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할아버지와 손자의 못줄이야기 2
(13)할아버지와 손자의 못줄이야기 2
  • 보은사람들
  • 승인 2022.06.03 10:07
  • 호수 64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모 심는 기계가 없던 시절에는 못줄을 대고 일정간격으로 일꾼들이 모를 심었다. 지금은 전통모내기 체험행사를 통해서나 볼수있는 풍경이다.
모 심는 기계가 없던 시절에는 못줄을 대고 일정간격으로 일꾼들이 모를 심었다. 지금은 전통모내기 체험행사를 통해서나 볼수있는 풍경이다.

꼬지 모와 품앗이에 의존하게 되었고, 부농과 빈농 사이에 심한 격차가 발생하게 되었다. 부농은 물의 확보가 쉬운 고래실논을 가지고 있으면서, 모심는 일꾼도 전년 12월에 미리 논 한마지기 당 쌀 몇 말의 꼬지(선불 품삯)을 주어 미리 확보해 놓았다가 적기에 날을 잡아 모심기를 하여 수확량이 많았으나, 가난한 농가는 춘궁기에 식구들을 먹여 살리느라 꼬지 모 쌀을 너무 많이 먹어 캄캄한 새벽부터 저녁 어두워 질 때까지 매일 모를 심느라 손가락이 닳아 피가 나도록 남의 집 모를 심었다. 그러다보니 정작 천수답이 대부분인 자기 논은 때를 놓쳐 모가 너무 크게 웃자라서 모춤을 일일이 낫으로 베어내고 심기도 하니 수확량이 많이 나올 수가 없어 1966년 서울대학교 농과대학의 허문회 박사가 통일벼를 만들 때까지 식구들의 배고픔은 벗어나지를 못하였다. 모심기할 때에는 일꾼을'품앗이'나'꼬지 모'를 통하여 확보하였지만, 그 외에 뒤에서 하는 일이 많아 모심기 하는 날은 온 가족이 모두 동원되는 큰 행사였다. 아버지는 써레질과 번지질로 온 논배미를 휘저으며 분주하였고, 중.고등학교 다니는 아들은 모춤을 논에 적당한 간격으로 던져 놓았다가 모심는 사람들이 모춤이 부족하거나 밀리지 않고 편히 심을 수 있도록 논바닥을 헤매면서 뒷모도(배분)를 하여 모처럼의 중노동으로 파김치가 되었고, 할아버지와 초등학교 다니는 손자는 비교적 쉬운 일로 양쪽 논둑에 마주 바라보며 앉아 못줄 띄우기로 장단을 맞추었다. 한편 집에서는 엄마와 동네 아주머니들이 온 동네가 시끌벅적하도록 새참과 점심을 준비해 광주리에 담아 머리에 이고, 어린 딸의 작은 손에 막걸리 주전자를 들려 꼬불꼬불한 논둑길을 따라가 잊지 못할 보은지방의 정감어린 농촌 풍경을 만들었다. 보은읍 중동리에서 태어나 8살 때부터 못줄을 띄웠다는 김건출(78)님은'보은에는 모심기철에 어느 집에서나 준비하는 대표적인 반찬 메뉴가 있었지요. 작은 감자에 고추장을 풀어 졸인 감자조림, 마늘종과 마늘잎을 짧게 썰어 건새우를 넣고 찐 반찬, 밀가루에 고추장을 풀고 정구지(부추)를 넣어 만든 장떡, 고등어 찜이었지요. 지금도 옛날에 모심기를 하면서 굳어버린 허리를 간신히 펴고 논둑에 앉아 게걸스럽게 먹던 이 음식들이 먹고 싶을 때가 종종 있어요.'하시며 옛날을 회상 하신다. 지금은 모심기 풍경이 먼 옛날의 전설처럼 느껴지며 잊혀 가지만, 영암군에 위치한'전라남도 농업박물관'에서는 매년 참가자를 모집하여 모를 직접 쪄서 모춤을 만들고, 못줄을 띄우며 모심기를 하고, 못 밥을 먹는'전통의 모내기 체험 행사'를 하고, 남도의 마당극단'갯돌'을 초청하여 모내기부터 추수까지의 과정을 담은 마당극 공연과 풍물놀이로 흥을 돋우면서 선조들의 지혜와 농경생활을 이해하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서성범(보은향토문화연구회)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