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자서전을 권하는 이유
영상자서전을 권하는 이유
  • 보은사람들
  • 승인 2023.09.14 10:24
  • 호수 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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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심웅섭
회인면 눌곡리
(사)속리산둘레길숲길등산지도사

얼마 전 장인어른의 서거 1주기를 맞아 시사회를 열었다. 간단히 추도예배를 마치고 스무 명 남짓의 자손들이 둘러 앉아 두 분의 영상자서전을 시청한 것이다. 자서전은 방송국에서 일한 적 있는 필자가 2009년부터 조금씩 촬영해 놓은 것을 모아서 최근에 완성했다. 일단 돌아가신 분이 14년 전의 젊은 목소리와 모습으로 나타난 것만으로도 눈물이 나도록 반갑다. 뒤이어 가부장적인 문화에서 자식들에게 말하지 못했던 인생 이야기가 시작된다. 두 분이 어떻게 만났으며, 지독한 가난 속에서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 얼마나 치열하게 살았는지, 막막하고 고생스럽고 행복했던 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각자 기억하는 아버지, 장인어른, 할아버지가 아니라 먼저 살고 간 한 인간의 진솔하고 담백한 삶의 이야기는 어떤 소설보다 실감 있고 감동적이다. 글로 담기 어려운 영상의 힘이다.
필자가 영상자서전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방송국 PD로 근무하던 15-6년 전이었다. 최근에는 이에 대한 관심이 많지만 그때만 해도 영상자서전이라는 말조차 흔하지 않았다. 나는 일인제작에 관심이 있어서 손수 캠코더를 들고 촬영을 했는데, 그 장르가 바로 휴먼 다큐멘터리였다. 알다시피 휴먼 다큐멘터리는 삶의 이야기와 모습을 가감 없이 담아내는 것이 생명이다. 그런데 제작을 하면서 유식하고 출세한 사람보다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훨씬 더 재미있고 감동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신의 삶과 생각을 꾸밈없이 보여주기 때문이다. 문득 살아온 이야기를 영상으로 기록하면 보통사람도 자서전을 쓸 수 있구나, 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글로 쓰는 자서전이야 상당한 필력이 있거나 대필작가라도 구할 수 있는 선택된 사람이라야 가능하지만, 말로 하는 거야 아무나 할 수 있으니 얼마나 편한가? 거기에 글로는 담을 수 없는 이미지와 목소리까지 기록할 수 있으니 말해 무엇하랴. 
그 사이 상황은 더 좋아졌다. 요즘은 스마트 폰이 생겨서 누구나, 언제나, 어디서나 동영상을 촬영할 수 있다. 특별한 장비나 기술도 필요 없고 마음만 내면 스스로, 혹은 다른 사람을 찍고 간단하게 편집까지 할 수 있는 시대다. 그래서 독자들에게 영상자서전을 만들어 보길 권한다. 영상자서전이라고 하니까 뭔가 엄청날 것 같지만 알고 보면 쉽다. 우선은 자신의 삶을 구술하는 것부터 시작해보자. 물론 몇 가지 요령은 있다. 우선 장소는 좀 편안하고 익숙한 곳, 이를테면 안방이나 거실, 식탁 등이 좋겠다. 과거를 떠 올리려면 오래된 앨범을 펼쳐 놓는 것도 방법이다. 어렸을 때부터 시대별로 나누어서, 가까운 사람들을 중심으로, 혹은 행복했던 순간이나 후회되는 일 등 주제별로 구술하는 것도 좋다. 하루에 끝내지 말고 충분한 시간을 두고 장소를 바꿔가며 기록하면 훨씬 더 다채롭고 재미있어 진다. 
이렇게 지나온 삶을 구술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영상자서전은 만들어 진 것이나 진배없다. 여기에 옛날 사진들을 모아 촬영하면 훨씬 재미있다. 과거와 관련된 서류(호적, 상장, 성적표 등등)나 오래전에 쓰던 물건이 있다면 이것도 훌륭한 촬영거리다. 더 욕심을 내자면 현재 자신이 사는 모습, 일을 하거나 취미생활을 하거나 혹은 집에서 먹고 쉬는 모습을 촬영하면 큰 도움이 된다. 이렇게 모은 영상들을 약간의 연습을 거쳐서 스마트 폰으로 편집하면 자신의 인생이 압축된 감동적인 휴먼 다큐멘터리가 완성될 것이다. 
잠깐, 그런데 영상자서전은 누구를 위해서 만드는 걸까? 내가 죽고 난 다음에 자식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사람들에게 자랑하기 위해서? 물론 그것도 맞다. 그러나 가장 먼저 즐길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다. 만드는 과정이 바로 놀이이며 치유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삶을 한 장 한 장 정리하다 보면 마음이 가벼워지고 살아갈 힘도 생긴다. 얽혀 있는 문제가 단순해지기도 하고, 지금 나를 누르고 있는 삶의 무게가 가벼워질 수도 있다. 내가 누군가를 위한 조연이 아니라 주연배우임을, 실패인 것 같던 내 인생이 나름 화려했음을 확인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자서전을 죽기 전이 아니라 바로 지금 시작해야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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