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맞이
가을맞이
  • 편집부
  • 승인 2011.09.22 09:30
  • 호수 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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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애(수필가, 보은이평)

백로가 지나니 서늘한 바람이 알맞게 섞여, 지루했던 여름의 무더위는 금세 잊게 된다.
어쩌다 한밤중에 눈을 뜨면 거실까지 달빛이 차지하고 있어 고요함은 빛나고 가을의 완연함도 피부에 와 닿는다. 온 산과 들판에 수런대던 여름의 언어들은 슬그머니 말문을 닫고 엄숙하고 차분한 기운이 몰려온다.

투명한 햇살의 담금질에 온몸이 휘청인다. 혈관의 탁한 피마저도 선홍빛으로 말갛게 여과될 것 같은 위력이다. 찬서리 내리는 청아한 날씨는 식물의 물기를 훑고 지나가듯 나도 비켜갈 수 없어 내 몸에서도 마른 옥수숫대처럼 서걱대는 소리가 날 것 같다. 허허로움을 틈 타 여기저기 사색의 길이 열린다.

마음속에 고이는 공허함을 퍼내본다. 그래도 또 차오른다. 갑자기 세상이 광활해진 것 같다. 넘치던 열정으로 가을이 부화되어 만물이 완성을 이루는 지금이 아니면, 고독을 이처럼 찬란하게 치장할 수 있을까? 내가 느꼈던 그런 감정의 처음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 본다. 초등학교 저학년을 넘긴 가을이었을 게다.

학교가 파하고 단숨에 집으로 달려와도 반겨주는 이가 아무도 없다. 햇빛은 왜 그리 맑은지 집안 구석구석 작은 벌레의 움직임도 눈에서 비껴가지 못하는데 텅 빈 공간에 움직이는 건 나 혼자 뿐이다. 농사일로 바쁘신 부모님은 어느 밭에 계신지 알 수도 없다. 마루 위에 널린 고추는 내리꽂히는 햇빛에 속살을 훤히 비추고도 모자라 먼지의 작은 알갱이까지 시간에 덮여 있어 마치 오래 전부터 빈집이었던 듯하다.

적막함이 너무 싫어 라디오를 틀면 아나운서의 숨 막힐 듯 진행되는 야구 중계. 따분함과 쓸쓸함은 곱절이 되어 가슴을 누른다. 아마 그 막막함 끝에서 처음으로 고독을 느껴보았을지도......

그때부터 서늘한 바람은 그림자처럼 줄곧 나를 따르지만 반복되는 에너지가 승화되어 내 삶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지도 못했다. 우선 편안함을 찾는 게으름이 함께했기 때문이다. 다행이라면 몇 줄기 땅속에 내린 뿌리에 의존해 억새처럼 한자리에서 이리저리 뒤척였다.

이제 겨우 몰아치는 쿠데타의 섬뜩한 바람이 크게 두렵지 않을 정도다. 고독이라는 바람이 멎기를 또한 바라지도 않는다. 흐르는 시간 속에 풍력은 점점 소멸되어 가니, 무뎌지는 정신을 흔들어 줄 낭랑한 풍경이 되었으면 좋겠다. 훌륭한 시인을 키워 낸 팔 할의 바람! 그 은혜 몇 백분의 일이라도 끊임없이 영향을 받고 싶다.

쉼 없이 파도가 철썩이는 살아있는 바다도 태풍의 거친 풍속을 만나면 생태계가 활성화되고 해수가 정화된단다. 또 적도지역의 과잉에너지를 분배시켜 지구의 남북 간 균형을 유지하는데 도움을 준다고 한다. 물속 깊은 곳까지 영향을 주는 바람의 힘을 바다는 때때로 아프게 받아들인다. 해마다 되풀이 됨에도 말이다. 상흔을 최소화 하려면 적절한 대비를 염두에 두어야겠다.

어느 소설가는 , 나이 들어서 침대에 눕는 일은 멀고 깊은 어둠속의 동굴을 홀로 찾는 것처럼 격리된 느낌이란다. 아득하게 고립된 적막함은 별 다른 구분 없이 온기를 빼앗아 버리는 추위에 더 자주 찾아올 것 같다. 홀로 있을 때 행복해지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나?

따가운 햇살에 한 이틀 말리면 겨우내 먹을 수 있는 호박고지처럼, 쉽게 얻을 수 있는 건 없을 테니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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