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점산성, 입구부터 잡초 우거져 들어가기 힘들 정도
호점산성, 입구부터 잡초 우거져 들어가기 힘들 정도
  • 송진선 기자
  • 승인 2023.08.31 09:47
  • 호수 7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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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지정 문화재의 현실 그대로 드러낸 것 아닌지 아쉬워


보은은 삼국시대 신라와 백제의 경계지역으로 후삼국시대에도 치열한 전쟁이 벌어졌던 곳이다. 그 때문인지 군내 산성군은 14개에 달한다. 신라와 백제의 접경을 이루고 후삼국시대에는 후백제와 고려와의 경계를 마주했다. 이같은 지정학적 위치로 볼 때 우리지역의 산성이 다른 어느 지역의 산성보다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성은 수많은 전쟁으로 부터 지역을 지킨 역사적인 산물이다.
보은문화원이 2002년에 펴낸 ‘보은의 성곽’편에 나온 성곽을 보면 문화재로 지정돼 보호되고 있는 성은 삼년산성 외에도 노고산성, 문암산성, 백현산성, 태봉산성, 관기산성, 매곡산성, 주성산성, 호점산성, 국사봉산성, 노성산성, 동학대도소 상터, 벙어리산성, 다라니보루가 있다.
이렇게 많은 산성 자원이 있지만 국가사적지로 지정돼 관리되고 있는 삼년산성 외에 나머지 산성에 대해서는 발굴이나 복원 등의 작업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타 지역은 어떨까? 본보는 역사문화관광자원으로 활용되고 있는 타 지역 성의 관리실태 및 이용사례 등을 취재해 우리고장 산성문화재도 지역주민들이 쉽게 접하고 지역사를 공유하는 역사교육의 장이 되고, 특히 지방소멸 시대 산성을 관광자원으로 활용, 지역경제 활성화 방안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보도순서>

■ 우리지역 산성문화재의 실제
   -삼년산성
   ▶ 호점산성

■ 관광상품으로 활용하는 
   타 지역 산성문화재
  -단양 온달산성 온달관광지로 
  -공주 공산성, 백제고도의 중심
  -대전 계족산성, 황톳길 더해져 유명세
  -독산성, 세계문화유산 추진

■ 삼년산성·호점산성의 
   관광상품화 방안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사적지로 지정돼 관리되고 많은 사람들이 찾는 삼년산성과 달리 호점산성은 초입부터 관리되지 않은 모습을 보여줘 아쉬운 마음이 들었던 곳이다. 보은군이 예산을 투입해 등반대회를 열 때 회인면 용곡리를 통해 진입했던 기억을 살려 호점산성 진입표시를 따라 발걸음을 옮기는데 입구부터 잡초가 우거져 올라가야 하나 접어야 하나 갈등했을 정도다. 비지정 문화재의 현주소인 것 같아 안타까움마저 들었다.
2003년 박종기 군수시절 호점산성 등반대회를 시작해 2013년 11회까지 매년 개최하다 중단됐다. 산성의 중요성, 역사적인 상징성 등과 관계없이 아예 산성을 찾지 않으니 관심에서도 멀어져버렸다.
이번 기획취재 주제로 산성, 유적지를 넘어 관광자원으로 정한 후 보은향토문화연구회 박연수 회원과 탐방한 호점산성의 현실을 보고 취재의 당위성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우리에게 던져진 숙제의 무게가 무겁다는 것도 체감했다.

