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촉도
귀촉도
  • 김경순
  • 승인 2023.08.17 09:30
  • 호수 7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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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성 수
속리산면 거주
시인, 수필가
충북작가회의 회원

시인과 동시대를 살면서 같이 활동한 많은 시인들 중 서정주가 있다. 1936년, 19세 무렵의 시인이 지금의 고등학교 격인 지산학교를 수료하고, 동경으로 유학 가기 전 『낭만』, 『시인부락』 동인으로 그와 교류하였다. 몇 년 뒤, 남만서방이란 서점 겸 출판사를 운영하며 그의 시집 『화사집』을 출판해 주기도 하였다. 두 시인은 같은 제목의 시를 가지고 있다.

파촉으로 가는 길은
서역 삼만리.
뜸부기 울음 우는 논두렁의 어둔 밤에서
길라래비 날려보는 외방 젊은이,
가슴에 깃든 꿈은 나래 접고 기다리는가.

흙먼지 자욱히 이는 장거리에
허리끈 끄르고, 대님 끄르고, 끝끝내 옷고름 떼고,
어두컴컴한 방구석에 혼자 앉아서
창 너머 뜨는 달, 상현달 바라다보면 물결은 이랑이랑
먼 바다의 향기를 품고,
파촉의 인주빛 노을은, 차차로 더워지는 눈시울 안에

풀섭마다 소해자의 관들이 널려 있는 뙤의 땅에는,
너를 기다리는 일금 칠십원야의 샐러리와 죄그만 STOOL이 하나
집을 떠나고, 권속마저 뿌리어치고,
장안 술 하룻밤에 마시려 해도
그거사 안 되지라요, 그거사 안 되지라요.

파촉으로 가는 길은
서역 하늘 밑.
둘러보는 네 웃음은 용천병의 꽃피는 울음
굳이 서서 웃는 검은 하늘에
상기도, 날지 않는 너의 꿈은 새벽별 모양,
아 새벽별 모양, 빤작일 수 있는 것일까.       (1941년 작, 「귀촉도」 전문)
 
*길라래비 : 잠자리, 소해자 : 어린 아이, STOOL-(직장의) 의자

이 시는 제목의 부제에 ‘정주에게 주는 시’라고 쓰여 있듯 시인이 서정주에게 주는 시다. 이 무렵 조국을 떠나 만주에서 지내던 친구 서정주를 찾아가, 그를 만난 상황을 그려져있다. 
첫 연의 ‘파촉으로 가는 길은/서역 삼만리’는 서정주의 같은 제목의 시에 ‘진달래 꽃비 오는 서역 삼만 리’와 ‘다시 오진 못하는 파촉 삼만 리’로 옮겨져 있으니, 나중에 돌려준 그의 답시가 아닐까 싶다.
2연과 3연에서 서정주와의 만남을 이야기하고, 마지막 연에는 서정주를 향한 시인의 마음을 보여주고 있다. 친구의 아직 날지 못한 꿈이 샛별처럼 반짝이기를 바라는 시인의 시선은 어떠했을까? 나중에 시인과 서정주의 서로 다른 길이 이때 이미 너무 큰 간격으로 벌어지기 시작한 것은 아닐까.
이 시에서 새벽별의 시상은 제목의 귀촉과 연관되어 매우 다양한 모습으로 해석될 수 있겠다. 필자의 지인은 이에 대해서 ‘귀촉의 울음을 상실의 시상으로 해석한다면 아마도 새벽별은 곧 쓰러질 허망한 꿈이 아닐까, 새벽별은 곧 밝아오는 해의 기운에 그 빛을 잃을 것이기 때문이다’라는 의견을 들려주었다.
시의 감상이나 해석도 시대가 바뀜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지극히 당연한 관점이 이 시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시인에 대한 평가도 시대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는 일이다. 나중에 제목이 같은 두 시를 비교해 읽어보는 일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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