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레, 섬돌
물레, 섬돌
  • 보은사람들
  • 승인 2023.11.01 18:32
  • 호수 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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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성 수
속리산면 거주
시인, 수필가
충북작가회의 회원

시인의 많은 작품들 중에는 청년기에 쓴 동시들이 많이 있다. 이 후에는 동시를 찾기 힘들고, 주로 시를 많이 쓰고 산문과 평론과 번역시 등 다양한 글을 남겼다. 시인의 천재성은 어린 나이에 쓴 동시에서 나타나기 시작하였다고 할 수 있다.
시의 표현에는 의성어와 의태어를 많이 사용하는데, 특히 동시에 있어서도 아름다운 의성어와 의태어가 곳곳에서 만나게 된다. 이번에 감상하는 두 편의 동시에서 이 점에 주의를 기울여 보기로 하자. 

물레를 저으며
옛날이야기 하시는
공태인 할머니.

오로롱
오로롱

물레 도는 소리는
이야기처럼 무섭다.  (1936년 작, 「물레」 전문)

짧은 시 안에서 가장 눈에 들어오는 시어가 ‘오로롱 오로롱’이다. 물레 도는 소리를 나타내는 의성어, 소리흉내말이다. 다른 우리말 의성어가 그러하듯, 설명과 의미를 생각하기 전에 와 닿는 느낌만으로 소리의 맛이 전해져온다. 물레를 저어며 무서운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할머니가 옆에 계시는 듯하다. 이 ‘오로롱’은 시인이 처음 쓴 시어는 아니고 이미 오래전부터 구전되어오는 민요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우리말이다.


이끼 앉은
청솔바위 밑
소나무 아래
바닷바람은
작고 간즈러워
송이버섯은
문틀, 문틀
솟아오른다.  (1936년 작, 「섬골」 전문)

이 동시에는 ‘문틀, 문틀’이 눈이 금방 들어온다. 송이버섯이 솔잎 덤불 아래에서 살그머니 모습을 드러내는 모양을 표현한 의태어, 꼴흉내말이다. 부끄럽기도 하여 간지럽기도 하는 ‘문틀 문틀’이라니 그림이 그려진다. 소리가 들린다면 의성의로도 손색이 없겠다. 이 의태어는 다른 곳에 찾을 수 없었는데 시인만의 독창적 표현이었을까?
필자도 산골에 사는 재미로 가을 버섯 철에 송이버섯을 찾아 산을 오르기도 했는데, 앞으로는 이 문틀 문틀이라는 시어를 읊조리게 되지 않을까싶다. 문틀 문틀 올라오는 송이를 만나는 일은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콩닥콩닥해지겠다. 예쁜 황금빛이 눈을 부시게 하는 송이를 만나는 일이나, 시인의 동시에서 아름다운 시어를 만나는 일이 똑같이 반가운 일이 아닐까.
이 가을이 오로롱 오로롱, 문틀 문틀 깊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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