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마을 탐방 … (79)삼승면 송죽리
우리마을 탐방 … (79)삼승면 송죽리
  • 보은사람들
  • 승인 2023.12.07 10:00
  • 호수 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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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옥하고 넓은 땅 덕에 살기좋은 부자마을 삼승면 송죽리

#터골에서 이주한 송죽리는 땅이 기름지고 해가 길어 농사가 잘되는 지역으로 예부터 잘사는 사람들이 많았던 마을
이번주는 소나무와 대나무가 많이 있었다고 전해지는 삼승면 송죽리를 소개한다.
탐방 준비를 하고 출발하려는데 겨울이 깊어 가는지 바람이 차갑게 다가온다. 송죽리는 보은읍 남쪽 6km 지점 평지 형 마을로 마을 뒤로 산업단지가 조성되어 있다. 이곳은 들이 넓고 비옥해 농사짓기 편하고 사과 농사를 짓는 농가들이 많아 예부터 소득이 높은 마을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마을 회관에 도착하니 많은 사람들이 나와 계신다. “우리 마을은 터골에서 이주한 마을이랍니다. 원래 터골은 부자들이 많이 살았는데 조선 시대 마적들이 하도 많아서 이곳으로 이주해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하더라고요.” 올해 90세가 되셨다고 하시는 어르신께서 마을의 유래를 말씀해 주신다. “터골은 땅이 기름지고 해가 길어 농사가 잘되는 곳이랍니다. 그러다 보니 옛날부터 잘사는 사람들이 많았고 도둑들이 많이 들어왔던 것 같아요.” “그랬군요. 터골을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하나요?”하고 필자가 여쭈어보니 마을 회관 앞에서 감나무골 넘어가는 길로 가다 보면 양지바른 곳이 있다고 알려주신다. 

#돌로 만든 징으로 흙을 파서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석징이 소류지는 수년전 까지만 해도 어족자원이 풍부해 년 중 낚시를 즐기는 조사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던 곳 지금은 연꽃단지로 변해
터골 옆은 황토 말이라 부르던 곳이 있는데 질 좋은 황토가 있어 그리 불렀다고 한다. 어르신들이 알려 주시는 데로 터골을 찾아 옛 길로 들어서니 좁고 꾸불꾸불한 길이 나온다. 농로 길을 따라 조금 더 들어가니 8~90년 전 조성된 작은 소류지 하나가 나오는데, 사람들은 이 소류지를 석둥이(석징이) 못이라고 부른다. 
전해 내려오는 말에 의하면 소류지를 조성할 당시 돌로 만든 징으로 흙을 파서 만들었다고 석징이라 불렀다고 한다. 석징이 못은 서원리 문 앞들을 비롯한 마을주위의 석징이들, 납식이들 등 삼승면 일대의 논에 물을 공급하는 역할을 했던 못이다. 현재는 산업단지가 들어와 그 역할을 다했지만 수년 전만 해도 이곳은 농사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수원지였다. 특히 이곳은 어족자원이 풍부해 년 중 낚시를 즐기는 조사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던 곳이다. 지금은 소류지 앞에 행복주택이 들어서 있어 여름철이면 연꽃을 즐길 수 있는 명소이기도 하다. 석징이 못 위에는 터골 못이 있는데 이곳은 겨울철 어름 낚시를 즐기던 전문 꾼들의 명소였다. 석징이 북쪽은 과수유통센터와 기업지원센터가 조성되어 있어 보은군에서 생산되고 있는 과일을 비롯한 각종 생산품을 지원하고 있다. 방아다리가 있었던 곳은 최근 급격히 발전하고 있는 산업단지가 나온다. 이곳은 30여 개의 기업들이 입주해 각종 제품과 상품을 생산 전국으로 유통하고 있다. 예부터 부자들이 살았다고 전해지는 터골의 명성에 맞게 삼승산업단지에 입주하고 있는 기업들은 승승장구하고 있다고 한다. 

#송죽리는 터골에서 이주하여 갱생이 죽을 먹고 살 정도로 어려웠는데 석징이 못을 조성하고부터 부자들이 많이 사는 살기 좋은 마을로 바뀌어
터골과 황토말, 방아다리, 점말을 둘러보고 다시 필자의 발걸음은 마을 회관으로 향했다. 회관에 돌아와 문을 열고 들어가니 주민들 10여 명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 
오전에 뵈었던 어르신들과 다시 마을 이야기를 하는데, “우리 마을은 집집마다 우물이 있었는데요. 그 이유가 어느 날 마을 공동우물에 물이 나오지 않았다고 해요. 그 이유는 모르는데 갑자기 마을 우물이 나오지 않으니 멀리까지 물을 길러다 먹어야 하는 불편함 때문에 한집 두집 자기 집안에 우물을 파기 시작했다고 한다.” 지금도 우물이 갑자기 사라진 이유를 모른다고 하신다. 어르신의 말씀을 듣고 있던 주민 한 분이 옛이야기를 들려주신다고 하시며 “기자 양반 혹시 갱생이 죽이라고 먹어 보셨나요?” “갱생이 죽이요? 처음 들어보는데요. 그런 것이 있었나요?” 필자가 의아해하니 그 표정이 즐거우신지 어른들께서 모두 웃으신다. 사실 필자는 갱생이 죽이라는 말을 처음 들어보는 말이라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것이 무슨 죽이지요?”하고 여쭈어보니 “예전 먹고 살기가 어려울 때 식량이 없어 먹고 남은 식은 밥을 김치와 나물 등을 넣고 끓여 먹었던 죽”이라고 하신다. 지금으로 보면 잡탕 죽이라고 하신다. “우리는 젊은 시절 갱생이 죽을 안 먹은 사람이 없어요.” “아~! 짬뽕밥이군요?”하고 필자가 짬뽕밥을 좋아한다고 이야기했더니 옆에서 청소를 하고 계시던 아주머니께서 “짬뽕밥은 맛이라도 있지요. 갱생이 죽은 그런 고급스러운 밥이 아니고 식구들은 많지 식량은 부족하고 먹을 것이 없을 때니 먹다 남은 식은 밥에 김치와 나물을 넣고 끓이는 죽이지요. 가끔 수제비를 넣어 먹기도 했어요. 요즘 사람들은 건강식으로 먹고 있지만 옛날에는 살기 위해 먹었답니다. 7~80년 전에 보리고개를 넘을 때 갱생이 죽도 못 먹는 집이 많았어요. 지금은 세상이 좋아 먹을 것이 넘치는 세상이 되었지만 우리 시집와서 젊은 시절에는 고생들 많이 하였답니다.” “그러셨군요. 오늘 어르신들 말씀을 들어보니 쌀 한 톨 김치 한 조각 소홀히 해서는 안되겠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군요. 오늘 정말 감사합니다.” 
회관에서 어르신들에게 인사를 나누고 마늘이 많이 난다는 산대굴 골짜기를 들어가려고 하니 지형이 많이 달라진 모습이다. 돌아 나오며 석징이 소류지 옆에 조성된 쉼터에서 잠시 옛 생각에 젖어 있으니 오래 만에 찾아온 조사를 반기는 듯 삭아 내려앉은 복련 사이로 커다란 물고기 한 마리가 철썩 뛰어 오른다. 
양화용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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