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목(裸木)의 계절
나목(裸木)의 계절
  • 편집부
  • 승인 2011.11.10 10:07
  • 호수 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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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인(보은향토문화연구회, 보은장신)

11월 입니다. 눈물겹도록 치열했던 붉은 단풍도, 찬 서리를 견디어내던 국화 향기도 이제 그 자리를 비우고 있습니다. 나무들은 이미 말없이 자신의 본 모습을, 꾸밈없는 제 모습을  아무런 두려움 없이 보여줍니다. 바야흐로 나목의 계절입니다.

이즈음이면 숲은 깊고 그윽한 자태를 드러냅니다. 봄부터 가을까지 자신을 치장했던 꽃과 잎을 뿌리로 돌려보내고 곧게 자란 나무는 곧은 모습으로, 굽게 자란 나무는 굽은 모습 그대로 서 있습니다. 키 큰 나무는 높은 곳에서 키 작은 나무는 낮은 곳에서 서로 햇볕을 나누며 묵언(默言)의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 곧은 나무 굽은 나무, 큰 나무 작은 나무, 굵은 덩치 가녀린 몸매의 여러 존재들이 함께 어울리면서 숲은 건강한 생태계를 이루어 갑니다.

2011년도 수능시험이 끝났습니다. 수험생은 물론 그 가족들 또 선생님들 모두에게 수고하셨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제는 수험생이 중심이 되어 그 결과를 단순한 비교수치로서가 아닌 자신의 진로 선택을 위한 기초자료로 활용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할 것입니다. 주위에서도 점수 그 자체보다 젊은 세대의 미래를 함께 걱정하는 마음으로 수능시험과  대학입시 제도에 대하여 근본적인 문제점을 논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보은군민의 한 사람으로서 지난 주 룏주간 보은사람들룏지면을 통하여 처음으로 보은군내 성적 우수 고교생을 위한 심화학습에 관한 자세한 정보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28명의 학생을 위해 2억 원이 넘는 거액이 투입되었다는 사실에 벌어진 입이 닫쳐지지 않았습니다. 더군다나 그 강좌를 담당했던 강사들이 보은군내 재직하는 교사가 아닌 서울의 사설학원 강사라는 사실에 더욱 충격이 컸습니다. '군민의 혈세와 군민의 정성이 담긴 군민장학금을 이런 식으로 운용해도 되는가’ 하는 의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말이 심화학습이지 이건 공금을 동원한 고액과외가 아니겠습니까?

교육이 국가백년지계가 아닌 국민고통지원(國民苦痛之源)이 된 까닭은 바로 입시위주 점수중심의 서열화 때문입니다. 학생들은 석차로 인해 친구를 벗이 아닌 경쟁자로 간주하고 학부모는 사교육비 마련에 허리가 휘어집니다. 학교는 점점 더 입시학원을 닮아가고 선생님들은 사명감을 지닌 교육의 주체가 아닌 단순 직장인으로 평가됩니다.

현재의 기성세대 모두에게는 이렇게 왜곡된 교육을 바로잡아 다음 세대를 품성과 능력과 개성을 갖춘 건강하고 조화로운 인격체로 키워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지역에서는 교육의 정상화를 위하여 쓰여야 할 귀한 재원을 오히려 그 반대되는 일에 사용하고 있으니 실로 억장이 무너집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현 군수와 관내 공립중고등학교 책임자들 모두가 이제까지 운영된 고교심화학습에 대한 개선책이 절실하다는 것에 공감대를 이뤘다는 사실입니다. 문제점이 파악되었으니 과감한 혁신이 뒤따를 것으로 기대해봅니다.

속리산 오리숲이 산림청으로부터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명품 숲으로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곳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나무들이 제각각의 모습으로 자연스럽게 성장하고 또 소멸합니다. 그 길 위를 또한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걸어갑니다. 자연도 인간도 모두 각자의 존재 가치가 있는 법, 억지로 어느 한 쪽 만을 강조한다면 우주의 질서는 흐트러지고 그렇게 되면 모두가 고통을 겪게 되겠지요.

꾸밈도 과장도 없이 말없이 서있는 나목들, 11월은 이 나목들로 인하여 홀가분하면서도  근원적인 생각에 젖어들 수 있는 귀한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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