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보은읍 죽전1리, 지하는 암반층 그사이로 나온 우물은 물맛 좋기로 소문
(13)보은읍 죽전1리, 지하는 암반층 그사이로 나온 우물은 물맛 좋기로 소문
  • 보은사람들
  • 승인 2021.07.22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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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터뺏기 줄다리기에서 져서 장을 삼산리로 빼앗겼다는 구전도 전해져
대나무 같은 곧은 심성을 갖고 살아가는 죽전1리 마을분들의 쉼터 죽전1리 복지회관의 모습이다.

#대밭(잠속리)과 (광암리)빛이 나는 돌이 나오는 마을
여름은 더워야 여름 맛이 난다고 했던가? 요즘 삼복더위가 마음과 몸을 후끈 달아오르게 한다. 오늘은 대나무 밭이라고 하는 죽전1리를 찾았다. 대밭이라고 하는 죽전은 본디 조리대라고 하는 작은 대나무가 많이 있던 지역이라고 한다. 지금도 마을 뒤 남산을 가면 조리대 자생지가 간간히 보이고 있다. 와산(와山)이라고 하는 남산아래 형성돼 있는 마을은 잠곡리와 광암리를 합해 죽전리라고 했고, 서쪽으로 수한면경계와 동쪽으로 은사들까지 상당한 면적을 차지하고 있는 마을이다.
이 마을은 지하가 암반으로 형성되어 있어 깊이 팔수가 없는 지역이야! 죽전어르신들을 찾아가다 작은 우물을 발견하고 사진을 찍고 있는 데, 지나가던 이경진 (82)어르신이 우물에 관해서 말씀해주신다.
젊은 시절 금융업에 종사했었다는 어르신은 이 마을에 우물이 몇 개 있었는데 모두 귀한 우물이라고 하신다. 왜냐하면 죽전지역은 지하가 암반으로 형성되어 있는 관계로 물줄기 찾기가 어려운데, 암반사이로 나오는 물은 아무리 가뭄이 들어도 마르지 않고 물맛이 좋기 때문에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특히 광암 샘은 옛 부터 동네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는 우물이었다고 한다.

민족수난사를 일깨워주는 6.25참전 기념탑.

#바깥장터로 불리었던 마을
마을현황을 듣기 위해 이성우(67)이장님에게 마을소개를 받고자 전화를 드렸다고 하니 "아유 어쩌나 지금은 많이 바빠 만날 수가 없는데, 오후에 시간이 되는 데 괜찮나요?" 하시며 미안해하신다. 필자 또한 날이 더워 오후 늦게 만나는 게 좋겠다고 약속을 하고 마을 어르신들을 뵙고 자료사진을 찍으러 죽전다리를 건너는데 남다리 교각 끝 보일 듯 말 듯 가드레인 뒤쪽으로 마을유래비가 보였다.
조선시대 서 삼산에 여행객의 숙식을 위해 남원근처에 저자가 서고 죽전까지 확장돼 개울 안쪽을 안 장터, 죽전을 바깥장터로 불렀는데 장날이 되면 보은에서 생산되는 각종 농수산물이 밀려들고 사람이 인산인해를 이루니 유서 깊은 마을이 되었다고 한다.
구전에 의하면 줄다리기로 장터 뺏기 시합을 했는데 패하여 삼산리로 장터를 빼앗겼다는 유래가 전해지고 있다고도 기재돼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죽전마을은 장이 서는 외 장터로 가축이나 각종 농수산물이 유통되던 지역이라고 한다. 죽전은 보은군 출신 전몰 순국영령들의 충혼이 서려있는 충혼탑과 해외 참전용사들의 참전 기념비, 6·25참전 기념탑이 건립되어 있어 민족의 수난사를 일깨워주고 충효의 정신이 깊은 동네이다. 마을 주민들은 옛 부터 경우가 밝고 의협심이 강하고 단합정신이 투철해 보다 힘찬 미래를 향해 끊임없이 전진한다는 마을 유래비 문구는 죽전1리의 주민들의 강한애향심을 엿볼 수 있는 짧지만 인상 깊은 문구였던 것 같다.

옛 우시장터. 장날만 되면 인근 장꾼들과 전국의 거상들이 모여 경기가 좋았다. 지금은 우시장이 수정리쪽으로 이전하며 장꾼들도 사라졌다.

