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의 계절
시(詩)의 계절
  • 김경순
  • 승인 2023.11.01 18:32
  • 호수 7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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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김 윤 이
산외면 대원리

“돌아가기엔 이미 너무 많이 와버렸고/버리기에는 차마 아까운 시간입니다./어디선가 서리 맞은 어린 장미 한 송이/피를 문 입술로 이쪽을 보고 있을 것만 같습니다./낮이 조금 더 짧아졌습니다./더욱 그대를 사랑해야 하겠습니다.”
나태주 시인의 ‘11월’이라는 시이다. 11월이 시작되었다. 11월은 1년 중 10개월이 지나고, 마지막 달인 12월을 앞두고 있는 달이다. 깊어가는 가을의 끝에서 가을과 겨울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달이다. 추수를 갈무리하고 추운 겨울을 준비해야 하는 달이다. 그리고 시인의 싯구처럼 참으로 돌아가기엔 이미 너무 많이 와버렸고, 버리기에는 차마 아까운 달이다, 11월은.... 낮이 조금 더 짧아졌으니 더욱 그대를 사랑해야 하겠다는 시인의 다짐이 가을을 닮은 듯 쓸쓸하면서도 결연하다. 서리 맞은 어린 장미 한 송이가 나를 보고 있을 것만 같기 때문이리라. 
늦가을은 왠지 쓸쓸해지는 계절이다. 추수가 다 끝난 들판을 보아도, 산의 나무가 울긋불긋 단풍으로 물들다가 바람에 나뭇잎이 하나둘 떨어지는 걸 보아도 쓸쓸하다. 바스락거리는 낙엽이라도 밟으면 가슴 한 켠에 구멍이 뚫린 듯 허하다. 유독 왜 가을에 더 감성적일까? 긴 겨울을 이겨내기 위해 나무 스스로 물(체액)을 버리고 떨어지는 낙엽이 주는 애처로움에 우리의 감정이 이입되어서 그런 건 아닐까? 그래서인지 유독 시가 가을의 정서를 잘 표현해 주는 것 같다.
“한 잎 두 잎 나뭇잎/낮은 곳으로 자꾸 내려앉습니다./ 세상에 나누어 줄 것이 많다는 듯이/나도 그대에게 무엇을 좀 나눠 주고 싶습니다/내가 가진 게 너무 없다 할지라도/그대여/가을 저녁 한 때/낙엽이 지거든 물어 보십시오/사랑은 왜 낮은 곳에 있는지를.” 
안도현 시인의 ‘가을 엽서’라는 시다. 안도현은 엽서를 쓰며 낙엽처럼 사랑도 낮은 곳에 있다고 한다. 그리고 떨어지는 나뭇잎을 보며, 떨어져 있는 낙엽에게 사랑은 왜 낮은 곳에 있는지를 물어보라고 한다.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높이는 교만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사랑하기 어렵다. 특히나 처지가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놓인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낮은 곳에 있어봐야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의 어려운 상황을 이해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의 입장을 이해한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실제로 그 입장이 되어보지 않고서는 그 사람을 진정으로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이해한다는 말은 쉽게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나도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놓여 보니 나와 비슷한 상황에 있었던 다른 사람의 아픔이 그제서야 느껴졌다. 
그런데 시인은 떨어지는 나뭇잎을 보면서 그 모습이 세상에 나누어 줄 것이 많다는 것으로 느꼈다. 그러고는 나도 그대에게 무엇을 좀 나눠 주고 싶다고 한다. 자신이 가진 게 너무 없다 할지라도 말이다. 나뭇잎이 떨어져 낙엽이 되고 썩어져 부엽토가 되고, 꽃과 나무의 양분이 되는 것처럼 나뭇잎을 나뭇잎으로만 보지 않고 나뭇잎이 떨어져 어떻게 될지를 내다보는 시인의 눈이 귀하다.    
그럼에도 가을 하늘은 높고 푸르고 맑다. 어찌나 푸르고 맑은지 하늘을 배경으로 그냥 찍기만 해도 사진이 화보가 된다. 
누군가의 시처럼 “여름의 끝에서 간절하게 기다리던, 겨울이 오기 전 한껏 누리고 싶은 가을”이 깊어간다. 이번 주말엔 붉게 물든 단풍이 예쁜 길이나 숲을 찾아 가을을 흠뻑 느끼고, 조금씩 가을을 잘 떠나보내길 바란다. 
 2023년이 두 달 남았다. 올해 초, 나는 무엇을 계획하였던가? 그 계획들을 이루고 살았던가, 잊고 살았던가? 조금은 조급한 마음을 내려놓고 한 해를 돌아보며 올해가 가기 전에 꼭 해야 할 일, 꼭 해보고 싶었던 일들을 한두 개라도 이루어 본다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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