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과 상생을 위해
공존과 상생을 위해
  • 보은사람들
  • 승인 2023.08.31 09:28
  • 호수 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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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김 윤 이
산외면 대원리

8월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더위를 많이 타는 편은 아닌데도 정말 더운 여름이었다. 해가 갈수록 여름이 힘들어진다. 지구의 온도가 점점 높아져가는 걸 느낀다. 이제 도시에 있는 사람들은 에어컨이 없으면 살기 힘들다고 한다. 대원리는 그래도 밤에 바람이 불면 시원한 편이어서 선풍기로도 더운 여름을 견딜 수 있었다. 
코로나 이후 손님이 줄었던 마을에 도시의 손님들이 찾아왔다. 농활로 우리 마을을 찾아 마을 어르신들을 위해 장수사진을 찍고, 머리카락을 시원하게 자르고 염색도 하고, 마을 벽화 그리기와 의료봉사 등 우리가 하지 못하는 많은 일들을 해주었다. 마을 어르신들은 평소에 받지 못했던 혜택을 받아 좋고, 농활 오신 분들은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지친 마음을 내려놓고, 마을 어르신들을 도움으로써 보람도 느낄 수 있으니 서로에게 좋은 시간이었던 것 같다. 요즘 우리가 흔히 말하는 ‘상생’, ‘공존’의 시간이었다. 
특별히 올 여름에는 그 동안 오지 못했던 조카들이 방문했는데 보은군에서 뱃들공원에 마련해준 물놀이장에서 정말 재미있게 놀았다. 동서는 여느 워터파크 못지 않은 시설이라며 칭찬했다. 나도 미끄럼틀에서 슬라이딩 하고 싶었지만 나이 제한이 있어서 타지는 못했다. 보은이 젊은 가정들을 품으려 애쓰는 것 같다. 
올 여름은 특히 보은영화관에도 여러 번 가서 영화를 관람하였다. 보은의 문화 혜택을 톡톡히 누렸다. ‘밀수’ ‘콘크리트 유토피아’, ‘오펜하이머’ 세 편의 영화를 보았다. 세 편의 영화 다 나름 의미가 있고 재미있었지만 마지막으로 본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가상의 재난영화이지만 아파트에 의해 울고 웃는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큰 메시지를 준 영화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아파트 공화국이 된 우리나라에서 집 한 채를 위해 자신의 모든 걸 바친 소시민들이 아파트로 대변되는 계급과 소유를 지키기 위해 얼마나 이기적으로 변해 가는지를 보여준다. 가상의 상황이지만 도시의 건물들이 다 무너지고 유일하게 황궁아파트의 한 동만 무너지지 않고 멀쩡하다. 전에 새로 들어선 신축 아파트 주민들이 무시하던 아파트이지만 재난의 상황에서 유일하게 남은 아파트가 된 것이다. 
그들을 무시하던 다른 아파트 주민들 중 살아남은 자들은 추위와 기아로 황궁아파트에 몰려들어와 생명을 유지하고자 한다. 하지만 황궁아파트 주민들은 외부인들이 자신의 집을 뺏기 위해 범죄까지 저지르자 위협을 느끼고 그들을 모두 내보내기로 한다. 아파트는 주민의 것이라며 외부인들을 내쫓았다. 결국 내쫓긴 이들은 추위와 기아로 목숨을 잃는다. 국회의원도 예외일 수 없었다. 반면에 황궁아파트 주민들은 하나의 공동체가 되어 규칙을 만들고, 규칙을 따르지 않으면 처벌도 하고, 일의 강도에 따라 식량도 다르게 배분한다. 황궁아파트 주민들은 자신의 것을 지키기 위해 하나가 되고, 가족들을 위해서라며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외면하고, 극단에는 식량을 구하기 위해 사람을 죽이기까지 한다. 집단 이기주의가 당연시 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처럼 아파트 주민들은 집단 이기주의로 똘돌 뭉친다. 그러나 그들의 공동체에 균열이 생기고, 외부인들이 습격해와 황궁아파트 주민들은 쫓겨나고 만다. 
영화를 보는 내내 ‘만약 저런 상황이라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속 한 사람처럼 적당히 무리들 속에 섞여 이런 상황에선 어쩔 수 없다고, 비도덕적이고 불법적인 행동을 정당화하며 살았을까? 아니면 아파트를 지켜내기 위해 앞장서서 전투적으로 행동했을까? 또 아니면 외부인들을 숨겨주고 함께 살기 위해 애썼을까? 극한의 상황에서는 인간의 본성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 
그래도 나는 함께 살아갈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주인공 박보영도 줄곧 “함께 살아갈 방법은 없나요?”라고 소신 있게 묻고, 외부인들을 숨겨준 한 주민을 돕기도 한다. 그에 대한 대가도 있었지만 마지막 장면은 박보영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무너져 내린 건물의 한 구석에 주인 없는 집에서 여러 명이 함께 살고, 주먹밥을 만들어 조건 없이 나누어 먹는 것으로 영화는 막을 내린다.
뉴스를 보면 한숨이 나올 때가 많다. 소통이 안 되는 국가와 정치 상황,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여러 사건 사고 등 할 말을 잃게 만든다. 이러한 때에 공존을 위해, 상생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인지 암담하다.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나의 본성을 거스르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때로 불편함을 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가정, 학교, 직장, 마을, 아파트 등 우리가 속한 곳에서 함께 살아가지 못해서 불화를 일으키고, 여러 가지 사회 문제로 대두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는 공존과 상생을 위해 자신의 불편함을 참고 양보와 배려, 나눔 등을 통하여 함께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삶으로 보여주는 이들이 있음에 안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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