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년 6개월 중 33년 6개월 보은에서 교직 생활한 구금회 교사 영원한 선생님으로 명예롭게 퇴임
39년 6개월 중 33년 6개월 보은에서 교직 생활한 구금회 교사 영원한 선생님으로 명예롭게 퇴임
  • 김민호 기자
  • 승인 2022.09.08 09:37
  • 호수 6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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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31일, 보은중학교 구금회 교사는 39년 6개월간의 교직 생활을 끝마치고 퇴임식을 열었다. 39년 6개월 동안 6개의 학교에 발령받아 교직 생활을 했던 그는 발령받은 학교마다 옆에 논과 밭이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1983년 3월 1일 첫 발령인 단양군 단산중학교 2년 근무, 1985년 4월 20일 보은중 5년 근무, 1990년 3월 1일부터 2018년 2월 28일까지 보은여중·고에 발령받아 모두 21년 근무했다. 중간에 1992년 3월 1일부터 보덕중에서 5년 근무, 2011년 3월 1일부터 충북공고 2년 근무, 2018년 3월 1일부터 2022년 8월 31일까지 보은중 4년 반 근무, 총 39년 6개월 중 35년 6개월을 보은에서 교직 생활을 했다. 그는 역사 과목을 가르치며 진급에 관심을 두기보다 학생들에게 관심을 두려 노력했다. 이를 입증하듯, 퇴임식에서 그의 제자들이 영상으로 퇴임과 새로운 출발에 대한 격려와 축하를 전했다.
그는 사회 활동에도 적극적이었다. 1989년부터 2022년 현재까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조합원 보은지회장을 역임했다. 흙사랑 대표로 재임하며 까막눈 어르신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기도 하고, 2009년부터 2022년 현재까지 보은민들레희망연대 대표로 재임하며 보은군의 문제 해결에 앞장서 왔다. 2021년부터 좋은문화살림 마루협동조합 공동대표로 재임하고 있다. 또 2018년 보은교육협동조합 햇살마루 이사를 맡았다. 그가 지역사회에서 오랜 기간 활동했던 만큼 많은 사람들이 퇴임에 대한 축하와 그의 업적에 대해 칭찬을 했다.
그의 주요 활동으로 △2010년 보은친환경무상급식 주민조례제정운동 전개 △2011년 정부미쌀 중단, 친환경쌀 학교급식 지원을 위한 활동 전개 △2014년 세월호 추모문화제 개최 △2015년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촛불문화제 △2016년 속리산 이옥선 위안부 할머니를 위한 청소년들과의 활동전개 △2017년 구금회 평화나눔 인형전 개최-수익금 위안부 할머니를 위한 기부 △2019년 친일망언, 독단행정 규탄 정상혁 보은군수 퇴진운동 전개 및 주민소환운동 △2010~2018년 어린이날 큰잔치 '애들아 노올자' 개최 등이 있다.
좋은문화살림 마루협동조합의 김선봉 사무국장은 "구금회 선생님은 아버지 같은 역할이었다. 추진력 있고 박력이 있으신 분이었다"고 말문을 열었다. "2009년도에 보은민들레희망연대를 같이 함께했다. 14년 동안 지역을 위해 정말 많은 일을 했다"고 말했다.
보은교육협동조합 햇살마루 김민섭 이사장은 "공교육이 할 수 없는 목공, 돌봄 수업 등 협동조합을 통해 하고 있다. 선생님이 퇴임하셨으니 더 넓은 활동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교사 모임 김미선 교사는 "교단에서 아이들과 함께 웃는 것을 가장 좋아하셨던 선생님 모습이 떠오른다. 이제는 지역사회에서 아이들과 함께 웃는 모습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전교조 충북지부 최보람 사무처장은 "구금회 선생님은 어려운 문제도 명쾌하게 풀어내려고 했고 결과가 안 좋아도 웃으며 힘을 줬다"고 말했다.
김도화 군의원은 "선생님에게 죄송한 마음이 들고 든든한 등대의 역할을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보은민들레희망연대 오황균 고문은 "여러 지역사회 활동을 함께 했다. 몸이 강건하신 편도 아닌데 모든 짐을 다 짊어지셨다. 본보기가 되는 분"이라고 말했다.
남편인 송찬호 시인은 "처음 그가 교직에 발을 들여놓을 때 작은 꿈이 있었다. 열심히 가르치는 것, 학생들과 친하게 지내는 것 그 꿈을 이루기 위해 학생들과 가까이 있고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집에서도 두 아이의 좋은 엄마였다. 저에겐 좋은 아내였다. 뜻이 잘 맞는 든든한 동반자였다"고 말했다.
구금회 교사는 "논과 밭이 있던 학교 옆에서 아이들의 현실과 삶에 좀 더 가까이 갈 수 있었다. 교육은 학교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고, 밖에서도 이루어진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교육활동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어려운 일도 정말 많았다. 늘 부끄럽게 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아이들이 지역의 꿋꿋한 일꾼으로 자라나는 것을 보며 기쁨을 느꼈다"고 퇴임 소감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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