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와 박
제비와 박
  • 보은사람들
  • 승인 2023.06.15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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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성 수
속리산면 거주
시인, 수필가
충북작가회의 회원

제비와 박 이라고 하니 흥부전 이야기를 하려나 보다, 시인이 그런 시도 썼나보다 하고 생각할런 지 모르겠다. 그 건 아니고 시인이 쓴 동시 중에 각각의 제목이 있어, 한 번에 모아서 소개해 보려고 한다.

천재 시인으로 평가받았던 시인은, 그에 걸맞게 일찍이 15세 무렵부터 동시를 여러 지면에 발표하기 시작했고, 이 두 작품도 19세로 지산중학교(지금의 고등학교)를 수료하고, 본격적인 문단활동을 시작한 무렵 조선일보에 연재하였던 동시 중에 포함되어 있다. 

제비새끼는
빨랫줄에, 앉았다, 날았다
날으는 공부를 한다.
강남이 서울처럼 가고 싶은가
그러나 봄철이 오면
강남 갔던 제비들이 돌아옵니다.
고향은 그리운 게죠
제비들은
전깃줄에 올라앉아서
전화를 하는지
전깃줄로 모여듭니다.          (1936년작 「제비」 전문)

  이 동시에서 눈에 띄는 것은 새끼 제비들이 연신 빨랫줄에 앉았다 나는 모습을 나는 공부를 한다고 표현한 구절과 제비들이 전깃줄에 모여앉아 전화를 하는 지라고 표현한 부분이다. 세탁기와 건조기로 사라진 빨랫줄과 스마트폰 세대에게 전깃줄 혹은 전화선에서 전화를 한다는 연상은 불가능한 세상이 되었다. 향수를 느끼게 되는 표현이 사라진 것도 얼마 되지 않은 과거의 일이 되어버렸다.

넝쿨은 챙챙 감는다.
둥그런 박통이
주렁주렁 달리면
무거우니까
넝쿨은 지붕 위로,
지붕 위로,
다릿줄이 위태로워서
며칠을 기어올랐다.       (1936년작 「박」 전문)

  지붕 위에 있는 박을 보기는 어려운 시절이라 느낌이 팍 오지는 않겠지만, 박의 생존 본능을 재미있게 표현한 동시다. 박통이 커져 떨어질까 봐 넝쿨을 챙챙 감아 오르는 모습과 얼른 지붕 위로 올라가려고 안간힘을 쓰는 박의 마음을 고스란히 표현해주고 있다. 

  이 두 편의 동시만으로 시인의 천재성을 온전히 다 찾아 낼 수는 없을 것이나, 시인은 동시 외에 시와 장시, 번역시와 평론, 산문 등 많은 작품에서 순수한 문학적 열정과 시대의 아픔과 민족과 나라에 대한 비범한 면모를 보여준 귀한 시인이었다.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 우리가 시인의 시를 다시 읽는 것도 시인에게 바치는 소중한 헌사임을 의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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