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손안의 풍경
그대 손안의 풍경
  • 보은사람들
  • 승인 2023.06.08 09:29
  • 호수 6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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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최 생 호
문화충전소 가람뫼 대표
보은읍 강산리

스마트폰과 디지털 기기는 빠른 변화와 무한한 가치로 거침없이 우리에게 다가온다. 누구나  그 기기의 현란한 변신과 유혹에 쉽게 빠져들 수 있는 환경이다. 그 물건들이 가져온 편리함과 활용성 및 효용의 가치를 거부할 수 없기에 당장 우리 앞에 펼쳐진 풍경들을 보면 안타깝고 답답하다.
테이크 아웃을 위해 카페에 들렀다. 주문을 하고 기다리는 동안 카페 안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테이블 한 곳에는 젊은 부부 세 쌍이 웃음꽃을 피우며 대화에 집중하고 있었고, 옆 테이블에는 5세 이하로 보이는 아이들 일곱 명이 각자 스마트폰을 들고 게임과 동영상 시청에 몰두하고 있었다. 아이들에게는 자신의 손으로 조작할 수 있는 조그만 화면 속 세계가 신기한 세상의 전부인 듯했다. 덕분에 옆자리의 부모들은 어떤 제약도 받지 않고 온전히 자기들만의 시간을 즐기고 있다. 
얼마 전 서울에서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게 되었다. 플랫폼의 모든 사람들은 열차를 기다리는 동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지하철 안에서도 대부분 같은 모습이었다. 오직 자신만을 바라보게 만드는 신비한 기계 앞에 세상 사람들의 모습은 일체 되었다. 그 공간 안에서 사색에 잠기거나 책을 읽고 있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었다. 삭막한 장면이었다.
연인들로 보이는 한 쌍이 마주 보고 앉아 있지만 서로가 말이 없다. 연인과 연인 사이에 대화는 없지만 웃고 떠들게 만드는 매개체가 있다. 각자의 손에서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손가락 사이로 그들의 말과 생각은 전달된다. 마음에 담긴 생각을 머리에 새겨 상대의 눈빛을 바라보며 울림 있게 전달하는 설렘은 진풍경이 되었다. 
할아버지, 할머니를 모시고 온 가족이 외식을 나왔다. 어른과 아이들의 자리가 자연스레 나뉜다. 음식이 나오기 전 아이들의 손에는 모두 스마트폰이 들려 있다. 음식이 나오면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음식을 떠먹여 준다. 입만 벙긋하고 받아먹는 아이들의 눈과 손은 그들을 빨아들이는 조그만 기계에서 잠시도 멈추거나 벗어나지 않는다. 어른들의 식사에 아이들은 방해가 되는 듯, 오직 디지털의 세계 속에 가둬 놓는다. 오히려 그 조그만 손과 앙다문 입술로 요리조리 마음껏 조작하는 모습을 보며 신기하고 대견해 한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더욱 그렇다
가족이 모두 모이는 저녁, 그 공간에 하루의 일상을 나누고 다독이며 공감하는 시간은 사라졌다. 각자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자기만의 관심사에 빠져든다. 그 속에는 멈출 수 없는 속도로 재미와 관심과 상상의 세계가 펼쳐지고 넘쳐난다. 잠시도 나를 놓아두지 말라는 몸부림이 의식을 지배하며 끌어들인다. 오직 나만을 바라보라며 자극하고 유혹한다. 그 집에 가족은 보이지 않는다.
아이폰을 세상에 내놓은 스티브 잡스는 자신의 아이들에겐 아이폰은 물론 아이패드도 쓰지 못하도록 했다. 자녀들과 저녁식사를 하면서 책과 역사에 대한 토론은 물론 주제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세상을 변화시킨 혁신적인 제품을 내놓은 잡스였지만 이 기계에 과도하게 집착하거나 빠져들 경우 그 중독성과 폐해가 끼칠 위험에 대해 알고 있었다. 빌 게이츠도 아이가 14살이 될 때까지 휴대전화 사용을 금지하고 게임도 못하게 했다. 첨단 IT 기술의 산실인 실리콘밸리의 기업가들도 자신들의 자녀들에게 스마트폰, 패드, 컴퓨터 등 디지털 기기의 사용을 엄격하게 제한했다. 구글의 최고 경영자는 자녀가 TV를 보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자신도 TV를 보지 않았다고 한다.
디지털 기기의 과도한 사용은 아이들의 창의성과 사회성, 집중력을 현저하게 떨어뜨린다고 한다. 시력과 자존감마저 떨어지게 만든다. 요즘은 넷플릭스 등 소셜미디어가 청소년에게 미치는 위험성에 대한 경고도 넘쳐나고 있다.
독서광이었던 스티브 잡스는 여러 제품개발과 디자인에 대한 영감을 평소 가장 좋아했던 시인이자 화가였던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에서 얻었다. ‘순수의 전조’란 시의 한 구절인 “한 알의 모래에서 세상을 보고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보기 위해 그대 손안에 무한을 쥐고 한순간에 영원을 담아라”에서 아이폰 개발의 영감을 떠올린 것이다. 역설적이다. 과학 기술에 대한 해박한 지식에서 첨단 기기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독서와 역사와 예술과 사람에 대한 폭넓고 깊이 있는 사고와 관심, 상상력을 통해 세상을 바꾸는 문명은 탄생한다.
스마트폰과 디지털 기기로부터 멀어질수록 우리 모두의 시간은 더 풍족해지고 공간은 넉넉해지며 관계는 따뜻해질 것이다. 그것이 인간 존중의 미래를 열어가는 현명한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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