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추 볼 붉은골에
대추 볼 붉은골에
  • 편집부
  • 승인 2011.10.13 09:36
  • 호수 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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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인(보은황토문화연구회, 보은장신)

가을이 익어갑니다. 황금빛 들판에서 들려오는 콤바인 소리는 전혀 시끄럽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넓은 들판을 야금야금 먹어들어 가는 모습도 밉지 않습니다. 농기계가 내는 소리와 작동하는 모습이 싫지 않은 것은 그 것들이 바로 생명의 근본을 지탱해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작 우리 국민들이 먹어야 할 쌀을 생산하는 농민들은 올 해도 한 숨이 깊어집니다. 잦은 비로 인해 수확량도 줄었지만 흉작으로 인한 쌀값 오름을 미리 걱정해서 정부에서 방출미를 풀어 쌀값을 안정(?)시키기 때문입니다.

농산물 이외의 모든 공산품은 가격이 올라가도 이렇게 쌀값처럼 물가 당국에서 신속하게 대처하지 않습니다. 농사에 필요한 모든 자재 값이 급등해도 관심을 두지 않던 당국이 그 결과물인 농산물 가격에는 지나칠 정도로 민감하게 대처하는 것을 불평해야 할까요? 하기야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 했으니 농산물 특히 쌀값에 대해서만큼은 정부에서도 특별 관심을 갖는 것이 농촌과 농민에 대한 정부의 당연한 책무라고 주장하면 농민들로서는 비난은커녕 서운한 마음을 갖는 것조차 미안하게 느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히 명심해야 할 것은 작금과 같은 농업정책 특히 저미가정책이 계속되어 쌀농사가 외면당하고 그 생산기반이 약화되면 가을이 마냥 오곡백과 익어가는 풍요의 계절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금년에는 보은대추축제가 열흘에 걸쳐 개최된다고 합니다. 인구 3만의 작은 지역에서 웬 축제를 그렇게 크고 오래 하느냐고 의아해하는 분들이 많지만 축제 내용을 보면 보은군에서 기존에 이루어지던 다양한 축제들이 통폐합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흔히 말하는 집중과 선택을 통한 효율의 극대화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일단은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이 번 축제는 지역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의 판매를 통한 농가 수익 증대를 제1의 목표로 삼는다고 합니다. 명칭은 대추축제이지만 쌀, 한우고기, 사과를 비롯한 지역의 모든 생산품을 홍보하고 판매하는 신명나는 장터가 되는 셈입니다. 출향인들은 물론 보은과 연고가 없는 도시민들에게도 좋은 추억을 선물하는 흥겹고 따뜻하고 또한 정직한 축제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보은군민의 한 사람으로서 대추축제를 축하하고 홍보하는 뜻에서 대추와 관련된 시조 한 수를 소개합니다. “ 대추 볼 붉은 골에 밤은 어이 듯드르며/  벼 벤 그루에 게는 어이 나리는고/  술 익자 체 장수 돌아가니 아니 먹고 어쩌리오". 이 시조를 지은 이는 조선 세종대왕 때 영의정을 지낸 황희 정승입니다. 청백리로 유명한 황희 정승은 그 고결한 인품과 뛰어난 행정 능력으로 많은 일화를 남긴 분입니다.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지위에 있는 분이 어쩌면 이렇게 흙냄새 뭉클 나는 시를 지을 수 있을까 하며 이 시를 읽을 때마다 늘 감탄하게 됩니다.

황희 정승께 누(陋)가 되지 않을까 하면서도 마지막 구절을 이렇게 풀이해 봅니다. 술이 익었는데 체에 구멍이 나서 제대로 거를 수가 없어 고심하는 것은 민초들의 형편을 상징하고, 때맞추어 찾아 온 체 장수는 행정 서비스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즉 백성들의 가장 필요하고 절실한 부문을 제 때 도와주는 것이 행정의 역할 곧 국가의 할 일이라는 점입니다. 황희 정승께서는 풍류를 즐기는 가운데서도 공직자의 역할을 자연스럽게 밝히셨으니 과연 조선 500년을 통 털어 으뜸가는 영의정이 된 것은 당연하다 할 수 있습니다.

대추의 볼이 붉어지는 아름다운 계절입니다. 대추 볼 붉은 골의 대추축제! 모두에게 즐거움과 보람이 함께하는 풍성한 한 마당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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