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시계
은시계
  • 보은사람들
  • 승인 2023.07.27 09:28
  • 호수 6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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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수
속리산면 거주
시인, 수필가
충북작가회의 회원

우리 고장에서 나고 자란 문화 예술계의 자랑스러운 인물을 꼽으라고 할 때, 가장 먼저 오장환 시인을 떠올리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1918년 보은 회인에서 태어난 시인은 1930년대 ‘시단의 3대 천재’와 ‘시의 황제’로 불리며 문단에서 활동하고 수많은 작품을 쓰고 큰 족적을 남겼다. 이에 보은사람들에서 ‘오장환 시 다시 읽기’를 통해,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시인의 작품세계와 그의 생애를 다시 한 번 돌이켜보는 기회를 함께 가져보려고 한다. 시인의 존재와 업적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지역민들이 많이 계시는데 반해, 막상 그의 시를 접하게 되는 기회가 흔치 않았다는 생각이다. 앞으로 이어질 연재를 통해 오장환 시인의 시를 만나고, 100년의 시대 차이를 넘어, 새로운 시각과 해석을 통해 그의 시정신을 공감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시인의 작품을 가장 쉽게 만나 볼 수 있는 방법은 그의 시집을 통해서다. 집에 그의 시집을 한 권 가지고 있다면 언제고 쉽게 그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시인을 만나는 일이기도 하다. 지금의 시대라면 인터넷이나 유튜브를 통해서도 시인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나아가 영상이나 노래로 만날 수도 있는 세상이 되었으니, 시인이 지금의 시대를 만난다면 참 많이도 놀라지 않을까 싶다. 십여 년 전 시인을 기리는 사업의 일환으로 오장환 시노래 음반이 만들어졌다. 그곳에 실린 작품 중 하나가 「은시계」다.

슬픔이야 노상 새로워
내, 떠나는 길차림
오늘마저
해안 공원의 호젓한 자리.

사랑하는 건 모두 다 버리는구나
애틋한 담모롱이
등 굽은 길목.

사슴과 나는 철망 너머로
낯선 바다를 본다.

이슬보다 오히려 차고 고운 것
철기는 슬프고나
아름다운 꽃잎알
흔들리는 꽃수염.

우는 것이 쉽구나
제일 쉽구나.

말랑말랑한 뿔, 새로 돋은 사슴의 뿔.
무심코 자근자근 누르며
기위 떠나려면야
바램 하나 가져야겠네. 있어야겠네.          (1947년 작 「은시계」 전문)

시집에서 읽을 때도 좋았고, 노래로 들어도 좋아서 독자에게 소개해 주려고 골랐는데, 정작 글을 쓰기에 앞서 고민이 되었다. 제목의 은시계는 아마도 그 당시로는 신문물이었을 손목시계나 회중시계를 말하는 것이 분명하다. 문제는 필자의 시인의 시에 대한 독해력의 부족으로 본문에서 소재인 은시계에 대한 묘사를 찾아낼 수 없다는 일이었다.
여러 번을 읽고 나서 겨우 찾아낸 구절은 4연의 ‘이슬보담 오히려 차고 고흔 것/ 철기는 슬프고나’였다. 원문에 한자로 표기하지 않았지만 철기(鐵機)가 은시계를 말하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렇다면 이어지는 ‘아름다운 꽃잎알/ 흔들리는 꽃수염’은 회중시계의 뚜껑에 그려진 문양을 말하는가 싶다. 
상상력을 조금만 더 발휘해 본다면, 바닷가에서 이별을 준비하는, 사랑하는 이를 두고 길을 떠나면서 약속의 증표로 은시계를 건네며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는... 이럴 땐 시인을 만나싶다. 만나서 물어보면 속 시원하게 대답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은시계의 시침을 거꾸로 돌려 그 시절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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