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둥구나무
가을, 둥구나무
  • 보은사람들
  • 승인 2023.09.27 09:25
  • 호수 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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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수
속리산면 거주
시인, 수필가
충북작가회의 회원

지지난 주말 시인의 생가가 있는 회인에서 오장환문학제가 잘 치러졌다. 전국 각지에서 찾아온 문학인들과 문학과 시인에 관심을 가진 많은 지역민들이 함께하여 시인을 기리는 뜻깊은 시간을 가졌다. 시인의 혼을 맞아들이고 존경과 애정의 마음을 전하고 다시 돌려보내는 공연도 가슴 뭉클함을 느끼게 해주었다.   
일기예보로 어느 정도 예상되었고, 여러 가지 대비를 한다고는 하였지만, 우천으로 인한 행사 진행의 어려움이 있어 아쉬웠다. 그런 가운데에도 행사의 한 부분인 어린이 합창 공연은 귀하고 소중한 시간을 선물해 주었다. 시인의 동시 사랑과 남겨놓은 동시와 어린이들의 고운 목소리가 한데 어울리는 감동이었다. 그래서 시인의 동시를 다시 찾아 읽어보았다.

바람이 불지 않아도 가랑잎은
한 잎, 두 잎, 떨어집니다

산과 들에는
단풍이 한창이어서 벌겋게 숯불처럼 피인 게
그래두는 덥지 않고 선선하기만 합니다.    (1936년 작, 「가을」 전문)

먼저 제목과 같이 이 계절을 노래한 짧은 동시다. 시만 보면 지금의 초등학교 저학년이 쓴 동시로 보이기도 한다. 그렇지만 19세인 시인은 이 무렵 ‘낭만’, ‘시인부락’ 동인으로 활동하면서 장시 「수부」를 발표한 시기이다. 시인은 수사와 기교를 배제하고 동심의 마음으로 동시를 쓴 것이리라. 단풍이 한창이어서 벌겋게 숯불처럼 핀다는 동시적 표현을 숨기진 못한 채 말이다.

둥구나무 사는 곳엔
동리가 있네.
꼬불꼬불 산골길을
돌아 나가면
둥구나무
동리보다
먼저 보이네.  (1936년 작, 「둥구나무」 전문)

마을 앞에 자리 잡은 커다란 정자나무는 고향 마을의 상징이나 추억의 중심으로 간직되기 마련이다. 시대가 바뀌고 사회의 격변에도 늘 제 자리를 지키며 그늘을 내어주는 둥구나무가 시인이 동시를 쓰는 마음에도 늘 함께 했으리라. 동심의 마음으로 시를 쓴 시인이지만 그 재능을 숨기지 못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동리에 둥구나무가 있는 것을 둥구나무 사는 곳에 동리가 있다는 시적 표현에 슬며시 웃음이 나온다. 
시인이 보여주는 시심이란 그런 것이다. 사물 하나하나에 애정 어린 시선으로 대하고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마음. 이제 가을이다. 시심을 풀어내기에 좋은 계절, 시인의 마음을 쫓아가며 동심을 따라가며 동시 몇 줄을 써보는 것은 어떨까?
문학제에 포함된 문학기행은 생가 주변과 회인 일대를 둘러보았는데, 돌담과 나란한 골목길과 큰 나무들도 반가운 풍경이었다. 시인의 어린 시절에도 이 둥구나무가 있는 풍경이 다르지 않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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