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삼년산성을 걷다
4월, 삼년산성을 걷다
  • 보은사람들
  • 승인 2023.04.20 09:42
  • 호수 6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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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심 웅 섭
회인면 눌곡리
(사)속리산둘레길숲길등산지도사

농경문화관에 주차하고 삼년산성을 오른다. 산림욕장을 거쳐 북문 - 동문- 서문을 돌아 다시 북문으로 내려오는 왕복 3.3㎞, 한 시간 반 정도의 가벼운 코스다. 넓은 임도 같은 진입로를 따라 조금 걸으니 고분공원으로 가는 넓은 길과 산림욕장으로 가는 좁은 숲길이 갈린다. 내 선택은 당연히 초록 숲과 예쁜 계단이 유혹하는 숲길이다. 
숲길로 접어드니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초록 세상이다. 소나무사이로 이름 모를 관목들과 참나무들이 연한 초록색 잎들을 내밀고 있고, 솔잎들로 폭신하게 덮인 계단 한켠에는 고사리가 파릇한 새싹을 아기 손처럼 말아 쥐고 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참나무들도 종류에 따라 크기와 색깔이 제각각이다. 신갈나무 잎은 어느새 어른 손바닥만 해서 연한 초록빛만 아니라면 신록이라고 보이지 않을 만큼 커져버렸고, 그보다 조금 진한 녹색의 굴참나무와 상수리나무는 이제 겨우 손가락 마디만한 꽃술과 어린잎이 오롱조롱 귀엽게 매달려 있다. 잠시 멈춰 서서 초록빛 새 생명들을 바라본다. 눈이 시원해지고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 그리고 초록의 맑은 기운이 손과 발끝을 거쳐 내 몸 구석구석까지 물감처럼 스며드는 듯하다. 
등산로는 구불구불 자연스럽게 숲속으로 나를 안내한다. 방부목 계단과 로프로 만든 난간은 만든 지 몇 년쯤 지난 듯, 적당히 곰삭아서 이미 숲과 한 몸이 돼 버렸다. 자연과 인공이라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요소들도 이렇게 시간이라는 마법이 조화를 부리면 서로를 닮아가며 하나가 된다. 그 길을 따라 구불구불, 오르락내리락 숲길 속으로 빨려든다. 문득 숲길을 걷기에 가장 좋은 계절은 언제일까, 하는 생각이 떠오른다. 눈이 오거나 쨍하고 추운 겨울은 그 지극한 청량감과 고독감이 좋고, 무더운 여름에는 시원한 그늘이 좋고, 울긋불긋 단풍이 화려한 가을에는 맛난 열매들까지 따 먹으니 더욱 좋다. 사계절 모두 장점들이 있으니 어느 한 계절의 숲길만 으뜸이라고 말하기가 어려우리라.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숲길에서 결정을 내린다면 단연코 신록이 시작되는 계절, 요즘이다. 더구나 아직 숲이 우거지기 전이어서 적당한 초록 속으로 길이 제 모습을 드러내고 있으니 길을 바라보며 걷는 재미가 더할 수밖에 없다.
작은 약수터에서 목을 축이고 북문으로 통하는 돌계단을 오른다. 한창 피어나는 철쭉꽃과 군데군데 무너진 고성이 묘한 대비와 조화를 이루고 있다. 북문에서 동문으로 이어지는 길은 오래된 돌벽과 파릇한 상수리나무들이 양쪽에서 도열해서 나를 반기는 형국이다. 조금은 으쓱해하며 계단을 올라 동문에 선다. 이곳에서 삼년산성의 전체 모습을 조망할 수 있다. 산성 가운데가 움푹하게 파인 지형인데다가 가운데 경사면의 잡목들을 모두 제거해 놓아서 이처럼 시원한 시야가 만들어진 것이다. 서쪽으로는 보은 읍내, 북쪽으로는 미원과 청주로 향하는 너른 들판, 그리고 동쪽으로는 속리산과 구병산의 옆모습이 반갑다. 
삼년산성은 서기 470년, 신라시대에 만든 성이며 삼년 만에 축성되어 삼년산성이라는 이름을 얻었다한다. 부근에는 신라 귀족들의 것으로 보이는 고분들이 다수 발견되어 테마공원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성 안에는 아미지(蛾眉池)라는 예쁜 이름의 연못이 있고 고려시대 만들어진 석조여래입상을 모신 보은사도 자랑거리다. 그러나 내가 가장 의미를 두고 있는 점은 뭐니뭐니해도 도시공원, 산책로로서의 삼년산성이 갖는 의미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삼년산성은 우선 접근성이 최고이며 높은 산의 정상에서나 볼 수 있는 전망을 불과 10여분 만에 만날 수 있는 드문 전망대이다. 또한 고성의 모습이 적당히 복원되고 적당히 무너진 채 잘 가꾸어진 산책로를 품고 있어 그야말로 흠잡을 데 없는 명품 도시공원이다. 이렇게 좋은 산책로를 공짜로 즐길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보은에 사는 보람을 느낄만 하다. 4월의 주말나들이 코스로는 삼년산성을 추천한다. 숲에서 뿜어 나오는 초록의 청량함, 화려한 철쭉너머로 구불구불 아름다운 고성과 산책로, 그리고 한 눈에 들어 올 듯 정겨운 보은읍내까지 한꺼번에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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