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마로면 변둔리 쌍 수살막이
(24) 마로면 변둔리 쌍 수살막이
  • 보은사람들
  • 승인 2021.09.16 09:28
  • 호수 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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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로면 변둔리의 듬직한 수문장 쌍돌탑
마로면 변둔리의 아름다운 쌍 돌탑의 모습이다. 돌 하나하나에 정성이 깃든 서낭제의 돌무리는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으로 자리잡았다.
마로면 변둔리의 아름다운 쌍 돌탑의 모습이다. 돌 하나하나에 정성이 깃든 서낭제의 돌무리는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으로 자리잡았다.

조탑, 수구막이, 수살막이, 거리 탑으로도 불리는 돌탑은 옛날부터 민간신앙과 결합하여 주민들이 마음을 모아 동네 어귀에 잡석을  원추형으로 정성스럽게 쌓아 올리고, 신성을 부여하였다. 동제사(洞祭祀)를 통하여 마을에 들어오는 액운을 막아내고, 농사의 풍년과 안녕을 기원하고, 풍수지리설에 의한 동네의 허한 부분을 보완하여 주는 토속신앙의 대상물이고,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이었다. 1970년대 미신타파운동으로 대부분 파괴되어 사라졌지만, 그래도 아직 시골마을을 지나다 보면 입구에 원추형으로 잡석을 쌓아올리고 금줄을 친 돌탑을 볼 수가 있다. 젊은 사람들은 아마도 동네의 조형물 정도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 돌탑은 불교나 기독교가 들어오기 전부터 우리민족에게 신성(神性)이 깃든 숭배의 대상이었고, 의지의 대상이었다. 이번 주 우리 동네 문화유산에서는 돌탑을 주제로 하고 마로면 변둔리의 아름다운 쌍 돌탑을 찾았다.
변둔리는'멋두니'또는'변둔'이라고도 불리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가는 골(細洞)을 병합하여 변둔리라 하고 마로면에 편입된 마을이다. '멋두니'는 밀양 박씨의 집성촌으로 마을에는 여러 가지 전설에 얽힌 지명들이 있다. 
옛날에 장수들이 국수를 끓여 먹었다는 국수동, 용이 승천하였다는 용굴이있는 등 마을 곳곳에 전설이 남아 있다. 전설이 많이 남아 있음을 상징이라도 하듯 동네 어귀를 들어서면 수령 320년의 느티나무 4 그루 사이에 길 양쪽으로 아름다운 돌탑 2개가 마을을 지키고 있다. 아마도 전국에서 제일 아름다운 수살막이 인 것 같다. 1994년 세워진'변둔리 마을 자랑비'에는'돌 하나하나에 정성이 깃든 서낭제의 돌무리는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으로 자리 잡게 되었으니 이름 하여 조상거인(조상걸)이라 불려 지게 되었다.'라고 되어있어 변둔리는 옛날부터 동네 어귀에 거목과 돌탑을 만들어 동네의 수호신으로 의지하고 살아온 것으로 추정된다. 돌탑 주변의 수령320년의 느티나무 아래에는 수살막이 주변의 땅을 희사해준 감사의 표시로 변둔리 마을주민 일동이 세워 놓은'밀양 박공찬하공적비(密陽朴公讚夏功績碑)'가 세워져 있다. 
변둔리의 박해용(62)이장님은 "동네가 번성할 때에는 80여 호가 되었으나 이농 현상이 심하여 25호까지 줄었다가 요즘은 귀촌하는 사람이 늘어 34가구에 72명이 화합하면서 잘 살고 있는 동네지요."하시면서 수살막이 돌탑에 대하여는 "갑자기 동네가 위축되면서 어르신들이 다 돌아가시고, 전통을 이어 받지를 못해 돌탑에 대한 신성(神性)을 이어가지 못하고 있어요. 지금은 단지 동네의 공원으로 가꾸어 이용하고 있는데, 최근 토지를 희사하신 분의 자녀가 땅의 일부를 매각하였다고 하여 동네가 뒤숭숭 합니다."하시며 근심어린 모습이다. 
요즘 세월의 변화로 대부분의 마을이 민속신앙에 대한 믿음이 얕아지고, 마을에 젊은이들이 없어 계속해 신성을 부여하고 동제를 지내기는 어렵겠지만, 아무쪼록 토지문제가 잘 정리되어 아름다운 수살막이가 오래도록 보존되면서 쉼터로도 이용하고, 수살막이로서 변둔리를 평화롭고, 살기 좋은 마을로 지켜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서성범(보은향토문화연구회)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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