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도(强盜)에게 주는 시
강도(强盜)에게 주는 시
  • 보은사람들
  • 승인 2023.11.16 09:46
  • 호수 7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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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수
속리산면 거주
시인, 수필가
충북작가회의 회원

재미있는 시 한 편을 본다. 제목부터가 궁금증을 자아내는 작품이다. 시인이 살았던 시대에도 도둑은 있었겠다. 시인이라고 피해 갈 수 없었나 보다. 그것도 그냥 도둑이 아니라 강도를 만났다니. 어떻게 되었을까. 우선 한 번 읽어보자. 

어슥한 밤거리에서
나는 강도(强盜)를 만났다.
그리고 나는
웃었다.
빈주머니엣 돈 이 원을 꺼내 들은
내가 어째서 울어야 하느냐.
어째서 떨어야 되느냐.
강도도 어이가 없어
나의 뺨을 갈겼다.
-이 지지리 못난 자식아
이같이 돈 흔한 세상에 어째서 이밖에 없느냐.

오- 세상의 착한 사나이, 착한 여자야,
너는 보았느냐.
단시 시(詩)밖에 모르는 병(病)든 사내가
삼동 치위에 헐벗고 떨면서
시 한 수 이백 원,
그 때문에도 마구 써내는 이 시를 읽어보느냐.  

(1946년 작, 「강도에게 주는 시」 전문)


설마 진짜로 시인이 밤거리에서 강도를 만나기야 했을까. 설마 그렇다고 시인에게 못난 자식이라고 말하는 강도가 있을까. 아마도 시인의 상상력으로 자조적인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는 심정을 에둘러 시적으로 형상화하였겠지 싶다. 시 밖에  모르는 병든 사내라고  스스로를 표현한 것도, 시 한 수 이백 원에 시를 마구 써내는 것도 한편으로는 반어법으로 읽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주머니에 들어있던 이 원이면 지금의 화폐가치로는 얼마쯤이나 될까. 시 한 편의 원고료 이백 원은 그럼 얼마나 될까. 3만 원이나 5만 원쯤은 되나 모르겠다. 시인이 가난한 직업이라는 말은 언제나 바뀔 수 있을까.
그때 그 강도가 나중에 하늘나라에서 시인을 다시 만났다. 선생님 제가 그때 선생님을 때렸던 강도입니다. 선생님이 유명하신 시인인 줄을 몰라보고 감히 그런 짓을 했습니다. 이미 한 번 죽은 몸이라 다시 죽을 수는 없지만 정말 죽을죄보다 더한 죄를 지었습니다. 선생님의 시가 돈으로 바꿀 수 없는 귀한 보물과 같은 것을 이제야 조금 알게 된 것 같습니다. 제 빰을  한 번 세게 때려 주십시오.
시인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그놈의 시 한 수 이백 원은 이곳에서도 똑같아서, 지금도 이 원 밖에 더 줄 수가 없다네. 
그래도 시인은 그곳에서 계속 시를 쓰고 계실 것만 같은 이 가을, 강도에게 내어줄 돈 대신에 시인의 시집 한 권 구입해 읽는다면, 시인의 후학들인 지금 시대의 젊은 시인들의 시집도 함께 사준다면 시인이 좋아해 주지 않을까. 그렇게 실없는 상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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