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 전설
단풍 전설
  • 편집부
  • 승인 2011.10.20 10:10
  • 호수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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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애 수필가,보은이평

산기슭 외진 곳에 앙상한 나무 한 그루가 있었습니다. 주위의 억새풀과 붉나무 떡갈나무는 저만치 거리를 두고 있어서 어린 나무는 언제나 외롭고 쓸쓸 했습니다.

빼곡히 나무들이 모여 있는 산중턱의 숲을 올려다보는 것이 유일한 기쁨 이었지요 이제 곧 몰아닥칠 추위에 맞서기 위해 숲의 나무들처럼 키를 키우려 발돋움 했지만 어느새 매서운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 합니다

미동도 금지된 겨울의 침묵 속에서 어린나무는 꼼작할 수 없었습니다. 얼어붙은 회색의 그림자는 두텁고 광활했습니다. 절망과 고통도 함께 머물러 있었지요, 견딜 수 없는 추위로 나무의 마른가지가 곧 부러질 즈음 드디어 태양의 포근한 빛을 만났습니다. 따스한 나의 열기로 생명의 잎을 달아 보라고 태양은 유혹합니다.

봄빛은 눈부셨습니다. 그리고 푸른빛은 환희와 함께 돋아났지요. 비로소 꿈의 잎을 단 나무는 여름을 보냈습니다. 정열의 뜨거운 열기에 휩쓸려 여리던 이파리는 푸른빛을 한껏 내 뿜었습니다. 온기가 전해지지 않는 밤이면 두려움을 느끼게 되었어요. 그리고 그 빛을 그리워했습니다. 그것은 또한 태양의 은밀한 바람이기도 했습니다. 애틋한 서로의 눈길이 곧 맞닿을 듯합니다,

같은 하늘아래서 만나고 헤어짐을 반복 했지요. 나무는 이내 타 오릅니다 태양처럼 붉게….
태양은 겁이 났습니다. 자신의 따스한 눈빛만으로 취해 선홍빛 물이 드는 나무의 정열을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태양은 말했습니다.
“난 네게 더 이상 가까이 다가설 수 없어, 그리고 한곳에 머물지도 못해! 나를 기다리는 나무들에게 각기 고운 제 빛을 찾아 줘야해. 이제는 붉어진 너에 잎을 멀리서 지켜보고 있을 거야."

못내 아쉽다면서 태양은 돌아섰습니다. 그리고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지요. 그가 주고 싶은 만큼의 따스함을 주고, 벅찰 만큼의 열정도 받았으니까요. 너무 먼 곳에 있는 태양을 쫓을 수 없는 나무는 가슴이 활활 타 올랐습니다. 이별의 고통을 감내 하느라 가장 아름다운 붉은 빛이 되어갔지만 가버린 태양은 멀리 있을 뿐입니다.

고요하던 골짜기에 나무의 슬픔이 번집니다.  한숨 섞인 눈물이 아침마다 찬 이슬로 내립니다. 곳곳에 뿌려지던 슬픔도 이제는 나무의 수액과 함께 차츰 말라 버렸습니다. 타는 사랑도 한 잎, 목마른 그리움도 한 잎, 소용돌이치는 미움도 한 잎, 지는 설움이 결코 허무하지 않습니다. 나무의 나직한 넋두리가 바람 속에 떠다닙니다.
“난 내게 간직 되었던 사랑을 송두리째 불태울 수 있었어, 그리고 내가 그렇게 아름다울 수 있었던 건 태양의 맑고 찬란한 빛 때문이었지,"

나무는 또 이렇게 속삭입니다.
“짧지만 한 순간 누렸던 그 기억만으로 난 가을이면 어김없이 내 몸을 거듭 거듭 빨갛게 불사를 수 있어, 그리고 언제까지 행복해 할 거야. 태양이 선물한 단풍이라는 고운 이름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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