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아버지
  • 편집부
  • 승인 2011.08.25 10:45
  • 호수 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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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애(수필가. 보은이평)

요즈음 시장에 나가면 손쉬운 반찬거리중 하나가 오이다. 새콤한 무침을 하거나 살짝 절여서 볶음을 할 때면 무심코 입으로 가져가 풋풋한 향부터 입안에 가득 담는다. 그 상큼한 향기에 실려 유년시절의 푸른 뜰로 줄달음 쳐 본다.

이른 식전 논밭을 둘러보는 농부들의 부지런함으로 산골의 여름은 동이 튼다. 지금 같으면 유치원을 다닐 응석받이 막내딸은 한 바퀴 뺑 돌아오자며 아버지를 졸랐다. 높다란 아버지 등에 업혀 구불구불 이어진 밭둑을 지나, 발걸음 따라 나뭇가지 춤추는 섶다리를 건너 아직도 벼 끝이 뽀얀 안개에 잠겨있는 물 건너 논으로 향했다. 아버지는 물고를 살피고 벼 속의 잡초를 뽑는 동안 난 풀 속에 숨어있는 잘 익은 산딸기를 찾는다.

구르는 이슬을 털며 초록빛 정원에서 갓 꿈을 깨는 꽃송이를 괴롭히는 악동이 되기도 한다. 도라지꽃의 풍선 같은 봉우리는 터뜨리고, 잘 꺾이지 않는 칡꽃은 덩굴째 흔들어 놓고, 주근깨 가득한 얼굴로 활짝 웃고 있는 참나리의 꽃술로는 손톱에 노란 물을 들였다. 소담한 꼬리 조팝나무나무의 꽃다발이 시들기 전에 같은 산자락에 위치한 밭으로 걸음을 옮기면 이웃의 오이밭을 지나치게 된다.

군음식이 귀하던 시절 고추밭 이랑에 몇 포기 심은 참외로는 모자라 오이도 과일 대접을 받았다. 무성한 덩굴 속을 헤쳐서 가시 돋친 싱싱한 오이를 군침이 더 돌아도 한 개씩만 따 주셨다. 그때 아버지의 등에 업혀서 먹던 오이 맛은 참으로 달고 시원했다. 

몇 해 전 친정을 찾았을 때 그동안 궁금했던 밭의 주인을 여쭤 보았다. 그 밭은 장터에 사는 배 아무개 씨 소유였는데 혹 들에서 마주치면 허락 없이 따먹은 오이 얘기를 하셨단다. 그러면 그분은 “얼마든지 따 잡수세요. 아무려면 우리가 더 많이 따 먹지 댁에서 많이 따 드시겠습니까?" 하며 웃음으로 받아 주셨다고 했다.  한없던 아버지의 사랑에 이웃의 정겨움과 믿음이 더해진 그 맛은 가끔 혀끝에서 살아나고 더러는 그 맛을 느끼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한다. 우리의 전답 중에서 가장 먼 물 건너까지도 나를 업고서 훌훌 나셨던 그 기력이 이제는 쇠잔해져서 밖의 출입은 엄두도 못 내신다. 비행기 소리가 무섭다고 발을 동동 구르며 논 가운데 계신 아버지를 울며 부르던 기억이 이렇듯 생생한데 어느새 나를 어른으로 키워 놓으시고 당신은 다시금 여든이 훌쩍 넘으신 아이가 되셨다.

심연처럼 고요하고 안온한 빛을 뵈러 가야겠다. 내가 나의 어린 딸을 보듬어 안듯이 아버지의 야윈 어깨를 감싸 안으면 수많은 대화가 말없이 오간다. 노안으로 흐려진 눈빛은 언제나 평온함이 떠나지 않아 주위의 사람들에게 편안함을 주신다. 술은 늘 반기셨지만 가끔 영양제를 사다드리면 욕심이라 여기시고 끝내 거절 하셔서 어머니의 몫이 되었다.

막내딸이 결혼식을 올리던 날 아버지는 내 이름을 부르시며 이렇게 말씀 하셨다.  "○○야, 네가 이 세상에서 시집을 제일 잘 가는 거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 말씀의 의미를 깨달으며 하나씩 덧붙여본다. 만족해할 줄 아는 지혜, 타인과 비교하지 않는 내 안에서의 행복, 그리고 이제는 그런 아버지의 소망까지도...

철없어도 좋았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불현듯 따뜻한 아버지의 등이 그립다. 땀에 젖은 체취도 싫지 않았던 푸근한 등에 다시 얼굴을 묻고 남산 뜰을 한 바퀴 돌아오고 싶다. 나의 내부에서 끊임없이 순화작용을 일으키고 있는 화수분 같은 사랑을 천천히 음미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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