학습도시로 지정되어 앞으로는 더욱 다양한 프로그램과 동호회 활동들이 가능해질 전망이다. 속리산과 둘레길 등 아름다운 자연환경 속에서 여유롭게 문화생활을 누릴 수 있는 곳, 삶의 질이 보장되는 행복도시, 보은군이 지역소멸을 걱정하는 농촌이 아니라 살고 싶은 문화도시로 알려지고 자리 잡길 꿈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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