#전국의 거상들이 몰려왔던 부자마을
마을 유래비를 뒤로하고 회관을 찾아가니 어르신 몇 분이 오순도순 이야기꽃을 피우고 계신다. 마을 회관을 들어서며 어르신들께 인사를 하고 죽전 마을유래를 듣고자 찾아 왔다고 방문목적을 말씀드리니 권춘자(81) 어르신께서 "우리 마을은 예전에 우시장이 있었어요. 그곳에서 많은 가축들을 거래하곤 했지, 그때는 죽전이 살만한 동네였어요. 장날만 되면 보은군 면지역은 물론이고 인근 옥천, 영동, 상주에서 장꾼들이 엄청 몰려왔었어요. 특히 우리 마을은 소를 거래하는 전국의 거상들이 많이 오는 바람에 경기가 좋았어요. 씀씀이가 대단했지. 물론 우리 동네 사람들도 인근에 장을 보러 다니는 사람들이 많이 살아답니다. 하지만 우시장이 수정리 쪽으로 이전하고 장꾼들은 사라지고 교육 명문동네가 되었지요."
"교육명문동네요?" 하고 필자가 되물으니,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이상순(77)어르신이 한마디 거들어 주신다. "응! 우시장이 수정 쪽으로 이전하고 보은고등학교가 죽전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집집마다 학생들의 숙식을 해결하는 하숙집과 자취방들이 하나둘 생겼답니다. 한때는 죽전마을 주민 대부분이 학생들 하숙을 치루고 살았어요. 그리고 이곳에서 하숙했던 학생들 중에 외지 나가서 성공한 사람들이 많이 있지."
마을회관에서 어르신들과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지난 이야기를 하고 있자니 때마침 이성우 이장이 들어왔다.
이성우 이장은 시원한 음료수를 한 잔 권하며 "우리 동네는 특별히 자랑할 것이 없는 것 같은데, 할 말이 없는데요." 하면서 동네에 대한 얘기를 술술 놓았다.
"우리 마을은 299가구에 약 600명 정도가 살고 있고 서로가 이해하고 화합하려는 의지가 강한 분들이 살고 있는 조용한 동네다."라는 이장님의 동네 소개를 듣고 있자니 남 다리를 건너오면서 마을 유래비 내용이 언 듯 떠오른다.
옛 부터 경우가 밝고 의협심이 강하고 단합정신이 투철했다는 마을유래비가 이장님께서 말씀하신내용과 일치한 것을 보니 죽전1리 마을 분들은 아마도 대나무 같은 곧은 심성을 갖고 살아가는 분들인 것은 확실한 듯하다.

두레박을 사용하는우물. 예전엔 물도 깃고 빨래도하고 목욕도 하고 마을의 대소사를 논하는 회관역할을 하기도 했던 시골의 정취가 물씬 풍긴다.

#작은 우물 두레박을 사용하는 도심 속 시골 마을
마을 회관을 나와 전경을 찍고 있자니 저 멀리 정자에서 삼복더위를 식히고 있는 주민들이 보인다. 정자 쪽으로 발걸음을 돌리려고 하는 순간 "안녕하세요?" "무슨 일로 마을사진을 찍으시나요?" 하며 궁금한 듯 나에게 다가와 물어본다.
"아 예 마을소개 글을 쓰는 양화용입니다. 이번 주 죽전1리 마을소개 글을 신문에 올리려고 전경을 찍고 있답니다."하고 대답을 하니 "우리 마을은 옛 부터 물맛 좋기로 소문난 지역이랍니다." 하며 동네 어르신들이 계시는 곳이 있으니 따라오란다.
시원한 바람이 부는 광암보 옆 정자에 몇 분의 어르신들이 계시는 곳으로 안내를 하시고 "우리 동네 소개 글 잘 좀 써주세요." 하면서 바쁜 걸음을 재촉한다.
어르신들 마을소개 좀 해주세요? 하고 정자에 앉아있는 최이건(93)어르신께 부탁을 드리니 정자 앞에 있는 우물을 가리키며 저 우물 보셨나요? 하며 필자에게 물어본다. "아~! 예 조금 전 사진을 몇 장 찍었습니다." 하고 대답하니 "우리 마을은 샘이 몇 개가 있는데 예전엔 그곳에서 물도 깃고 빨래도 하고 목욕도 하고 마을의 대소사를 논하는 회관역할을 했던 곳이다"라고 말씀하셨다.
"두레박이 있던데 지금도 사용하고 있나요?" 하고 필자가 아는 체를 하니 "지금은 식수로는 사용하지 않고 허드레 물로 사용하고 있다"고 하신다. 하지만 지금도 소독을 하고 청소를 하면 예전처럼 식수로도 사용할 수 있다고 하신다.
"내가 죽전으로 이사 온지 52년이 넘었는데 그때는 이곳으로 들어오는 길은 작은 논길밖에 없었어, 비만 오면 물이 넘치곤 했지. 당시는 이곳이 살기가 불편했는데 지금은 정말 좋아. 시내 가깝고 시골정취가 물씬 풍기고, 교통 편리하고 누구든지 우리 마을로 오면 환영이야." 하신다.
어르신께서 젊은 시절 제빵업을 하셨는데 크림빵, 앙꼬빵, 이마기빵 등을 만들기가 무섭게 주문이 들어와 청주, 대전 심지어 수원까지 배달을 갔었다고 했다.
어르신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보은에도 단절된 어르신들의 옛 기술들을 이어받고 보존 개발하는 기술이음과정 프로그램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보은군 출신 전몰순국영령들의 충혼이 서려있는 충혼탑.

#조릿대가 아름다운 마을
어르신들과 헤어지고 충혼탑이 있는 남산을 올라가니 금적산 줄기 영기어린 와산 기슭에 빗돌을 깎아 세우려 함은 남북화해와 용서로 계례의 소원인 평화통일을 하루속히 이루어지기를 기원하며 작은 나라지만 부강한 나라가 되게 해달라는 6.25 참전 용사 기념탑 내용이 보인다.
죽전1리 마을소개 글을 쓰기위해 어르신들의 추억 속을 찾아다니는 필자를 보니 마치 수십년전 보은의 어느 시골길을 걷는 듯 감회가 새롭다. 얼굴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니 시원한 마파람이 얼굴을 스치며 지나간다. 늦은 오후 남산 길을 내려오며 석양에 비친 충혼탑을 바라보니 오늘따라 더욱 신비롭게 보이고 남산을 뒤덮은 조릿대가 삼복더위를 이겨 내는 모습이 그 어느 때보다 꿋꿋해 보였다.
양화용(보은향토문화연구회)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소나무 가로수
남산길
죽전대로
죽전 자율방범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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