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 마로면 수문2리
(53) 마로면 수문2리
  • 보은사람들
  • 승인 2023.01.05 10:20
  • 호수 6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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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되면 꽃향기에 마음이 아름다운 마로면 수문2리(방화실) 마을

신선이 머무는 마을 수문2리 400년을 지켜온 느티나무는 오늘도 오고 가는 이들을 맞이하고 있다. 구병산자락에서 불어오는 겨울바람과 함께 간간이 휘날리는 하얀 눈이 선유정(仙留亭)을 찾아온 나그네를 따뜻하게 맞아 준다. 
수문2리는 옛 이름이 방화실(芳花室)이다. 아마도 지형적 특성으로 양지바른 곳이다 보니 아름다운 꽃들이 많이 피어나 방화실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가졌는가보다. 방화실(芳花室)은 구병산을 주산(主山)으로 하고, 금적산을 조산(朝山)으로 하며, 좌청룡 우백호에 해당하는 작은 산으로 구성되어 있는 전형적인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의 마을이다. 회관을 방문하기 전 마을 입구에 있는 유래비를 살펴보는데, 필자의 방문을 환영이라도 하는지 눈이 조금씩 내리기 시작한다. 유래비는 귀부(龜趺)와 비신(碑身), 이수가 안정감을 주고 있다. 

#방하곡, 방하곡리, 방화실, 수문말, 수문리라는 다양한 이름을 가진 수문2리는 마을안쪽 넓은 들에 비해 마을입구가 좁아 봉황이 알을 품고 있는 형국을 가진 단지형마을  
유래비 내용을 살펴보니 “우리 마을 수문2리 방화실은 본래 보은 현 왕래 면에 속하였던 지역으로 백두대간의 신성하고 정기 어린 구병산자락이 양쪽으로 뻗어내려 마을을 감싼 것이 마치 디딜방아의 다리와 같다 하여 방하곡이라 부르기도 하고, 마을 모습이 구병산 기슭 양지바른 곳에 탐스럽게 피어나는 꽃  봉우리 같다 하여 방화실이라고도 부르며, 방하곡리라 표기해온 마을로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이웃 마을인 수문리와 통합하여 수문리라 하고 마로면에 편입되었고, 행정이동 분할로 수문 2리가 되었다. 오늘에 이른 유구한 역사와 빛나는 전통의 마을이다. 지금의 수문리는 옛날 마을 앞 느티나무 아래 돌문으로 된 수문(水門)이 있어 수문 말이라 부르던 마을 이름으로 현실에서 흐르는 물이 산 앞의 정자나무 밑에서 청룡암(靑龍岩)을 휘몰아 흘러 소용돌이가 생겨 방하곡(方下谷)이라 부르던 것이 변하여 방화실(芳花室)로 된 마을이다. 구병산 정기를 받은 우리 마을 사람들은 사람마다 순박하고 선량하며 근면하고 성실한 정신으로 효제충신(孝悌忠信)을 신조로 삼아 상경하애(上敬下愛)하여 윤리와 도덕이 넘치는 것이 마을의 전통이 되었다. 구병의 지덕(智德)이 뭉쳐있는 우리 마을은 각성바지로 주민이 구성되었으나 피를 나눈 형제 같이 상부상조(相扶相助)하며 오순도순 정답게 살아가고 물려받은 터전에 1965년 저수지를 준공하고 삼가 천에 양수장을 설치하고 가뭄을 극복하였다. 현재는 1급수인 지하 암반수로 식수를 해결하여 정주 여건이 최상의 조건을 유지하고 있어, 방화실 사람들 모두 손잡고 영원무궁(永遠無窮)토록 지켜가자고 쓰여 있다. 

#업드렁바위에서 물이 흐르는 것을 보고 논에 물을 대고 모심을 준비를 했다는 수문2리는 일찍이 수리안전답으로 만들어 물 걱정 없이 농사가 편리한 마을
마을 유래비를 뒤로하고 회관을 찾아가니 주민 예닐곱 분이 이야기를 하고 계신다. 인사를 드리고, 마을 이야기를 듣고 싶다 하니, “올해 내 나이가 80인데, 20살에 시집와서 지금까지 살았지요. 어디 나가 본적도 없어요. 우리 마을은 옛날부터 골 안에 있다고 해서 따뜻한 마을이라고 했답니다. 그러다 보니 꽃이 일찍 피고 그래서 방화 실이라고 불렀다고 하더라구요”.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조금 젊어 보이는 주민이 “맞아요”하며 이야기를 거든다. 
“옛 어르신들 말씀이 우리 마을 뒤쪽으로 수구렁이라는 골 깊은 골짜기가 있었지요. 그리고 마을 뒤로 한실이라는 곳을 가다 보면 탑 거리가 있는데요. 지금도 탑이 있답니다. 우리 마을은 앞쪽으로 금적산이 있고, 뒤쪽으로 구병산 좌우에 감지고개가 있어 바람이 따뜻해 방화 실이라고 했다고 하더라구요. 감지고개에 있는 집들은 집집마다 샘이 있을 정도로 물이 풍부했지요. 물론 바가지 샘도 있었는데,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답니다” “그리고 우리 마을 뒤에 업드렁바위라는 것이 있는데요. 옛날 어른들은 업드렁바위에서 물이 흐르는 것을 보고, 모심을 준비를 했다고 합니다” “왜 바위에서 물이 흘러야 모심기 준비를 했는지 혹시 알고 계시나요?”하고 필자가 여쭈어보니, “정확한 건 모르겠지만 이곳은 지대가 높다 보니 물이 흐르지 않았지요. 특히 수리 시설이 없었던 예전에는 비가 와야 논에 물을 잡았는데, 비가 오면 업드렁바위 위로 물이 넘쳐흘러 내렸고, 도랑에 물이 흐르고 비로소 논물을 잡을 많 큼 물이 흐르니 그 제서야|” “이젠 논에 물을 잡을 때가 되었구나”하고 모심기 준비를 했다는 말씀을 하시더라구요. 또한 “우리 마을은 초복에 정자나무 아래 선유정(仙留亭)에서 마을 사람들 모두 나와 복 제사를 지내고 있답니다” “복달임 고사를 지내고 있군요”. 옛 조상들은 하지가 지난 뒤 세 번째 경일(庚日)날 복달임을 했다. 그날은 고사를 지내는 마을도 있었고, 복달임이라 해서 마을 사람들이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개장국, 삼계탕 등 음식과 함께 더위를 식히며 하루를 즐기는데, 이것을 탁족놀이라 했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우리의 고유문화이다.     

#초복이 되면 마을 사람들 모두가 선유정(仙留亭)에서 초복 고사를 지내며 소지줄을 매고 마을안녕을 기원하는 전통과 현대가 잘 어울러져있는 마을 
마을회관에서 주민들과 이야기를 마치고 탑 거리를 찾아가니 한실 가기 전 길옆에 커다란 돌무더기가 나온다. 돌탑은 누군가 소원을 빈 흔적이 있다. 누군가 길 고사를 지냈는지 새끼줄로 만든 소지줄이 돌탑에 둘러있고 소지가 달려있다. 돌탑을 중심으로 동남쪽 방향은 갈 평에서 상주로 가는 길목이고, 북쪽은 불목에서 장안으로 가는 길목으로 옛 길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이정표를 보니 속리산 둘레길이 조성되어 있는가 보다. 봄날이 오면 속리산둘레 길을 걸어봐야겠다.
양화용 시민기자
양화용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선유정.
마로면 수문2리 마을 입구.
수문2리 마을유래비.
마로면 수문2리 탑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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