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억 명의 재난영화
80억 명의 재난영화
  • 보은사람들
  • 승인 2023.08.10 09:34
  • 호수 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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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최 생 호
문화충전소 가람뫼 대표
보은읍 강산리

많이 아프다. 한번 오르기 시작한 열은 오르기만 할 뿐 내려갈 줄 모른다. 온몸 이곳저곳이  부러지고 뒤집어져 회복될 수 없는 상처와 아픔으로 지새우는 날들이다. 아프다고 몸부림을 치는 데 사람들은 나의 아픔을 외면한다. 오르는 열로 인한 돌이킬 수 없는 순간이 머지않았음을 알리는 처절한 경고음을 무시한다. 무관심을 넘어 무모하리만큼 오만하다. 이대로 가면 내게 깃들어 살아가는 모든 생명들이 사라질 시간은 더 빠르게 다가올 것이다. 얼마 남지 않았다. 치료하고 보살피고 휴식을 주어야 한다. 나는 지구다.
매일 아침 가장 먼저 하는 일이 하루의 날씨를 확인하는 것이다. 농부에게는 가장 중요한 일과 중 하나다. 요즘엔 연일 기상특보다. 태풍 예보는 태풍의 진로와 강도를 따라 잡지 못한다. 태풍의 경로는 만취 상태의 음주 운전과 흡사하다. 지나가는 속도는 느려져 더 많은 비와 바람으로 피해를 양산한다. 
뉴스 화면 속 태풍의 위력은 모든 것을 휩쓸고 할퀴며 쓸어갈 기세다. 폭염과 지진 관련 재난문자는 시도 때도 없이 울려 된다. 장맛비는 물 폭탄과 극한 호우라는 이름으로 위력을 나타낸다. 아침부터 내리쬐는 태양은 눈도 뜰 수 없을 만큼 강렬하다. 아르헨티나는 한겨울 낮 기온이 영상 30도를 넘어섰다. 남미의 일부 지역은 일교차가 40도를 넘나들고 있다. 세계 곳곳이 기상이변의 재앙에 빠져 있다. 대륙을 가리지 않고 최악의 가뭄 뒤에 대홍수가 발생한다. 40도 이상의 폭염은 보통 있는 일이고 역대 최고 기록 경신이라는 예보도 흔하다. 폭염이 원인이 되어 발생하는 산불은 무자비하다. 눈이 내리지 않던 지역에 폭설이 쏟아지고 비가 내리지 않던 곳에 홍수가 난다. 더 이상 나를 열받게 하지 말라는 지구의 섬뜩한 경고다. 
공포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공포는 작위적이고 비현실적인 부분이 많아 몰입도가 떨어진다. 요즘 우리가 겪고 있는 현실 속의 공포는 뛰어난 시나리오 작가도 그려내기 힘든 장면들이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생생한 광경은 머지않아 우리의 미래가 어찌 될지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다. 100세 시대를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란 단편적인 물음에 젖어 있는 인류를 비웃으며 조롱한다. 
재난 영화도 그 표현과 내용이 시시해졌다. 우리가 직접 마주한 재난의 세기와 피해가 무섭고 소름 돋는다. 태풍 독수리로 순식간에 도로가 강으로 변해 모든 걸 쓸어 가버린 베이징의 모습은 재난의 무삭제판이다. 무섭다.
지구 온난화라는 대 재앙의 경고를 생생하게 담아내 엄청난 충격과 울림을 주었던 다큐멘터리 ‘북극의 눈물’이 방영된 지도 15년이 흘렀다. 기후위기 속에 북극의 얼음과 빙하를 터전으로 살아가는 북극 곰과 이누이트족의 생존을 위한 처절한 사투는 많은 사람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수억 년 동안 한 번도 녹지 않은 얼음평원을 터전 삼아 극한의 추위에서도 평온하고 행복한 일상을 보냈던 북극의 생명들은 속절없이 녹아내린 빙하와 함께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 얼음 왕국에서 자연 속에 스며들어 가장 단순하고 아름답게 살아가던 이누이트족과 북극곰, 순록이 기후위기의 가장 앞선 피해자가 된 것은 비극이다. 
해가 갈수록 경험하지 못했던 극한의 기상이변이 우리 앞에 더 자주 나타날 것이다. 우리는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제방을 높이 쌓고 튼튼하게 건물을 세워도 자연의 위력 앞에는 모든 게 무용지물이다. 인간은 결코 자연을 넘어서거나 극복할 수 없다. 이겨내려는 오만이 더 큰 화를 불러온다. 괜찮을 거라는 자만이 돌이킬 수 없는 파괴를 부른다. 기후 위기는 단순히 극단적 날씨의 변화뿐만 아니라 물과 식량의 부족을 초래하며 해수면 상승과 생태계 붕괴로 이어져 인류 공멸의 위험을 앞당길 것이다.
산업 국가들이 화석연료를 이용해 비약적인 경제발전을 이룰 때 기후변화로 인해 가장 고통받는 국가들은 개발도상국들이었다. 이젠 선진국들이 획기적인 온실가스 감축 정책에 사활을 걸고 나서야 한다. 배출된 온실가스를 흡수할 수 있는 생활 속 실천 방안 등을 적극적으로 시행해야 한다. 모든 국가 정책의 최우선 순위가 기후위기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고 실천하는 데 맞춰져야 한다. 지구는 현재의 우리가 미래 세대로부터 빌려 쓰고 있다는 명제를 깊게 새겨야 한다. 생활 속의 작은 실천들이 모이고 모이면 아름다운 행성, 지구를 지키고 사람과 동물과 자연이 건강하게 공존하는 평화롭고 안전한 터전을 되살릴 수 있다. 발을 딛고 선 한 뼘의 땅이 지구다. 80억 인류의 미래가 얼마 남지 않았다. 80억 명의 재난영화는 막을 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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