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산소머리곰탕
동산소머리곰탕
  • 보은사람들
  • 승인 2023.05.11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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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은 아내 나는 종업원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맑은 국물에 소머리고기가 그득 들어있다. 그 위로 파가 숭숭 올라 있다. 티 스픈 하나 소금을 넣는다. 약간 싱겁지만 자극적이지 않고 시원하게 국물이 넘어간다. 너무 삶아지지도 질기지도 않은 부드럽고 감칠맛 나는 고기가 씹는 즐거움을 준다. 정갈한 반찬이 맛을 더한다. 김치, 깍두기, 콩나물, 짱아치, 지라부침 그리고 봄의 전령사 미나리무침까지 백반집의 반찬을 넘어선다. 탕국물, 반찬이 모두 비워졌다. 금굴주유소 오일뱅크 옆에 위치한 동산소머리곰탕(보은군 보은읍 금굴리 66. ☎043-543-22970) 이다. 
“저는 암소머리만 사용합니다. 거세우는 사용하지 않지요. 머리 크기도 작고 고기도 적게 나오지만 맛이 다르지요. 식당은 내가 먹는 것이 아니라 손님이 드시는 거예요. 손님 입맛에 맞춰야 해요. 음식은 정성과 정직입니다. 이익을 쫒다보면 손님들이 다 알지요. 가마솥으로 뼈를 고는데 2~3일 걸려요. 두 번 우려내고 세 번째 탕을 손님에게 내 놓지요. 어제도 뼈 국물 우려내느라 새벽 두시에 집에 들어갔지요. 고기는 따로 삶는 답니다”라며 “식당일 오래 한 사람 보면 존경스러워요. 얼마나 힘든 일인지 식당 운영해 보고 알았어요. 자식에게 절대 안 넘깁니다. 고생 대물림하고 싶지 않아요”라며 말문을 연다.
19살부터 44년간 평생운수업에 종사하던 김동화(63)씨는 지인인 주유소 사장의 권유로 이곳에 소머리곰탕집을 열었다. 삶는 기술은 안동에서 배웠다. 소머리는 부산에서 직접 받는다. 그 기술을 전수 받는 안동에서 현재 딸아이가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생의 연이 아이러니하다.
2019년 9월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마자 코로나를 맞았다. 갑자기 손님이 뚝 끊겼다. 하루 두세명 손님을 받을 때도 있었다. 어쩌다 10만원 어치 팔면 다음날 15만원을 결제해야 한다. 살림이 쪼달리자 아내의 짜증도 늘어 갔다. 시간 날 적마다  착실하게 성당을 다니는 아내는 마음을 추스러 ‘손님에게 더 정성을 기울여야 한다’며 직접채취 한 나물 등을 정성스럽게 만들어 손님들에게 내어 놓았다. 서서히 손님들이 다시 찾아 들었다. 
“점심에는 정신이 없어요. 지나가는 트럭운전사, 바이커 그리고 농공·산업단지의 단골손님들이 끊임없이 찾아오지요. 원래 4년간 하려고 했던 것인데 코로나로 제대로 장사를 못했으니 3년을 더해야 겠지요”라며 “손님들이 남김없이 싹싹 드시고, 계산하면서 맛있게 잘 먹었다고 이야기 하면 그래도 내가 만든 음식이 괜찮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좋아요”라며 무뚝뚝한 김동하(63) 사장이 미소를 띤다. 
김동화 사장은 보은 삼산출신이다. 평생 보은을 지켰다. 90년 소개로 만난 세종(조치원) 출신 현점순(61)씨를 만나 결혼에 골인했다. 이평리 사글세 방에서 신혼살림을 차렸다. 슬하에 2남 1녀를 두었다. 지금은 장속리에 산다. “당시 늦게 장가를 간데다 그 좁은데서 자식들을 키웠지요. 39세에 부모님께서 편찮으셨어요. 치매 어머니를 10년간 돌봤지요. 부모님 모시랴, 동생들 건사하랴, 자식 키우랴 정신없었어요. 지금은 부모님 모두 떠나시고 자식들 스스로 밥벌이 하고 무거운 짐 벗었지요.”라며 당시를 회고한다. “모든 것을 내려놓으니 마음이 편하다”는 김대표는 “이곳의 사장은 아내고 나는 종업원”이라며 아내에 대한 사랑의 마음을 전했다.
박연수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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