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걷이
가을 걷이
  • 김경순
  • 승인 2023.10.25 20:48
  • 호수 7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칼럼니스트 김 철 순
시인
마로면 관기약국

도무지 물러가지 않을 것 같은 무더위가 물러가고 드디어 가을은 가을이다. 얼마 되지 않은 농사를 짓지만 거두어들일 일도 걱정이다. 비가 자주 오기 때문이다. 그렇게 따듯하던 가을볕은 어디가고 비가 자주 내려서 고추부각 말리는 것도 그만두었다. 애기고추를 따다 놓고 쪄서 말리려고만 하면 자꾸 비가 내리는 것이다. 올해는 애호박 말리는 것도 가지 말리는 것도 그만 두었다.
얼마 전엔 고구마를 캤다. 길지는 않지만 여섯 골을 심었는데 꽤 많은 고구마를 수확했다. 그걸 남편과 함께 캐면서 힘들어, 힘들어, 소리를 얼마나 했는지. 그래도 여기저기 나누어줄 생각에 기쁜 생각은 들었다. 고구마 줄기를 말려서 반찬으로 해먹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은데 힘도 들고 비가 자주 와서 그것도 그만 두었다. 
주말에 들깨를 털자고 남편이 그러더니 비소식이 있다며 남편 혼자서 들깨를 털어서 왔다. 한 말쯤 되는 들깨를 가지고 와서는 힘들다고 한다. 그 얘기를 약국에 온 친척에게 했더니 자기는 여자지만 혼자서 일곱 말을 털었다고 하며 엄살이라며 웃는다. 
오늘 아침엔 서리가 내렸는지 길 건너편에 심은 호박이 풀이 죽어있다. 여기저기 누렇게 익은 호박을 따오면서 진즉 호박순을 딸 걸 후회해 본다. 어릴 적 먹던 호박순 된장국이 생각나서 작은 애호박이랑 그나마 서리를 덜 맞은 호박순과 이파리를 따다가 저녁에 호박순 된장국을 끓였다. 작은 호박을 으깨서 먹으면 입에서 퍼지는 구수한 맛이 어릴 때 먹던 그 맛이다. 그 호박순 된장국을 먹어야 진정 가을이 온 거라는 생각이 든다.
서리가 오고 날씨가 추워지니 김장을 하는 것이 걱정이다. 직장을 다니다 보니 시간은 없고 차근차근 준비를 하고 있다. 오늘은 멸치젓을 달였다. 오래 전에 사둔 멸치젓은 살점은 녹아 사라지고 뼈만 남아있다. 그것을 달이니 구수한 냄새가 난다. 멸치젓 달인 것을 한지에 받쳐서 맑은 액젓이 되면, 그것을 김장에도 넣고 두고두고 먹는다. 힘이 들어서 그렇지 사서 먹는 액젓이랑 비교가 되지 않는다. 깊은 맛이 나서 겉절이 등 어느 음식에 넣어도 맛이 있다.
고추는 벌써 빻아다 놓았고, 마늘은 하루에 조금씩 까고 있다. 집에 있으면 김장하기 며칠 전에 준비해도 되지만, 그렇질 못하니 미리미리 조금씩 하는 거다. 
날씨가 추워지니 또 청국장 생각이 나서 청국장을 띄웠다. 3일정도 큼큼한 냄새를 견뎠더니 드디어 맛있는 청국장이 띄워졌다. 묵은 김치 조금 넣고 두부랑 파를 넣고 끓였더니 얼마나 맛이 있는지 다른 반찬이 필요 없다. 어릴 때 동생은 청국장에 들어있는 콩을 너무 좋아했는데 동생네도 나누어줘야겠다. 
또 거두어들일 일이 남아 있다. 울금을 심었는데 그건 서리가 오고 나서 추울 때 캐야한다. 김장 끝내고 나서 울금을 수확해서 씻고 말리고 환도 만들고 울금가루도 만들어서 반찬에 넣어도 먹고 밥할 때도 넣어 먹으리라.
그리고 오랜만에 결실을 거두는 게 있다. 꼭 십년 만이다. 농사는 일 년이면 수확을 하는데 내 글 농사는 십 년이나 걸렸다. 두 번째 동시집이 마무리 되어간다. 부 구성이 끝나고 해설 쓰실 선생님이 정해지고, 그림 그릴 화가도 정해졌다. 내년 봄쯤 나올 계획이다. 어떤 동시집이 나올까 설레며 기다려 본다. 
가을은 수확의 계절인데, 비가 자주 와서 그런지 아직 들판엔 누런 벼가 그대로 있다. 쓰러진 벼에선 싹이 나기도 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비가 자주 와서 대추농사도 그렇고 사과농사도 그렇고 잘되지 않았다고 한다. 아무리 기계가 발달해도 농사는 하늘이 도와주지 않으면 안 되는 거 같다. 이제라도 따듯한 가을볕이 찾아와 주었으면 좋겠다. 저 들판의 벼들을 수확할 때 까지 만이라도.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