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원(花園)
화원(花園)
  • 보은사람들
  • 승인 2023.04.20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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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성 수
속리산면 만수
시인, 수필가
충북작가회의 회원

우리 고장에서 나고 자란 문화 예술계의 자랑스러운 인물을 꼽으라고 할 때, 가장 먼저 오장환 시인을 떠올리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1918년 보은 회인에서 태어난 시인은 1930년대 ‘시단의 3대 천재’와 ‘시의 황제’로 불리며 문단에서 활동하고 수많은 작품을 쓰고 큰 족적을 남겼다. 이에 보은사람들에서 ‘오장환 시 다시 읽기’를 통해,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시인의 작품세계와 그의 생애를 다시 한 번 돌이켜보는 기회를 함께 가져보려고 한다. 시인의 존재와 업적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지역민들이 많이 계시는데 반해, 막상 그의 시를 접하게 되는 기회가 흔치 않았다는 생각이다. 앞으로 이어질 연재를 통해 오장환 시인의 시를 만나고, 100년의 시대 차이를 넘어, 새로운 시각과 해석을 통해 그의 시정신을 공감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시인은 1918년, 보은의 회인에서 태어나 안성보통학교로 전학하고, 다시 서울의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진학한 이후 본격적인 시작활동을 시작하여 1933년 등단하게 되고, 1936년 첫 시집 ‘성벽’을 발간하였다. 이 시는 그 시집에 실려 있어 1936년 무렵의 시대적 배경에서 감상해야한다. 그 때가 어떤 시대였는지 새삼 부연할 필요는 없겠지만, 시인의 많은 작품은 식민지시대 지식인의 암울한 시대상황이 묻어나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이 작품, ‘화원’은 시대상황과 무관하게 순수한 서정으로 감상하며, 시인의 심미안을 찾아보는 즐거움을 준다.

화원
꽃밭은 번창하였다. 날로 날로 거미집들은 술막처럼 번지었다. 꽃밭을 허황하게 만드는 문명, 거미줄을 새어나가는 향그러운 바람결. 바람결은 머리카락처럼 간지러워……부끄럼을 갓 배운 시악시는 젖통이가 능금처럼 익는다. 줄기채 긁어먹는 뭉툭한 버러지. 유행치마 가음처럼 어른거리는 나비 나래. 가벼이 꽃포기 속에 묻히는 참벌이, 참벌이들. 닝닝거리는 울음. 꽃밭에서는 끊일 사이 없는 교통사고가 생기어났다. (전문)


  몇 몇 고어 투의 시어만 아니라면, 이 시가 1930년 대 시라는 것을 알아차리기 어렵다. 최근의 시라고 해도 그럴듯하다고 생각할 정도다. 물론 지금의 기준으로 본다면 단순하여 익숙한 비유도 보이고, 반복적으로 이어지는 시어의 연결이 눈에 띄기도 한다. 그러나 생각해보라. 지금부터 90년 전의 시라는 사실을. 
  눈으로 한 번 읽어보자. 이내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가. 바람에 하늘거리는 꽃잎과 거미줄을 빠져나가는 바람, 그리고 흔들리는 머리카락에서 새색시의 능금처럼 익은 가슴, 또 빠질 수 없는 나비와 벌이 있는 꽃밭. 소리 내어 읽어보자. 이내 음악이 들리지 않는가. 바람 소리와 잉잉거리는 벌의 날갯짓 소리. 
이 시의 백미는 꽃밭에서 교통사고가 끊일 사이 없이 일어난다는 구절에 있다. 교통사고라니. 꽃밭이라는 자연적이고 서정적인 환경에 어울리는 시어들 속에서 갑자기 교통사고라는 근대 물질문명의 낯선 단어라니. 더구나 그 당시에 차량이 얼마나 많아서 얼마나 많은 교통사고가 일어났을까싶다. 앞으로 함께 읽게 될 시인의 시에서 자주 만나기는 쉽지 않을 에로티시즘을 엿볼 수 있는 재미도 만나게 된다. 능금처럼 익는 젓통이, 꽃포기 속에 묻히는 참벌 그리고 교통사고. 바람과 거미의 접촉, 꽃과 새색시의 동행, 벌과 나비의 동승, 꽃밭에서 일어나는 어떤 새로운 사건이 될까. 누가 신고하면 교통경찰이 출동할까. 시인은 누구 편을 들어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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