■호점산성을 아시나요?
호점산성은 회인면 용곡리와 회남면 남대문리 경계에 있는 산성이다.
회남면 남대문리는 호점산성으로 인해 이름을 얻은 마을이다. 즉 호점산성의 남문 밖의 마을이란 뜻이다. 남대문리에서 청주시 문의면 청남대 방향의 고개를 염티재라고 부르는데 염티재 위에서 동남쪽을 바라보면 호점산성의 북쪽 성벽이 산 능선을 따라 쌓인 것이 보인다.
이 산성의 크기와 위용을 느낄 수 있다. 용곡리 옛 회룡초등학교 뒤 성거리 마을의 서쪽으로 성안골이라 불린 골짜기가 있는데 산성 등로는 이곳에서 시작된다. 산성의 가장 낮은 곳인 동문 쪽이다. 동문 성곽은 2013년 마지막 등반대회때 봤던 것보다 더 무너진 것이 확인됐다. 탐방로까지 성 돌들이 무너져 내렸다.
보은문화원의 용역을 받아 차용걸 전 충북대 역사교육과 교수가 조사한 ‘보은의 성곽’ 호점산성 편을 보면 호점산성(虎岾山城)은 산봉우리 5개 및 중앙에 넓은 계곡이 있는 이른바 고로봉(袴㧯峰)형식의 포곡식(包谷式) 산성이라고 밝혔다.
즉 산성의 최고봉은 남쪽의 높은 봉우리로 치알봉(해발 358.9m)이고, 바로 아래가 해발 354.3m봉으로 전망대가 있는 곳으로 정남향이고 서쪽은 삼각점이 있는 고지로 해발 338.8m봉이다. 북쪽은 해발 292m의 갈미봉 표지판이 있다. 동북쪽은 245.2m의 봉우리가 있다.
이들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를 돌려 축조해 성 전체의 둘레가 2.722㎞에 달한다. 보은의 대표산성인 삼년산성(1.68㎞)보다 큰 군내 가장 큰 규모의 산성이다. 이중 지형이 매우 험하고 가파른 서남쪽 1.2㎞는 흙으로 쌓은 토축산성이다. 전체 산성의 반 가까이는 흙으로 쌓은 산성인 것이다.
호점산성은 축조방식에서 특이한 부분이 있는데 석축 벽면에 일정한 간격의 기둥 홈이 있는 것이 발견된다. 기둥 홈은 성벽을 빠르게 쌓기 위해 기둥을 세우고 석축을 쌓은 흔적으로 추정하고 있다. 
호점산성의 성벽에 남은 기둥자국은 특히 작은 돌로 메움질 한 것까지 남은 것이 있을 뿐만 아니라, 처음 축조한 성벽에도 있고, 나중에 수축한 성벽에서도 볼 수 있다. 그래서 호점산성은 기둥 홈이 남은 산성의 대표적인 성으로 평가받고 있다.
성안에는 1개의 샘이 있었으며 사철 물이 마르지 않았다고 하고 성안에는 7, 8개의 골짜기가 있고 모든 골짜기는 호점산성의 등산로가 시작되는 동쪽의 큰 계곡인 성안골로 합쳐져 대청호로 유입된다.
성곽은 문 자리는 6개소로 확인됐고 이중 성의 북벽에 1처, 서쪽망대의 북쪽에 1처, 남벽에 대문인 남문이 있고 동벽에 3처가 있고 신라계와 고려시대의 토기조각과 도기조각, 기와조각이 발견됐다고 전해졌다.
호점산성은 세종실록지리지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위치와 규모 등이 기록돼 있고 조선후기의 사료인 연려실기술에도 기록돼 있는데 왜 호점산성으로 불렀을까. 설화에 의하면 호점산성이 위치한 산봉우리에 영험한 호랑이가 살았다 해서 호점산성(虎岾山城이라 불렸다고 전해지고 있다.
호점산성을 쌓은 연대와 직접적인 내용은 사료에서 찾기는 힘들지만 호점산성 주변에는 고려말기의 명장인 최영 장군이 쌓았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출생지가 어디인지 뚜렷한 역사적 뒷받침이 없으나 최영 장군과 관련된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성안에는 장군의 태가 묻혀 있다는 전설과 그가 쓰던 금칼과 3일 동안 먹을 양식도 성안에 있었다고 한다.
또 대청댐으로 수몰된 사탄리의 말채나무도 최영장군과 관계가 있다. 말과 화살의 빠르기를 시합하기 위해 최영 장군이 활을 당기면서 말에 채찍을 가해 목표지점인 말채나무까지 달렸는데 화살이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화살이 이미 지나가고 말이 늦게 도착한 것으로 오해한 촤영 장군이 말의 목을 베고 돌아서는데 그때야 화살이 날아왔다는 것.
크게 탄식한 장군이 말을 묻어주고 그 위에 채찍을 꽂아두었는데 채찍에서 잎이 나고 크게 자랐는데 그것이 바로 말채나무다. 말채나무는 말무덤이라 불리는 강돌과 모래로 만든 돌무지 위에 크지 않게 남아있다고 한다.
호점산성 서북쪽 아랫마을 즉 남대문리의 자연마을인 만마루도 최영 장군과 관련 지명이다.  만마루는 한자로는 만지동(晩旨洞)이라 쓰는데 최영 장군이 호점산성을 쌓을 때 이곳에 만지장을 열었다고 해서 유래된 지명이라고 한다. 성내 출토 유물 중 신라계와 고려시대의 토기조각과 도기조각, 기와조각이 발견됐다고는 하지만 최영 장군이 축조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청원군(현 청주시) 문의면 마동리에서 회인으로 통하는 먹치와 그 아래 묘암리와 회인면 용곡리로 통하는 왕재, 더 남쪽으로 염티재가 있는데 호점산성은 왕재와 염티재를 통과하는 길목에 있다. 또 두 고개를 넘어와서 만마루에서 용곡으로 통하는 만마루재를 넘으면 회인으로 이어지고 동남으로는 회인에서 회남을 거쳐 대전에 이르는 길이 있다. 성에서는 동서로 이어지는 이 두 길이 바로 내려다보인다. 호점산성은 물길 따라 난 길과 고개를 넘는 길 전체를 내려다보며 지키는 요충지에 자리하고 있다.

