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방(北方)의 길
북방(北方)의 길
  • 보은사람들
  • 승인 2023.11.30 09:11
  • 호수 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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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수
속리산면 거주
시인, 수필가
충북작가회의 회원

시를 가까이하면서 자주 하게 되는 생각들이 있다. 시를 왜 쓰는가, 왜 읽는가. 그럴 때마다 생각이 다르고 답이 달라지기도 하는데, 변하지 않는 여전히 어려운 물음이다. 그러면 대개의 경우 이런 정도의 답을 얻게 되기 마련이다. 다른 예술 분야이거나 같은 문학 중에 여러 부문에도 비슷한 정도로 해당되는 답이 되기도 한다. 
그것을 하나의 측면에서 표현하면, 인간에게 내재되어 있는 욕구 중에 자기표현과 타인과의 인정 혹은 공감으로 말할 수 있겠다. 다시 말하자면, 자신의 경험과 생각이 담긴 이야기를 하고 싶고, 그 이야기를 다른 이에게 들려주고 공감과 인정을 받고 싶다는 욕구에서 시를 쓰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우리와 시공간이 다른 시인에게도 같이 적용이 될 수 있겠다. 시인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까? 누구에게 들려주고 싶었을까? 식민지에서 지식인으로서의 비애와 독립 의지를 온 민족 이웃에게 들려주고 싶었겠다. 


눈 덮인 철로는 더욱이 싸늘하였다

소반 귀퉁이 옆에 앉은 농군에게서는 송아지의 냄새가 난다

힘없이 웃으면서 차만 타면 북으로 간다고

어린애는 운다 철마구리 울 듯

차창(車窓)이 고향을 지워버린다

어린애가 유리창을 쥐여뜯으며 몸부림친다    (1939년작, 「북방의 길」 전문)

* 철마구리 ; 참개구리의 일종


  시인의 이 무렵 시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사건은 일제의 수탈을 견디지 못하고, 살 길을 찾아 식구들을 데리고 고향을 떠나 한반도 너머 북방으로 떠나는 일이다. 시인도 북방을 향하는 열차에서 만난 숱한 동포들의 모습이기도 하였겠다. 무슨 설명이 무슨 묘사가 더 필요할까. 가슴속을 짓누르는 서글픔과 애잔함을 시로라도 풀어내지 않고서야 시인은 어떻게 숨을 쉴 수 있었을까? 시인은 그 가여운 가족에게 무슨 말을 들려주고 싶었을까? 몸부림치며 우는 어린아이에게는 무슨 말로 달래주고 싶었을까?

  시대가 바뀌어 지금은 상상하기도 쉽지 않은 정서여서 쉽게 공감이 되지는 않겠지만, 시인이 남긴 작품이 있어 우리는 지난 시대의 아픔의 일부나마 공감할 수 있게 된다. 왜 시를 읽는가 하는 물음을 다시 만난다. 우리가 시를 읽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누군가의 아픔을 공감해 주는 일, 그것이 시를 읽는 독자의 위대한 권력이자 행복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지금 이 글을 만나고 있는 독자들에게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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