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앞에서
고향 앞에서
  • 보은사람들
  • 승인 2023.07.13 09:18
  • 호수 6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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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수
속리산면 거주
시인, 수필가
충북작가회의 회원

장마철이다. 소나기가 몰려와 한바탕 빗물을 퍼붓고 가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햇살이 반짝 얼굴을 내민다. 그러다 어느새 먹구름이 몰려오는. 타향으로 떠나와 멀리 있다면 고향을 지키는 가족에게 안부라도 물어야 할까 보다. 그래서 찾아낸 오늘의 시다.
필자가 이 난을 시작하고 나서 새삼 놀란 일은 오래된 시인의 시를 읽고, 공부하고, 연구하는 독자와 작가나 평론가가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이었다. 처음에는 기존의 시인의 시에 대한 다른 사람의 평을 보고, 자칫 가질 수 있는 고정관념이나 선입감 없이 필자만의 시선과 목소리를 가지려고 인터넷 검색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과연 내가 시인의 시와 시 세계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혹은 바람대로 진부하거나 의례적인 상찬의 글이 아닌 온전한 감상이 되는지가 궁금해서 확인해 보고 싶었다. 각설하고...

흙이 풀리는 내음새
강바람은
산짐승의 우는 소릴 불러
다 녹지 않은 얼음장 울멍울멍 떠나려간다.

진종일
나룻가에 서성거리다
행인의 손을 쥐면 따뜻하리라

고향 가까운 주막에 들러
누구와 함께 지난날의 꿈을 이야기하랴.
양귀비 끊여다 놓고
주인집 늙은이는 공연히 눈물 지운다.

간간이 잔나비 우는 산기슭에는
아직도 무덤 속에 조상이 잠자고
설레는 바람이 가랑잎을 휩쓸어간다.

예제로 떠도는 장꾼들이여!
상고하며 오가는 길에
혹여나 보셨나이까.

전나무 우거진 마을
집집마다 누룩을 디디는 소리, 
누룩이 뜨는 내음새......                (1940년 작 「고향 앞에서」 전문)
*잔나비; 원숭이,  예제; 여기저기,  상고; 장사


고향이라는 단어 앞에서 우리가 느끼는 감성은 어디 얼마나 다를까? 시인의 회한도 예상을 벗어날 수 없는 범위 안이다. 그러나 그것이 시대를 넘어서도 바뀔 수 없는 바탕이거나 본질이 아닐까 싶다.
고향을 떠나 먼 곳에서 여전히 채워질 수 없는 미래에 대한 희망, 가까워지지 않는 꿈과 목표, 결국은 한계와 절망만 짊어진 채 고향을 찾아오지만. 고향도 제 모습을 간직하기 버거운 현실의 막막함 앞에 선 시인의 뒷모습이 시의 행간 곳곳에서 흐릿하게 드러난다. 
나룻가에 서성이는 시인과 행인, 주막의 늙은 주인의 눈물, 가랑잎 휩쓸리는 조상의 무덤 그리고 장사꾼들에게 물어보는 여기저기 소식들 역시 쓸쓸하기는 마찬가지였으리라. 
그러다... 그 쓸쓸함 속에서... 시인의 가슴에 여전히 따뜻하게 남아 있는... 누룩을 디디는 소리... 누룩이 뜨는 내음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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