■사람들은 호점산성을 찾고 있었다
동네 사람들이 버섯을 채취하고 산나물을 뜯기 위해 입산했던 것이 고작인 채 오랫동안 전설과 기록으로만 전해졌던 호점산성의 산성을 보기위해 들어갔던 것은 지난 2003년이다.
당시 보은군이 8천700만원을 투입해 등산로를 정비하고 전망대 2개소와 안내판을 설치했다. 이후 2007년 3천만원을 투입하여 등산로 목책 및 침목계단을 설치하고 2008년에는 댐지원 사업비 5천만원을 확보해 험준한 등산로를 정비하고 부족한 시설을 보완했다. 2011년에도 보강사업을 했다. 천년이 지난 후 산성을 탐방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춘 것이다.
보은군은 호점산성 등산로 개설 기념으로 등반대회를 처음 개최한 것은 지난 2003년이다.이후 해마다 등반대회를 개최하면서 호점산성은 지역주민 뿐만 아니라 외부에도 알려지기 시작했다. 지역 주민들이 등반대회 때만 호점산성을 찾는 것과 달리 외부인들은 수시로 이곳을 찾았다. 잡초가 우거져 풀숲을 헤쳐나가야 하는 구간만 지나면 오랫동안 사람들이 찾아서 밟아져 다져진 등산로가 뚜렷하게 보이는데 등반대회 때 찾은 군민들이 등산로를 밟아서 다져진 것이라기 보다는 수시로 이곳을 찾은 외부인들의 발길에 의해 분간할 수 있는 곳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등반대회는 2003년부터 2013년까지 11년간 11월 중 연 1회 개최에 그쳤고 한 번 방문이 고작이어서 1년에 딱 한 번 밟은 것 가지고는 어디가 어디인지 분간을 할 수 없었을 것을 예상할 수 있다.
반면 외부인들은 대회와 관계없이 연중 이곳을 찾았다. 특히나 무더웠던 올해 여름에도 호점산성을 찾았다. 그 흔적은 인터넷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사시사철 호점산성의 풍경과 후기 등을 블로그나 카페 등에 기록하고 있었다. 수시로 호점산성을 찾은 외부인들 덕분에 등산로가 다졌다고 할 수 있다.
보은군민들이 찾지 않는 동안에도 이렇게 외부인들은 꾸준히 호점산성을 찾고 있고 그것을 눈으로도 확인이 돼서 다행스럽게 여겨졌다.
그러나 현시점에서 호점산성의 모습은 관리되지 않은 모습이어서 안타깝다.
여름내 자란 잡초가 앞을 등산로를 가로막아서 길을 내면서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가야 할 정도. 또 한 걸음 나아가면 호우 때 쓰러졌거나 쓰러질 듯 기울어져 허리를 굽히지 않으면 지나가지 못하게 나무가 앞을 가로막고 있다. 고생길의 연속이었다. 모기 등 해충이 얼마나 끓는지 모기에게 당한 헌혈량도 상당할 것 같았다.
또 등반대회가 종료된 후 관리되지 않은 모습도 거슬렸다. 소원성취나무로 명명된 나무는 이미 죽어서 가지만 남았다. 이미 생명을 다했으니 더이상 소원을 들어줄 수 없지만 소원성취나무 표지판은 그대로 있다.
또 쉼터로 조성한 정자에 붙여놓은 호점산성 관련 이야기 프린트물은 낡은 채 매달려 있다. 빗물이 스며들어 곰팡이가 피고 글씨가 번지고 겉에는 먼지가 달라붙어 지저분하다. 잘 정리된 호점산성 안내판이 없는 것을 아쉬워 한 사람이 호점산성 얘기를 전하기 위해 붙여놓은 것으로 보인다. 등반객들의 욕구를 행정이 따라가지 못한 현장이다.
또 해발고도를 잘못 표기한 것도 확인됐다. 치알봉 쪽으로 진행하다 만나는 이정표에는 전망대가 설치된 지대의 해발고도를 거리로 잘못 표기하고 있었다.

