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노래
  • 김경순
  • 승인 2023.06.29 09:16
  • 호수 69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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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수
속리산면 거주
시인, 수필가
충북작가회의 회원

긴 가뭄 끝에 비가 온다. 반가운 마음에 맨몸으로 뛰어나가 맞고 싶은 마음이다. 장마 전선이 올라오고 있다더니, 폭우 내리는 소리가 무섭게 다가온다. 오늘은 지금의 날씨에 꼭 맞는 시를 골랐다. 그리고 필자가 살고 있는 산골과도 잘 어울리는 내용이다.


깊은 산골
인적이 닿지 않는 곳에
온종일 소나기가 내리퍼붓는다.

이윽한 밤늦게까지
온 마음이 시원하게
쿵, 쿵, 쿵, 쿵, 가슴에 헤치는 소리가 있다.

이것이 노래다.

산이 산을 부르는
아득한 곳에서
폭포의 우람한 목청은
다시 무엇을 부르는 노래인가.

나는 듣는다.

깊은 산골짝
인적이 닿지 않는 곳에
억수로 퍼붓는 소나기 소리.     ( 1945년 작, 「노래」 전문 )

* 이윽한 : 이슥한의 평안도 방언, 시간이 지난.

  간단한 구조와 단순한 표현으로 이루어진 짧은 시이지만, 소나기와 산과 폭포의 만만하지 않은 이미지가 연결되어 있다. 무엇보다 산에 내리는 소나기 소리를 단순한 소리로 듣지 않고, 가슴을 헤치고 들어오는 노래로 인식한 시인의 심미안이 잘 드러난다. 물론 오늘날의 한층 더 정교해진 수사 기법으로 보자면 흥미가 줄어들 수도 있겠지만, 전에도 말했듯이 80년 정도의 시대 차이를 감안한다면 충분히 인정할 수준임이 분명하다.
  산이 산을 부른다는 표현과 이어지는 폭포의 우람한 목청도 시인의 섬세한 감각을 느끼게 해준다. 또한 ‘이것이 노래다’와 ‘나는 듣는다’처럼, 한 행으로 한 연을 만들어 시인의 판단이나 의지를 명확하게 드러내는 효과를 보여주고 있다.
  시인이 온몸으로 맞이한 산골에서의 소나기 소리와, 지금 우리가 가뭄 끝에 맞는 소나기 소리가 노래로 인식될 수 있는 것이 시가 주는 힘이고 공감이다.

  한동안 잦아들었던 빗소리가 다시금 빠른 박자와 세기로 바뀌고, 음정을 높이며 노래를 부르고, 주변 산자락이 협연이라도 시작할 모양이다. 상상의 세계에서나마 시인을 만난다면 파전 안주에 보은 대추막걸리 한 잔을 대접할 수 있지 않을까. 시인이 흥얼거리는 노랫가락을 만날 수 있지는 않을까. 
  긴 여름밤 산골의 빗소리가 오래오래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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