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편지
손 편지
  • 보은사람들
  • 승인 2022.10.06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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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김철순(시인, 마로면 관기약국)

오랜만에, 정말 오랜만에 손 편지를 받았다. 오래전에 청주에서 문학모임을 함께했던 문우한테서. 참하게도 고운 그녀는 모임에서 만나는 날이면 유난히도 나를 반가워하곤 했다. 그리고 오랜 세월이 흘렀다. 수필을 쓰던 그녀도 시를 쓰던 나도 그 문학모임을 나가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서로의 소식을 알 수가 없었다.

그동안 20여년의 세월이 훌쩍 지나갔다. 나에겐 지나간 인연으로 고운 그녀의 모습도 아슴아슴 기억의 저편에 있다. 나는 그녀의 안부를 통 알 수 없었는데, 그녀는 지인들을 통해서 나의 안부를 물어서 나의 소식을 간간이 들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청주를 떠나 7년 전에 상주 쪽으로 오면서 나의 소식을 알 수 없었다고 한다. 청주에서 상주를 오가며 내가 관기에 살고 있는 것을 알기에 더욱 보고 싶었다고.

물어물어 내 전화번호를 알아내 전화를 했다고 한다. 전화기 너머 내 이름을 확인하는 그녀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너무 보고 싶었다고.

관기 주차장에서 내려 사람들에게 내 이름을 물어보니 모른다고 하더란다. 시를 쓰고 그래도 이름이 있는 사람이니 당연히 모두가 알 줄 알았나 보다. 그러면서 편지로 그간의 사정을 얘기하겠다고 하며 통화를 끝냈다.

그리고 며칠 후 수필집과 함께 곱게 쓴 손 편지가 도착했다. 전남편이 일 억원의 빚을 남기고 돌아가셔서 그걸 아들과 함께 18년 동안 갚느라고 정신이 없었다고, 빚을 다 갚고 나니 헛헛해서, 외로워서, 아무튼 청주를 떠나고 싶은 차에 친구들이 주선을 해서 재혼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상주 쪽으로 7년 전에 오게 되었다고.

지금의 남편도 몸이 아픈 사람이고 본인도 아픈 사람이라 서로 의지하며 농사지으며 촌부로 산다고, 욕심 없이 자연과 함께 사는 게 너무 좋다고 했다.

편지를 읽고 나니 가슴이 먹먹했다. 그녀가 살았을 모진 세월이 가슴 아프기도 했다.

손 편지하면 오빠가 월남에 갔을 때 하루도 빠지지 않고 보내오던 손 편지가 생각난다. 무사히 잘 있으니 걱정 말라고, 엽서로 아니면 손 편지로 그곳의 소식을 보내오곤 했다. 전화가 없던 시절이니 자식사랑이 남달랐던 부모님을 위해 그렇게라도 안부를 전했을 것이다. 편지는 집으로 보내올 때도 있고, 학교로 보내올 때도 있었다. 학교에서 편지를 받을 때면 얼마나 뿌듯하던지, 다른 아이들의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그때 나는 중학교 2학년쯤이었을 게다. 편지를 전하던 우체부 아저씨는 이런 효자는 처음 본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곤 했다.

그리고 또 손 편지. 남편과 나는 손 편지를 주고받으며 만났다. 아직도 어느 구석엔가 그 손 편지가 보관되어 있으리라. 지금 열어보면 얼마나 유치할까 싶어 차마 찾아서 읽어볼 용기가 나지 않는다.

세월이 좋아 메일로 금방 소식을 전할 수 있고, 카톡이나 문자도 더 금방 소식을 전할 수 있다. 그런데 그게 결코 좋은 것만 같지는 않다. 기다리는 설레임이 없고 읽으면서 느끼는 감동이 없다.

그녀가 보내온 손 편지를 읽고 또 읽는다. 그녀가 겪은 세월이 고스란히 내게로 건너와 마음이 절절히 아파온다.

가을이다. 책을 읽기에도 손 편지를 쓰기에도 좋은 계절이다. 바람은 적당히 시원하게 불고, 높은 하늘엔 여러 모양의 구름들이 아름답다. 석양은 또 얼마나 고운가. 한가한 날을 골라 상주에 있는 그녀에게 나도 손 편지를 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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