■관리하지 않으면 자원도 사라진다
성내에는 특이한 형상의 나무들이 많았다. 그냥 등산로만 통행할 때는 나무의 형상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하고 지나쳤을 나무들을 찾아내 스토리를 만들었다. 지난 2012년 당시 안광윤 회인면장이 등반대회를 준비하면서는 단순한 등로 탐방에 그치지 않고 성내 특이한 형상의 나무를 찾아서 인증사진을 찍으면 깜짝 선물을 제공하는 이벤트를 진행해 관심을 끌었다. 여자나무, 강시나무, 댕기나무, 피겨스케이트 김연아 선수가 뒤로 뻗은 다리를 두 손으로 들어올린 형상의 김연아 나무 등을 발견해 인증사진 찍기 이벤트를 진행한 것이다.
당시 명패를 달지 않고 해당나무를 찾도록 문제를 내서 대회가 중단된 후 지금도 해당 나무들이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한다.
여자나무는 이것이고, 강시나무는 이것이고 댕기나무는 이것이고, 김연아 나무는 이것이고 등등 팻말이 있다면 같이 감상하고 공감하며 호점산성에 대한 또다른 기억의 장면으로 남을텐데 아쉬울 따름이다.
관리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자원도 사라진다.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잊혀진다. 그곳에 있는 그 명물이 사람들의 관심을 받으며 기억될 수 있는 것을 살리지 못하는 것이다.
이번에 호점산성을 탐방하면서 소나무 양 가지로 가운데에서 자란 참나무를 꼭 껴안은 나무를 찾았다. 사랑나무로 명명했고 소나무와 참나무가 같이 자란 연리목도 찾았다. 
자원이 되는 것은 산성 그 자체이지만 스토리를 얼마나 잘 엮고 다양한 콘텐츠를 담는다면 단순한 문화재에서 명소로 거듭날 수 있다. 호점산성은 엮을 수 있는 자원이 참 많다.
무너진 곳도 많지만 성곽 원형을 볼 수 있는 구간도 길게 남아있고 석축을 어떻게 쌓았는지 속살도 볼 수 있고 삼년산성과 다른 성 돌 이해할 수 있다.
보은군은 올해 1억5천만원을 확보해 호점산성 문화재지표조사를 하고 있다. 탐방하면서 충북문화재연구원이 지표조사 구간에 꽂은 깃발도 확인했다.
보은군은 지표조사 결과를 토대로 향후 정밀발굴조사, 학술세미나 등을 실시한 후 문화재 지정을 신청한다는 계획이다.
보은군은 문화재가 많은 것 같지만 사실은 사찰문화재가 대부분이다. 법주사에 치중돼 있고 나머지는 삼년산성, 우당고택 정도다. 더 많은 자원을 꿰어 보배로 만들기 위해서는 비지정문화재인 호점산성이 문화재로 지정돼 격에 맞는 관리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
기 발굴한 나무와 얽힌 스토리, 그리고 호점산성과 얽힌 전설, 그리고 등반대회 속개, 그리고 대청호를 끼고 있지만 최고봉과 전망대에서 주변을 조망할 수 있는 시설 확보 등 호점산성이 유적지에 그치지 않고 관광 명소화를 위한 방안은 이번 기획 마지막호에 제안할 예정이다.
송진선·김경순 sun@boeunpeopl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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