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인생(人生 : 성년식)
(29)인생(人生 : 성년식)
  • 보은사람들
  • 승인 2022.10.06 09:26
  • 호수 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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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범 시민기자

우리는 쟁기로 논밭을 일구어 농사를 지으면서 호롱불 밑에서 바느질을 하고, 절구질로 곡식을 가공하여 생명을 유지하고, 각종 세시풍속을 통해 자연에 의지하고 살아오면서 많은 생활문화유산을 만들어 남겼다. 그러나 과학의 발달과 세월의 흐름 속에 조상들의 삶과 정신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생활문화유산이 급격히 사라지고 있다. 안타까운 현실 속에서 보은에 남아있는 생활문화유산을 중심으로 되짚어 보면서 생활문화유산에 대한 이해와 재창조의 계기를 만들어 보기 위해 우리지역‘보은의 생활문화유산’을 게재한다(편집자 주)


보은지방의 제43회 성년례
보은지방의 제43회 성년례

사람은 어머니 몸에서 태아(胎兒)기를 보내고 출생하여 유아기와 소년기를 보내고 나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변혁기를 맞이하게 된다. 바로 사회의 참된 구성원인 성인(成人)이 되는 시기이다. 이 시기가 되면 우리나라는 물론, 전 세계의 모든 민족들이 차이는 있지만 성인이 되었음을 공인하는 통과의례(通過儀禮) 즉‘성년식’을 하였다. 현대에 들어와 우리나라에서는 1985년부터 5월 셋째 주 월요일을‘성년의 날’로 정하여 19세가 된 젊은이들을 축하해주고 있는데, 보은지방에서의 성년식 자료를 찾아보았다. 최근자료는 찾지 못하고, 2015년‘보은사람들’에 의하면‘제43회 성년의 날’을 맞이하여 보은자영고등학교(현 충북생명고등학교) 강당에서‘보은군여성단체협의회’주관으로 정상혁 보은군수를 큰 손님으로, 황종선 여단협회장을 주인으로 하여 남자에게는 관자를, 여자에게는 계자를 씌워주고, 자 첩을 전달하는‘성년례’를 하였다는 기사가 보였다. 성년식은 지금은 의미가 많이 퇴색하였지만, 옛날에는 인생에서 꼭 치러야하는 큰 행사 중의 하나였다. 즉, 일정한 나이에 들 면 사회의 일원으로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규범과 가치를 가르치고, 생활에 필요한 기술과 지식 등을 길러준 후에야 성인이 되었음을 공인하고, 축하해 주었다. 성인식을 고대국가에서는 치아나, 코, 손가락, 귀의 일부를 자르는 할례(割禮)를 하기도 하였으나, 우리나라에서는 기록이나 흔적들이 남아있지 않고, 고려 광종 때 태자의 관례를 한 기록이 고려사에 남아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유교가 널리 보급되면서 부터는 관례에 의한 성인식이 왕실은 물론 양반들까지도 반드시 해야 하는 통과의례가 되었으나, 신분계층과 남, 여 사이에 큰 차이를 보이면서 이어져 왔다. 왕실과 양반층에서는 남자아이가 15세 전후가 되면 길일을 택하여 댕기머리를 올려 관(冠)을 씌우고, 성인으로서의 예절과 사회의 책임과 의무를 알려주었다. 또한, 여자들은 쪽을 찌어 올리고 비녀를 꽂아주는 계례(筓禮 )행하였는데, 혼례로 성인식을 대신하였으므로 혼례 속에 흡수되어 관례만큼 보편화되지는 않았다. 이에 비하여 평민들은 칠월 백중에 무거운 돌을 들어 힘겨루기를 하는 등 노동력을 과시하고, 마을 어른들에게 술자리를 마련하는 신고식 형태의 성년식을 하였다. 이렇게 성년식을 마친 청년은 상투를 틀고, 당당한 성인의 일원으로서 다른 사람들과 동등한 품삯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성인식은 조선말기에 들어와 10세가 넘으면 혼례를 서두르는 조혼의 풍속으로 관례는 혼례과정에 흡수되어 그 뜻이 점차 약화되었다가, 1894년 갑오경장 이후 단발령이 내려지면서 머리를 짧게 깎았기 때문에 남자들의 전통적 의미의 성인식은 사라지게 되었고, 여자들의 계례만 남아 전통혼례식에 흡수되었으나, 요즘은 이마저 흔적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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